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역사를 인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다. 역사가 일방통행이 아닌 탓이다. 사건들로 구성되는 역사는 복잡한 인과로 묶여 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확하게 사건들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은 역사학자에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자질이다. <성서, 역사와 만나다>(비아)가 의미 있는 이유다. 이 책은 민족의 경전이었던 성서가 어떻게 인류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살핀다.

이에 대한 근거로, 먼저 저자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 1923~2006)을 이야기해야겠다. 그는 루터교 목사로 활동하다가 정교회 신자로 삶을 마쳤다. 예일대학교 등에서 교회사 및 역사학 교수로 봉직했다. 40곳이 넘는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일급 학자다. 주목할 점은 그가 유대교신학교에서도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인상적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은 각기 다른 종교 공동체를 이루지만 성서와 성서 해석에 공동의 의무를 지고 있음을 알리는 데 헌신"(14쪽)했다는 것이다.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55권의 미국 영문판 <루터 저작선(Luther's Works)> 편집자이며, 그리스도교 사상·교리 전개의 역사를 정리한 5권짜리 책 <그리스도교 전통(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저자다. 기포드 강연 연사였다는 점에서 그 명성은 신학계에 국한돼 있지 않다. 세간에서 널리 인정받은 석학이다. 위대한 시인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역작 <영향에 대한 불안>(문학과지성사)을 남긴 미국 최고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 해럴드 블룸은 <성서, 역사와 만나다>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천 년을 관통하는 성서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다룬 이 책에는 펠리칸의 탁월함, 그리고 오랜 시간의 노고가 담겨 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대단히 유용한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고 지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자극을 준다. 이 책은 특히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절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균열을 담담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둘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앞선 언급에서도 추론할 수 있고, 헌사에서 "모든 그리스도교 동료-프로테스탄트, 로마 가톨릭, 정교회-에게 그리고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미국 유대교신학교에게"라고 밝혔듯, 이 책은 특정 종교에 국한해 성서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 성서 자체와 성서를 어떤 식으로든 공유한 종교들(프로테스탄트·가톨릭·정교회·유대교·이슬람 등) 및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층적으로 살핀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성서가 어떠한 면에서 같으며 어떠한 면에서 다른지, 왜 다른지를 다룬다. 즉 오랜 기간 이어진 성서의 역사를 다루며 성서의 내용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서를 어떻게 읽고 이해했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사,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교파 분열의 역사는 성서 해석 역사의 일부분이다. 여러 교파는 성서를 두고 대치한다. 그들이 모두 중요하게 여긴 신성한 문헌은 교파 분열을 촉진했다." (19쪽)

<성서, 역사와 만나다 - 민족의 경전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 김경민·양세규 옮김 / 비아 펴냄 / 416쪽 / 2만 원.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서는 누구의 것인가

<성서, 역사와 만나다> 원제목은 'Whose Bible Is It(성서는 누구의 것인가)?'이다. 이 질문이 이 책의 탐구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나가는 말'에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의 말을 빌려 "오늘날 모든 인류는 성서의 '일시적인 소유자'이자 '종신 세입자'"(379쪽)라고 이야기하기에 이르는데, 여기 도달하기까지의 논의는 전방위적이다. 성서의 언어와 번역 문제, 성서를 다루는 종교들 사이의 성서 해석 차이점과 유사성 등도 개략적으로 살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정리한 역사가 말해 주듯이, "무수한 주석과 해석에도 불구하고/수많은 논쟁과 강론, 설교에도 불구하고/그리스도교에서, 유대교에서, 혹은 세속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진 성서 연구에도 불구하고/정통과 이단이 벌인 각축전에도 불구하고/(이 책을 포함해) 수많은 책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헤아릴 수 없는 기도와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그만큼 헤아릴 수 없는 종교 탄압과 집단 학살에도 불구하고/끝끝내 벌어진 홀로코스트에도 불구하고"(377쪽) '성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질문을 얼마나 사려 깊게 다뤄 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저자의 글쓰기와 이 책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신중한 단어 선택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약'·'신약'·'타낙' 등의 표현을 상황에 맞춰서 나눠 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성서가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하기 때문에 성서를 어떻게 부르느냐, 성서를 이루는 각 책을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는 문제는 단순한 호칭 문제를 넘어선다. (중략) 이 책에서도 그리스도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신약'이라는 표현을 쓸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한 부분의 경우 '구약'이나 '첫 번째 언약'First Testament, '히브리 경전'Hebrew Scripture이라는 표현 대신 유대교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말인 '타낙'Tanakh을 쓸 것이다. (중략)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교 성서에서 사용하는 타낙을 언급할 때만 '구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21쪽)

이에 걸맞게, 역자들 또한 번역에 주의를 기울였다. '옮긴이의 글'에 있는 '덧붙이는 말' 한 부분을 가져오면 이렇다. "번역하는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유대교인'과 '유대인'의 구분이다. 맥락상 민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유대인'을, 종교 전통을 강조하는 맥락에서는 '유대교인'이라는 역어를 채택했다."(410쪽)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비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출판사가 편집자와 전문 독자 등이 참여하는 여러 차례의 '독회'를 통해 책 내용과 표현 전반을 꼼꼼히 점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서, 역사와 만나다>는 성서 각 권의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성서 내용을 정리할 때 각 권이 지닌 '상보성'(相補性)을 적절하게 드러낸다. 이 책이 밝히는 성서 각 권에 대한 정보는 여느 개론서 못지않다.

"사도행전은 때때로 도외시되었고, 요한의 복음서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견주었을 때 그리 많이 논의된 문헌은 아니지만, 신약성서에서 타낙의 역사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서신서를 읽는 이들은 쉽게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186쪽)

'오직 성서'의 명암

보수 개신교가 가톨릭을 비판하며 때때로 '이교'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그들의 고려 대상은 부패가 극에 달한 과거 가톨릭의 모습인 경우가 많다. 이는 적절하지 않다. '개혁'은 개신교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주창한 '오직 성서'라는 구호는 오히려 역사 속에서 분열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7장 '성서의 백성들' 이후 내용(이 책은 12장으로 구성돼 있다)은 누구보다 개신교인에게 필요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지금 시점에서 '종교개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성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학문적인 이견은 이내 교회의 갈등으로 이어졌으며 나아가 교회의 분열을 가속했다. 성서가 가진 유일한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특정 교회의 특정 성서 해석이 갖는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뜻했다.

(중략) 종교개혁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종교개혁 과정에 수많은 정치적 요인과 야망, 탐욕, 오해, 권력욕은 물론 오만과 편견 등 여러 '요소'가 개입했음을 인정할 것이다. (중략) 분열된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 구절을 근거 삼아 서로 파문anathemas and excommunication하기를 일삼았다." (262~263쪽)

20세기 "유례없이 성서를 열심히 읽은 이 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박해가 만연했고 집단 학살이 빈번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341쪽)고 당부하는 저자는, 성서가 하나님의 거룩한 책이기도 하지만 때 묻은 '인간'의 책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무엇보다 역사가 이를 확증한다. 아래 '옮긴이의 글'이 <성서, 역사와 만나다>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도, 아름답기만 하지도 않았다. 때로는 비극적이기도 했다. 한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성서의 역사는 갈등과 화해, 상호 몰이해와 이해, 일치와 분열로 겹겹이 쌓여 복잡한 층위를 이룬다.

누군가의 역사에 관심을 둔다는 것, 그녀 혹은 그가 살아온 길을 찬찬히 살펴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직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그런 일을 한다. 연인의 탄생, 성장 과정, 옛사랑, 그 혹은 그녀의 행복한 경험, 비루한 경험, 때로는 쓰라린 경험 모두를 살피고자 하는 이유는 과거의 그 사람마저도 끌어안고 싶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성서, 역사와 만나다>는 바로 이러한 열망의 산물이자 사랑의 기록이다. 또한 이 책은 그러한 열망과 사랑을 얼마간 간직하고 있을 당신을 성서라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낯선 세계'로 초대하는 한 편의 긴 초대장이다." (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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