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sh Expressions Korea'(Fx korea·공동대표 김종일·김홍일)는 개척학교 숲과 대한성공회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FxC)' 연구자들이 2017년 설립한 단체다. Fx korea는 '선교적 교회' 사역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뉴스앤조이>에 칼럼을 6차례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선교적 교회가 영미권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기구화되고 제도화된 기독교(크리스텐덤)가 더 이상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보이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조직으로서 제도로서 교회는 존재하나, 그것이 지극히 사적 영역에서 기능만 담당한다는 사실과 공적 영역에서 완전한 근대주의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 인도에서 오래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이다.

뉴비긴에게 영국 사회는 그가 오래 헌신했던 인도와 마찬가지로 근대주의의 우상 아래 신음하는 땅이었다. 복음의 공공성과 하나님나라의 실제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선교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뉴비긴은 다시 영국 사회를 선교지로 보면서, 치열하게 근대주의와 다종교 사회에서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또 다른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 사상과 통찰, 그리고 세상이 바로 하나님이 선교하는 현장이라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바탕으로, 뉴비긴의 후배들은 '선교적 교회'라는 새로운 교회관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선교적 교회는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제도로서의 국교든 아니든 상관없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가시적 공동체로 존재해야 하며 그분의 통치를 실현하는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성육신의 샘플로, 대조 사회의 대안으로 사역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실제적 운동가로, 사역자로, 그리고 그들이 세워 나가는 공동체가 교회로서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이 영국 성공회가 부르고 있는 Fresh Expressions(새로운 표현들)이다.

선교적 교회는 기존 교회와의 투쟁이나 대립, 또는 갈등이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더 성육신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의 새로운 표현인 것이다. 회심의 열매가 보이지 않고 기존의 신자들을 이어 나갈 다음 세대 그리스도인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실에서 관리형 목회자, 이미 있는 신자들을 돌보는 목양 패러다임은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 같은 고민과 반성을 하면서 대안을 찾은 무리 중 많은 이가 신자들(평신도)이었다.

상황화와 토착화를 타 문화권에서 적용하며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의 방법론이 이제 자국의 현장, 캠퍼스와 지역사회, 클럽과 동호회 등에서 적용해야 할 선교 전략이 된 것이다. 사실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단 신학교들과 수많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은 3년이라는 기간을 거치고 나면 제도권에 익숙해져서 큰 사고를 칠 줄 모르는(?) 전문 목사로 배출되어 목회로 나선다.

신학교에서 3년을 보내면서 신학생들은 신자로서 일터와 직장, 삶의 자리에서 경험한 소박하지만 강력했던 영적 재생산 능력은 사라지고 교회가 요구하는 매끈한 부목사 후보가 되어 버린다. 비신자들은 한 명도 곁에 없는 교회 울타리 내의 젊은 관리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라는 열매는 낳게 되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구도의 삶이며, 보냄을 받은 공동체로 세상에 들어가는 무리다. 여기서 과거 서구 교회가 자행했고 지금 한국교회도 포기하지 못하는 정복·지배·확장의 시스템은 불필요하고 의미가 없다. 오히려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세상 속에서 대안 공동체로서 대조적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섬기는 작은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중앙이 아니라 변방,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를 무대로 삼는 적은 수의 파이어니어(pioneers)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DNA에 있는 그 본래적 속성이 발휘되는 현장에 존재한다.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 1961~)와 앨런 허쉬(Alan Hirsch, 1958~)가 말한 대로, 그런 공동체는 위험한 일에 용기를 갖고 모험심을 발휘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언제나 그 존재 자체로 위험한 일을 감행했다. 그 존재가 위협적이었고, 상상하기 힘든 일을 해냈고,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관계를 맺어 나갔다.

성령은 그들이 문화권을 뛰어넘게 하셨고, 새로운 언어로 말하게 하셨으며, 혈통이 아닌 언약의 공동체로 존재하게 하셨다.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용기가 있었고, 손해 보는 과정을 감수하는 용기를 요구했으며 그렇게 생존해 왔다. 그 모든 미션은 모험적이었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이 일은 많은 수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마니아가 다수인 것을 본 적 있는가. 많은 지원자가 몰릴수록 더 까다롭게 회원을 제한하는 것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원칙이다. 왜 작은 교회로 존재하는가. 예수의 영으로 이끌림을 받는 사도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땅끝으로 가는 자들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는 움직이는 데 민첩하고, 결정 과정이 단순하며,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지역과 캠퍼스,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정, 일상의 삶을 회복해야 할 무리에게 조직과 제도, 시스템과 효율성으로 다가서는 것은 정부나 기업 몫이다. 교회가 입을 옷은 아니다.

사울의 갑옷은 사울에게는 필요할지 모르나 다윗에게는 불필요하다. 다윗에게 사울의 갑옷을 입히려 하지 말고 그동안 익숙해진 물맷돌을 쥐어 주어라. 학위증이 골리앗을 넘어뜨리지 않는다. 교단 마크를 달아야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작은 자리에서 가장 크신 하나님의 방법을 찾는 것이 작은 교회로서 선교적 교회를 세워 나가는 아름다운 구조가 될 수 있다.

김종일 / 동네작은교회 담임목사, 개척학교 숲 대표코치, Fx korea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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