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구국 기도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에 앞장섰던 단체가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월 7일 구국 기도회 3부 행사로 국민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엄기호 대표회장)는 올해 3월 1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구국 기도회를 열었다.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구국 대회'를 열던 시점이었다. 한기총이 기도회를 한다고 발표했을 때, 교계는 정치 집회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기도회가 열리는 곳도 친박 집회 장소와 맞닿아 있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기도회가 끝난 직후 탄기국(탄핵기각을위한총궐기운동본부)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태극기, 성조기, 박근혜 대통령 사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가 등장했다. 기도회가 탄핵 반대 집회 사전 행사로 전락한 셈이다.

당시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탄기국과 같은 장소를 사용하면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기도회에서는 '탄핵 기각'과 같은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집회와 기도회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기총 기도회와 탄핵 반대 집회에 동시 참여한 목회자 및 교인들 이야기는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논란은 8개월 만에 또다시 일어났다. 한기총은 11월 7일 광화문 부근에서 '구국 기도회'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고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취지였다. 1부 찬양, 2부 기도회까지는 어느 정도 교회 집회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엄기호 대표회장의 선언과 함께 시작한 3부 국민대회부터는 그야말로 '정치 집회'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 시민을 비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연호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성추행 논란으로 물러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한기총은 기도회 장소도 3·1절 구국 기도회가 열린 광화문 네거리를 고집했다. 경찰이 교통·경호 등의 이유로 거부하자 국본(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경찰서까지 찾아와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기총 행사인데, 국본 관계자가 와서 항의하니 어이가 없었다. 한기총으로부터 위임받았다며 꼭 그 장소를 요구하더라. 이런 사례는 본 적 없었다"고 했다.

극우 집회, 최충하 사무총장 주도
황교안 전 총리 대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섭외
엄 대표회장 "국민대회 성격 몰랐다"

엄기호 대표회장(사진 맨 오른쪽)은 구국 기도회에 이어 정치 집회가 진행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구국 기도회는 어쩌다 극우 집회 판을 깔아 준 꼴이 됐을까. <뉴스앤조이>는 한기총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기도회는 한기총 사무총장 최충하 목사가 총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목 출신으로 올해 9월 사무총장에 부임했다. 최 목사는 11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차피 이 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다.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한 것이지, '태극기 집회'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쪽보다 건실하게 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했던 인사들이 강단에 선 것도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했다. 최 목사는 "한기총의 정체성은 '우파'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 그래서 같이 기도회를 한 것인데, 그걸 문제 삼거나 비판해서 되겠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호소한 것이다. 현 정부도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있으면, 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현 정부도 잘될 수 있다. 지금 우파는 울분을 안고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져가면 국가만 손해다. 기도회 같은 방식으로 누그러뜨리면 서로에게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사무총장과 달리 기도회가 정치 집회 사전 행사로 전락한 것에 대해 엄기호 대표회장은 유감을 표했다. 엄 대표회장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 기도회였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 3부 국민대회 성격이 어떤지 몰랐다. 국민대회 선언을 해 달라고 요청해서 했는데, 나중에 지나친 발언들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기총이 할 일은 회개 기도지, 하나님이 정해 준 권세자를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 대표회장은 "처음 구국 기도회를 진행하다 보니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기도회가) 정치 집회로 이어지지 않게 하겠다. 설교자들도 약간 오버한 부분이 있었다. 한기총이 1,200만 성도를 대표한다는 발언도 여러 번 나왔는데, (한기총이)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모두를 아우르자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책임지고 이런 말 안 쓰도록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도회는 외부의 비판은 물론, 한기총 내부에서도 '예고된 정치 집회'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기총 한 직원은 "장소·인사 섭외부터 진행을 국본에서 진행했다. 회개를 위한 기도회를 문재인 대통령 반대하는 단체에 맡긴 셈이다. 원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섭외하려 했는데, 내부 반대로 무산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윤창중 씨를 섭외했더라"고 말했다.

직전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이번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목사 측 한 관계자는 "3·1절 구국 기도회 이후 이 목사님이 엄청 불쾌해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면서 '절대 안 간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국민대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 시민을 비방하는 발언이 난무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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