이번에 소개할 애니메이션은 '페이트'(Fate) 시리즈입니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Fate/stay night, 2006), '페이트 제로'(Fate/Zero, 2011),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언리미티드 블레이드 워크스'(Fate/stay night Unlimited Blade Works, 2014) 등의 기본 시리즈 외, 현재 방영 중인 '페이트 아포크리파'(Fate/Apocrypha, 2017), 게임 서비스를 이제 막 시작한 '페이트 그랜드 오더'(Fate/Grand Order) 등이 있습니다. 일본 게임 제작사 타입문(TYPE-MOON)에서 만든 게임,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저는 이 회사의 작품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진월담 월희'(真月譚 月姫, 2003)나 '공의 경계'(空の境界, 2013) 같은 작품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페이트'의 기본 줄거리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수십 년 간격으로 나타나는 '성배'(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셨다는 성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를 차지하기 위해 7명의 마법사가 서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성배는 최후의 승자에게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 줍니다. 각각의 마법사는 마스터라고 불리며, 이 마스터들은 자신의 승리를 돕기 위해 서번트라는 영령(英靈)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된 서번트는 역사, 전설, 신화 속 영웅들로서 세이버(검의 영령), 아처(활의 영령), 랜서(창의 영령), 버서커(광전사의 영령), 어새신(암살자의 영령), 캐스터(마술사의 영령), 라이더(기병의 영령)라는 클래스를 받습니다. 특별한 능력(보구)도 부여됩니다. 마법사들이 서번트들과 한 팀을 이루어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과정이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습니다. 본편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주인공 에미야 시로는 우연히 세이버의 마스터가 되어 성배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페이트 제로'는 그보다 10년 전에 일어난 성배 전쟁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서번트라는 존재입니다. 마법사들은 과거의 전설적 영웅과 깊은 관계가 있는 유물을 매개로 서번트를 소환합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더 강력하고 위대한 서번트를 소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애니메이션상에서 소환되는 과거 영웅들로는 아서왕(King Arthur), 알렉산더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323), 길가메쉬(Gilgamesh), 헤라클레스(Heracles), 사사키 코지로(佐々木 小次郎, 1585?~1612),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드라큘라(Dracula) 등이 있습니다.

마법사들과 서번트들이 한 팀을 이루어 성배를 차지하고자 싸움을 벌이는 것이 '페이트' 시리즈의 주된 이야기다. '페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갈무리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실존 인물이 아닌 전설 혹은 신화 속 영웅들도 사람들의 기억·바람·소망을 담아 실체화하고 서번트로 소환됩니다. 특히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와 '페이트 제로'에 등장하는 사실상의 주인공 세이버[아르토리아 펜드래건(Altria Pendragon), 지난해 말 페이크 뉴스 주인공으로 유명해졌지요], 즉 원탁의 기사의 아서왕은 실상 여성이었다는 설정으로 나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세이버는 백성들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끝없는 전쟁으로 자신을 몰아넣었지만,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꿈을 이루지 못한 전설 속 왕의 영령입니다.

그러나 아서왕 전설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서왕은 여성이 아니고 심지어는 실존 인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그분이 영국의 실존 인물일 것이라고 믿었는데 아니었습니다. '페이트' 시리즈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아서왕 관련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여러 전설이 합쳐져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서왕은 5~6세기 잉글랜드 역사와 전설이 복잡하게 결합해 탄생한 인물입니다. 비록 전설 속 인물이지만 '페이트'는 그가 지닌 신념과 왕의 도를 무척 감동적으로 그려 냅니다. 그가 말하는 왕도, 백성을 위한 끝없는 헌신은 이상적 왕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는 아서왕의 실존 여부와 관계없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누구에게나 큰 공감을 일으킵니다(라고 믿습니다).

놀랄지 모르겠지만, 아서왕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는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거의 금기시해 왔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계속해서 있었고, 조금 자극적이고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주목받은 학자들도 있습니다.

근본주의 신앙 배경으로 신학을 전공하다가 결국 기독교 신앙을 벗어난 로버트 프라이스(Robert M. Price, 1954~) 같은 학자가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입니다. 최근 독일에서 공부하는 진규선 목사님이 소개해 주신 리처드 캐리어(Richard Carrier, 1969~ 관련 글 바로 가기)나 데니스 맥도날드(Dennis R. MacDonald, 1946~ 관련 글 바로 가기)도 프라이스와 다른 관점에서 '예수 신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입니다. 헥터 아발로스(Hector Avalos, 1958 관련 글 바로 가기번역 바로 가기)처럼, 예수의 실존 여부에 불가지론 입장을 취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예수 신화론자들의 대표 주장은 간단히 말해 성서의 기록을 제외하고 예수의 실존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프라이스는 △가장 먼저 기록한 신약 문서인 사도 바울의 서신들은 역사적 예수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당대 역사가들은 예수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분도 있겠지만, 대다수 학자는 요세푸스의 '플라비우스의 증언'은 후대의 가필로 보고, 가필이 역사적 예수 자료가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보기도 합니다(이외 다양한 방식의 논증이 있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제자들과 그 이후의 순교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화나 환상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인가요?"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고 쉽게 조작되고는 합니다. 게르트 뤼데만(Gerd Luedemann, 1946~)과 마이클 굴더(Michael Goulder, 1927~2010)는 '회심-환상 체험'이 충분히 인간의 운명을 바꿀 만한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논증합니다(게르트 뤼데만 글 바로 가기,  마이클 굴더 글 바로 가기).

웹진 <제3시대>에 이해청 선생님이 쓴 '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에는 하나의 사건이 단기간에 신화로 변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대선 사전 투표용지 여백 관련 논란도 사람들 기억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집단적 착각을 일으키는지 알려 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역사성을 부정해도 기독교의 탄생을 설명하는 방법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신화론이라는 도발적 주제를 말하다 보니 조금 설명이 길고 지루해졌습니다. '페이트'의 세이버 이야기, 예수 신화론을 보면서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리와 가치는 그 이야기의 역사성 또는 사실성 여부에 달린 것일까요. 다시 말해, 아서왕이 실존하지 않았다면 세이버가 추구하는 왕도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일까요. 예수 신화론자들 주장대로, 만일 예수가 복음서에서 기록한 대로 실존하지 않았다면, 그의 가르침, 그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이야기가 담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가치는 모두 사라지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예수가 신화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짧은 시간 활동했던, 로마 식민지 촌구석 출신의 한 현인에 대한 객관적 역사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론자들의 도전은 중요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만일 예수가 허구 인물이거나 복음서 기록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모두 무가치하게 될까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묻겠습니다. 수천 년 전 어떤 사건이 객관적 역사적 사건이라고 동의하는 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일까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적 동의가 믿음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근거는 예수의 역사성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담긴 가치입니다. 그것이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에 담긴 진리가 지금도 내 삶에서 경험하는 실재이기 때문에 저는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의 든든한 뿌리는 3년 남짓 활동했던 1세기 한 유대인 남성의 실존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신화, 환상 체험, 그 무엇이었든지,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가치가 역사 속 많은 사람의 삶을 움직였고, 다른 어떤 것보다 지금 제 삶에 끊임없는 도전을 주며,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참사람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에 있습니다.

주인공 에미야 시로(위)와 세이버(아래). '페이트'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갈무리

'페이트' 시리즈에서 세이버와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정복왕 이스칸달(알렉산더대왕)입니다. 이스칸달이 사용하는 보구(일종의 필살기)는 '왕의 군세'입니다. 그와 함께 땅끝에 있는 바다 오케아노스까지 정복에 나섰던 군사들, 그 왕과 이상을 공유하며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부하가 모두 나타나 진군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실제 이스칸달과 그 부하들이 어떤 꿈을 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왕의 군세'가 하느님나라의 이상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 같아서 좋습니다. 역사 속 이스칸달이 그렇게 해서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스칸달, 영령으로 신화화한 이스칸달이 보여 주는 이야기에 담긴 가치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스라엘 땅 어디에서 1세기의 새로운 유물을 발굴할지도 모릅니다. 그 유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역사와 다른 증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이미 그런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이 한낱 어떤 사건과 인물의 역사성에 매달려 있는 한, 과학이 발달하고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마다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화론자들 주장이 더 치밀해지고 설득력을 더할 때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이야기에 담긴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의 삶을 통해 그 가치들을 추구한다면, 설령 예수가 존재한 적 없는 신화 속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신앙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처녀 탄생, 기적, 부활, 승천, 재림 등)에 대한 역사적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가치들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이트', 신화로부터 소환된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역사와 가치 중 어떤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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