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저는 직장에 다닌 지 3년 된 남성입니다. 지금 직장이 첫 직장인데요. 직업 안정성, 경제적인 측면, 적성, 주변 의견 등 여러 고민하면서 대기업에 지원했습니다. 저는 입사 전까지 제가 신앙이 나름대로 좋다고 여겼고, 직장 생활에서 좋은 기독인의 모습을 보여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 보니 제가 속한 영업부의 기업 문화는 유난히 획일화해 있었습니다. 군대식으로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잘못된 일 처리라고 하더라도 윗분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상사 눈치 보기 바빠서 불필요한 일을 계속 시켰고, 야근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일례로, 아침 7시에 모두 출근해 낮 시간에 거래처 사람을 만나러 나가라고 합니다. 거래처 사람은 한 달에 1번 만나면 충분하고, 그쪽에서는 더 이상 만나 주지도 않습니다.

결국 새벽같이 나와 낮 시간은 자거나, 사우나를 하고, 당구 치고 놀다가 저녁에 사무실로 들어와 그때부터 눈치 보며 퇴근도 하지 못하다가 12시에 겨우 집에 갑니다. 회식은 왜 그렇게 많은지, 집에 가기 싫은 부장들을 위해 회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술 마시고, 또 먹고, 2차 가는 등 이런 불필요한 시간이 싫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3년을 버텼는데, 여기서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은 돈 버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안정된 직장 생활을 위해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벗어나야 할까요. 제가 고민하는 것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회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계속 버티다, 이제는 이직해야겠는데, 이직은 도망치는 행동일까요?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보낸 것일 텐데, 제가 너무 영향력이 없고 잘못 처신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직을 한다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너무 낭만적인가요. 그런 일이 있을까요. 참고로 취직하고 바로 결혼했고, 지금 아이가 1명 있습니다. 부인은 정규직은 아니고 프리랜서로 막 일을 시작한 상황이라서 아직 마땅한 급료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질문자의 고민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회사 내 불합리한 일 처리 방식으로 인한 낮은 만족도, 일에 대한 의미 상실
2) 기독인으로서 회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3) 이 일을 회피했을 때, 사회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4) 이직을 통해 의미 있는 직장 생활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

상황은 다르지만, 직업이 있는 대다수 기독인이 할 법한 고민이다. 사회에서 돈 버는 일은 힘들고, 물먹이는 사람은 많다.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견디는 것이 옳은가 의문이 들고, 내가 원하는 일터가 있는지 몰라서 두렵다. 원하는 일터가 없다면, 빨리 꿈을 깨고 '직업은 돈 벌기 위해 갖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가능성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일터를 찾고 싶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기독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한국 직장인 중 이직을 시도한 사람이 올해만 49%다. 직장인들은 습관적으로 이직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로버트월터스코리아가 국내 직장인 527명을 대상으로 이직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직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 1위가 '직무 적합성'(32%)으로 꼽혔다. '연봉'(25%)과 '기업 문화'(20%)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설문 결과와 비교하면, '직무 적합성'을 선택한 응답자는 10% 증가했다. 자신과 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욕구가 그만큼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설문 조사를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34%) 직장인들은 '급여'를 이직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30대 후반 이상'(37%)인 과장·차장급은 '직무 적합성'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약간 순위가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469명을 대상으로 첫 이직 경험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업무 과다 및 야근으로 개인생활을 누리기 힘듦(29.2%), 회사의 비전 및 미래 불안(24.5%), 낮은 연봉(21.5%), 상사 및 동료와의 불화(8.3%), 타 회사 및 헤드헌터의 스카우트 제의(6.4%) 순으로 나왔다.

어떻든 이직을 선택할 때 중요한 요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와 일한 만큼의 대우라는 것이다. 이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자신이 이직하려는 것이 대인 관계 때문인지, 직무와 관련한 문제 때문인지 구별하는 것이다. 질문자의 경우, 조직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조직 문화는 직무와 관련한 문제다.

선임자가 지독하게 괴롭히거나, 부장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견뎌야 할 일에 속한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느 집단에 가더라도 이상한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라서, 늑대를 피해서 도망간 곳에서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기에 대인 관계 때문에 이직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직무는 다른 영역이다. 이제 위에 언급했던 네 가지 영역에서 질문자의 고민을 살펴보자.

자신과 맞는 직무를 찾는 방법

첫 번째, 질문자는 입사 초기부터 직장의 조직 문화와 맞지 않았다. 기업 문화가 있듯, 직무별로 직무에 맞는 문화가 있다. 영업부는 아무래도 회식이 잦고, 군기 잡는 일이 다른 부서보다 많다. 직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자신과 맞는 직무가 어떤 것인지 더 늦기 전에 캐치해야 한다.

대학을 다닐 때는 다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데, 직무별로 완전 다른 문화의 방식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능하면 조금 작은 규모의 회사로 이직하면서 마케팅도 함께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자신이 일하고 싶은 분야를 찾는 가능성을 넓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마케팅과 영업은 다른 분야지만, 이 두 가지를 함께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선임자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직무와 맞는 사람인지 깊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기독 직장인으로서 어떤 삶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책상 위에 두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아침에 묵상을 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식사 기도로, 어떤 사람은 신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으로 기독 직장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각자 기독 직장인의 모습을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대부분 회사에서 기독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그것이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기독인이라는 사실을 티가 나게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 기독 직장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입사한 지 3년밖에 안 됐다고 했는데, 이렇게 경력이 길지 않은 경우 회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에서 기독인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려면 10년 이상, 그것도 일을 제대로 하고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 질문자는 자신이 이직하고자 하는 것이 '회피'가 아닐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진짜 회피하는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년 이하 경력으로 자주 이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유가 있다. 견디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다. 어떤 직장을 가더라도 금방 나온다. 말은 호감 있게 잘하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에 대한 능력 부족을 지적받거나,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핑계를 찾는다. 그 핑계들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직장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문자는, 견디기 어려운 곳에서 3년을 일해 왔다. 어떻게 보면 아주 좋은 경력과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문제를 회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서 충분히 배웠으니 조금 더 자신과 맞는 직무를 찾아서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네 번째, 자신이 원하는 의미 있는 직업이 있을까 의문을 던졌다. 이때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 문화를 말하는 것인지 일의 내용을 말하는 것인지 말이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일의 결과를 중요시하는지 따져 봐야 한다. 이런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이 일하는 '누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상관없고 일의 내용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다. 일의 과정과 결과 중 어떤 것에서 더 성취감을 느끼는지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의미를 추구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하는 과정을 중요하다면 직장 문화가 합리적인 곳으로 가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일의 내용이 중요하면 NGO나 NPO가 하나의 길일 수 있다. 일의 결과가 중요하다면, 성과가 분명히 계산되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에 맞춰서 간다면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다.

알다시피, 사실 의미가 있어 보이는 직업도 들어가서 일하다 보면 불합리하거나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일에서 보람을 찾고 싶다는 것이 질문자의 낭만적인 생각인지 물었는데, 낭만적인 생각 맞다. 그래서 나는 '의미 있는'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의미'가 남을 돕는 것이라면, 그 일을 꼭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직업으로 삼는다면,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게 있다. 기독 직장인이 다른 직장인과 다른 점이 뭘까. 남들처럼 합리적인 직장 문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제대로 보상받는 것을 추구한다면, 기독인과 기독인이 아닌 사람이 다른 점이 뭘까. '나는 기독인으로서 무엇을 감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각자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한병선 / 한병선영상만들기 대표, IVF(한국기독학생회) 기독 직장인 모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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