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마다 독서 취향은 가지각색이며 선호하는 출판사도 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요즘 내가 선호하는 출판사는 비아다. 책이 출간되면 빠지지 않고 읽는 편인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알맞은 책의 크기도 그렇고 통일성 있는 단아한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수차례 윤독회를 거쳐 다듬은 땀의 흔적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덤이다. 무엇보다도 비아의 무기는 내용의 알참이다. 적절한 크기의 책에 좋은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출판사의 미덕이라면 비아는 그런 미덕을 아직까지는 성실하게 잘 지켜 내고 있다. 이런 출판사가 한국인이 쓴 책을 만들어 낸다면 어떨까.

영국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 같은 강의가 책으로 나올 때마다 꽤나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저명한 학자의 강연이 말쑥한 언어로 정리되어 일반 독자에게 읽힐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용이 알차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러워만 하던 일이 요사이 한국 땅에서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비아의 <종교신학 강의>(비아)도 그중 한 예다(이 책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은 '이게 팔릴까?'라는 의문이다. 나 역시 종교신학을 공부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종교신학'이라는 말을 꺼내면 곧 바로 '다원주의자' 또는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전한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했던 게 우리네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리 상황은 변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이러한 와중에 <종교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포 소리 가득한 전쟁터에 돌도끼를 들고 뛰어드는, (혹은 그 반대로) 돌도끼 전투에 혼자 레이저 건을 들고 전장에 뛰어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그리고 서평을 쓰는 지금도 그리 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독자층, 신학적 사유가 척박한 상황에 이러한 묵직한 책을 들고 끝까지 씨름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어쩌면 그런 만큼이나 이 책은 소중하며 한국 기독교 현실에서 각별한 가치를 갖는다.

<종교신학 강의 - 다종교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인이 가야 할 길> / 정재현 지음 / 비아 펴냄 / 276쪽 / 1만 3,000원

2.

'종교학'은 상대적으로 친숙한 용어지만, 이에 견주었을 때 '종교신학'(Theology of Religions)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낯선 용어다. 종교학이나 종교신학이나 그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특히 종교신학은 그 출현이 반세기도 안 되는 신종 학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신학이라는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종교의 정체와 인간관계를 규명하는 신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말대로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다종교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자기 정체성과 타자 관계성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 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학문"(26쪽)인 셈이다.

이 책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문헌을 살피면서, 역사 안에서 기독교가 타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단순히 서양 신학의 논의들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신학과 철학 용어를 한국인의 말로 풀고, 서구인의 관점을 정리한 다음, 한국인의 눈으로 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지은이는 이런 관점을 '2세대 종교신학'이라고 정의한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종교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근본적으로 관심하는 것은 인간 자체다. 그리고 이 인간은 '홀로 있는 인간'이 아니라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이다. '홀로 있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단일성을 위해 '같음'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이를 '옳음'으로 고집하며 결과적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한다면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은 자신이 '홀로' 있지 않으며 자신이 이미 '같음'과 '다름'의 얽힘 속에서 구성됨을 깨닫고 타자에 비추어 자신을 돌이키며, 타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한다. 종교가 본래 가리키는 바는 바로 이것이라고 지은이는 보고 있으며 이를 따라 서로의 낯섦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홀로 있는 인간'에서 '관계하는 인간'으로 초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우리네 통념을 뒤흔드는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지은이는 가장 일반적인 종교신학 도식인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가 기독교 역사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념을 구축해 왔는지 서술하고, 각각의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한 대목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구도가 역사 속에서 차례로 등장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간명하게 펼쳐 낸다는 점이다(13~54쪽).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는 이 세 구도를 진화론적 발전 단계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어떤 특정한 이해가 다른 특정 이해보다 고차원이라는 식의 설명은 지은이가 가장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방식인 듯 보인다. 대신 지은이는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적 이해는 각각 타당한 이론적 배경과 함께 그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1부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한 다음 2부부터 본격적으로 표본 신학자들의 문헌을 살피고 비판한다.

전체 분량 가운데 거의 3분의 2 이상이 2부에 할애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할애되고 있는 인물은, 지은이가 배타주의 유형 신학자로 꼽고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다(나로서는 조금 의외이긴 하다).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특수와 보편의 관계,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 같은 내용들이 지은이의 관점에 따르면, 일종의 자기 모순적 동어반복이며 비판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배타주의는 구원과 지식에 대한 앎을 별개의 것으로 하더라도 타자의 다름에 대한 수용성, 즉 '관계성'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판단한다.

포괄주의 신학자로는 세 명을 다룬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에른스트 트뢸치, 칼 라너를 표본으로 들고 있는 지은이는 이 부류의 신학자들이 기본적으로 타 종교의 가치에는 열려 있으나 기독교 가치의 우월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 일종의 선교적 관점이 강한 신학일수록 이런 포괄주의 태도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다원주의에서는 폴 니터와 레너드 스위들러를 뽑아 든 다음, 라이문도 파니카를 언급한다. 지은이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톨릭 사제인 폴 니터의 경우에는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신학을 전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 포괄주의 신학의 대부로 알려진 칼 라너 2세대 주자로 불리는 니터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20세기 루터신학의 대가였던 파울 알트하우스의 원계시론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연구는 루터신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원주의 신학이다. 한국에서 출판되었다가 보수교회의 항의 때문에 절판되는 소동을 겪었던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한국신학연구소)가 바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지은이는 폴 니터의 관점이 종교란 "인간 문화의 반영이기 때문에 역사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171쪽)는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역사는 곧 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자아와 함께" 또는 다른 종교와 함께 존재하며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잃는다고 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원주의 유형에서는 '절대 가치', '절대 종교'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 그들 눈에 절대 종교는 곧 폭력의 주범이다(173쪽).

종교 '간' 대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스위들러의 경우에는 각 종교가 가르치는 교리보다는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삶이란 곧 나와 다른 누군가와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대화는 상호적이며 '나'는 이를 통해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된다. 스위들러는 이런 삶의 원리를 종교 간 대화에도 적용하는 신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지식은 해석된 지식이다."(198쪽) 그러므로 종교적 실재, 또는 '신'이라고 말하는 '실재 역시 대화와 관계를 통한 구성적 지식에 속한다'고 결론을 내린다(199쪽). 그에게 "종교의 절대성은 이념이 자아내는 자기도취"(201쪽)라고 진술한다. 그러므로 대화와 만남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런 대화에 임할 때 반드시 필요한 태도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202쪽)

앞서 언급한 두 명의 다원주의자와는 차별성을 갖는 인물이 라이문도 파니카다. 그는 실제로 힌두교와 로마 가톨릭을 오갔던 인물이고, 1세대 종교신학자가 아니라 비서구 계열 종교신학자이기 때문에 2세대 종교신학자로 꼽힌다. 지은이에 따르면, 파니카 역시 여타 종교신학자들(다원주의 유형에 속한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관계가 '종교' 간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여느 다원주의 유형에 속한 이들과 구별된다.

파니카에게 배타주의는 "인식론적 천박함"이고, 자신의 믿음으로 타자를 재단하고 평가한 후, 자기를 절대화하는 폭력적인 편협에 이르는 종교 인식일 뿐이다(214~215쪽). 또한 포괄주의는 관대함이 두드러져 보이나 그 때문에 타자나 타 종교는 항상 '관대의 대상'으로 격하된다고 그는 평가한다. 모든 종교의 공존을 말하는 '평행주의'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이제껏 종교가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는 '역사적 현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성찰 후에 파니카는 "에큐메니컬 에큐메니즘"(ecumenical ecumenism)이라는 다소 낯선 표현을 종교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제시한다.

지은이는 파니카의 관점을 적극 수용하면서 종교를 이해할 때 자기 동일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구성적 상대성의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정재현 교수에게 구성적 상대성은 곧 '다종교적 체험'이다(제10강). 기독교 독자들,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이 말을 듣자마자 불편함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미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결론부라 할 수 있는 제10강에서부터 지은이는 이런 개념을 사용하는 그 배경과 설명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그에게 다종교적 체험이란 폴 틸리히가 강조했던 '신앙의 역동성'과 다르지 않다. 즉 신앙이 교리로 편협하게 축소될 수 없고, 삶 속에서 생동성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임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이다.

제11강에서는 이런 내용을 더욱 상세하게 풀어낸 다음, 마지막 12강에서 종교 문제가 단순히 종교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제이며, 종교의 본뜻을 삶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무언가에게 자신을 열고, '다른' 무엇을 통해 자신의 '그름'을 보며 성숙을 이루어 가야 함을, 그것이 신앙하는 삶,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은총에 응답하고 책임지는 삶임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3.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책을 구입하는 데 더 망설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의 '잘 팔리지 않는' 문제의식을 소개했으니 말이다. 분명, <종교신학 강의>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많은 고민거리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담겨 있고 역사·종교·인간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책 전체에 녹아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종교신학은 등장한 지 고작 반세기도 안 된, 여러모로 낯선 분야임이 틀림없고 종교신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신학자의 수만큼 다양하기에 논의할 거리도 무수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서평을 쓰는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갸우뚱하면서 많은 질문거리를 메모했다[이를테면 고전적인 기독교 신학은, 이 책의 논지에 따르면 철저하게 자신(기독교)의 '옳음'만을 강조하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신학이다. 과연 이를 현대 상황에 맞갖게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래도 이 책이 비아의 '제안들' 시리즈로 기획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책은 확신 어린 답보다는, 많은 물음과 대화를 촉구하는 책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이라는 토양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오늘날 종교 및 신앙과 관련해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를 질문과 토론의 선상에 올려놓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책의 공헌이다. 이런 좋은 강의가 책으로 나온 것은 독자에게 복이다.

이 책을 혼자서 읽고 책장에 꽂아 놓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가능하다면 몇 명이라도 진지하게 읽고 서로 질문거리를 끄집어내 토론하는 방식으로 읽을 것을 추천한다. 이런 독서 모임을 통해 지은이가 목표했던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대하고 관계의 성숙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주훈 / 루터대학교 신학과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현재 중앙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루터의 재발견>(복있는사람), <신론>·<교회론>(대한기독교서회, 공저)이 있고,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복있는사람), <기독교와 현대사회>(크리스천헤럴드)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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