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저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면서 바로 직장에 입사한 20대 중반 자매입니다. 남들은 운이 좋았다며 부러워하지만 원하는 직장에 취업한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취업하기가 힘들다고 말을 하니까 백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그래서 예전에 인턴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저를 눈여겨보신 분이 이력서를 내라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이력서를 내고 회사에 취업하게 됐습니다.

신생 회사지만, 규모가 작지는 않습니다. 연봉은 보통이고 제가 하고 싶었던 분야의 일입니다. 그리고 정규직이고 고용 불안이 없는 게 장점이라서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회사에 직원은 많지 않습니다. 업무 특성상 남성이 많습니다. 여성으로는 저와 제 선임인 3년 차 선배가 있습니다. 나이 든 분이 많아 역피라미드형으로 연령이 구성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전반적으로 어른들에게 잘 맞춰 드리는 분위기입니다.

얼마 전에 사장님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는데 손을 잡으려고 하셔서 너무 당황해 황급히 손을 빼고 나왔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말 한마디하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해 화가 나고 분하고 속상합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중인데, 회식 때 자꾸 옆에 앉으라고 하시고 자꾸 스킨십을 하려고 하셔서 너무 불편합니다.

사장님은 저보다 나이도 2배가 넘게 많고 제가 딸 같아 귀여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 사장실 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뽑은 분이고 회사 책임자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 일을 문제 삼아야 할지 참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직장이 나쁘지 않아 2~3년 경력을 쌓은 다음에 이직하려고 했는데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제가 작은 것을 부풀리는 것인가요. 웃으면서 넘겨야 되는 것을 정색하면서 하는 건가요. 저는 이게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정색하면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지혜를 주세요.

직장 내 성희롱, 쉽게 신고 못 하는 이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최상단 박스 안에 신고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기관이 나온다. 이곳을 찾아 상담을 받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내가 예민한 사람인가', '이게 성희롱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다. 아주 노골적으로 성추행을 했다면 신고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친분 관계에서 할 수 있는 농담이나 스킨십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의도적인 애매한 성희롱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별로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나는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서 '이게 성희롱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상대방 얼굴이나 행동을 보면, 아주 자연스러워서 '내가 뭔가 오해했구나, 그런 사람이 아니지'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특히 평소 호감이 품거나 존경하고 있는 분이나 나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서 어려운 분인 경우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겠지' 하고 좋게 생각하고 마무리를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존경하고 있거나 어려운 분이 가벼운 스킨십을 빙자해 성희롱을 할 때 고리를 끊는 일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주눅이 들고, '그분이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그들은 성적 쾌감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는 사람이다. 다른 면은 몰라도 그 부분이 추악하다는 사실이다. 존경하거나 좋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스킨십을 거절하기 힘들어하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크리스천 자매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그 마음을 악용해 지속적으로 성희롱한다.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늘 보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두고 말한 것인데, 어떤 때는 도에 지나친 것 같이 느낄 때 성희롱이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서 관계가 어색하면 일하기 힘들 텐데'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야 하는지 내적 갈등이 생긴다. 여러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농담처럼 성희롱적 발언을 했을 때, 당장에 정색하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넘어갈 때도 있다. 그 후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 '이제 와서 성희롱으로 신고해야 하나' 고민할 수 있는데, 불편하지만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성희롱을 당한 사람 78.4%가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 2012년에는 90%였다고 하니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48.7%)가 참고 넘어간 가장 큰 이유였다. '신고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48.2%)가 두 번째로 높았다.

실제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간 직장 내 성희롱 진정은 2012년 249건, 2013년 364건, 2014년 514건, 2015년 507건, 2016년 552건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듯 성희롱 신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미약한 수준이다.

2016년 노동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성희롱 진정 552건 중 453건(82%)이 행정 종결 처리되었다.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66건(12%)이다. 실제 기소까지 이어진 경우는 단 1건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실 애매한 성희롱은 신고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야 하나. 아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고 되받아치라고 권한다. 더 세고 단호하게 말해야 다시는 언어적 성희롱을 못 한다. 나는 주로 거래처 사람들과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는데, 그럴 경우 계약을 파기할 각오까지 해야 했다. 처음에는 두려워 그냥 넘어갔지만 나중에는 후회로 남아 결국 그렇게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적 성희롱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한발 빼면서 성희롱을 하기 때문에 세고 단호하게 나가면 대부분 꼬리를 내린다.

다른 상황은, 질문한 사례처럼 성희롱이 분명한데 피해자가 이것저것 따졌을 때 쉽게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다. 성희롱 가해자가 피해자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가해자는 본인이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피해자가 인사나 근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질문자의 경우, 사장이 인사권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으며 피해자가 회사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성희롱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근로권, 노동권을 볼모로 생존권을 위협하면서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죄질이 나쁘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지금의 직장에 계속 다니고 싶은데, 사과를 받고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어렵다. 2015년 여성가족부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을 신고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는데, 이 중 74.8%가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다소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일을 당하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며, 자꾸 그때 생각이 나서 끝없이 자기 비하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 이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성희롱을 하려 할 때 확실한 거절의 말로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거절하는 말을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억울한 감정이 넘쳐 울거나, 감정이 격앙돼 불필요한 액션을 취했을 경우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성희롱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여러 번 주의를 받았을 때 방어를 해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게 필요하다. 평소와 다르게 강경한 반응을 보이면 가해자는 당황하게 된다. 그때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말을 녹음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동영상, 녹음, 문자 등 증거를 잘 모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로, 이 회사의 조직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역피라미드형 인적 구성을 보인다. 나이 든 남자가 대부분이라서 성희롱이 문제라는 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기억해야 할 점은, 성희롱 문제를 나와 사장 개인보다 잘못된 조직 문화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혼자 나서기보다 주변 사람에게 말해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필요도 있다. 선임인 3년 차 여성 선배에게 도움을 구하고, 공동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이 자매의 경우, 이 직장을 직업 안정성 때문에 선택했다. 또 다른 제안은 다른 직장을 준비해 보라는 것이다. 가고 싶은 직장을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고, 이직을 마음먹고 사장의 권력과 영향력이 회사를 떠나면 없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발언하게 되면 조금 더 과감하게 거절을 하고 사과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고 해서 성희롱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성희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회사 규모가 크면, 회사 내 고충처리반에 신고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외부에 신고해야 한다. 통계를 보면, 성희롱당한 사람 중 신고한 사람 숫자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직접 그 사업장에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린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성희롱이 발생한 직장의 사업주에 과태료 처분을 내리거나 행위자에 대해 사업주가 경고·견책·전직·대기 발령·해고 등의 조치를 내리도록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직접적 제재 요구를 할 수 있지만 권고 차원이기 때문에 크게 강제성이 없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사장은 과태료를 물고 주주들에게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보스턴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신문사에서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취재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영화 속 피해자들은 부모에게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고, 사제들은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친절을 베풀고 신뢰를 얻은 뒤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20년, 30년이 지나서도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잊지 못하고 고스란히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기 비하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한 피해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신부님은 나에게 하나님과 동급이었어요. 그분이 나에게 웃으면서 특별하게 대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일을 당하고 나서는 나는 더 이상 믿을 데가 없었어요. 생각해 봐요. 하나님이 없어졌는데 더 이상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이 사람의 팔은 주사 자국으로 상처투성이였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마약·술·섹스 등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하다가 삶을 포기하게 된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이 있는 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조직의 문제이며, 업무 관련성을 빙자해 노동권 및 근로권을 침해하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다.

한병선 / 한병선영상만들기 대표, IVF(한국기독학생회) 기독 직장인 모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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