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한인 교회 분쟁 때문에 한인 타운 커졌다"
정근하 조선대 박사, 'LA 한인 타운의 확장' 논문
  • 유영 (young2@newsnjoy.or.kr)
  • 승인 2017.10.24 15:41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LA 한인 교회 분열이 한인 타운 확장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그간 한인 교회 분열에 대한 연구는 여럿 있었지만, 한인 사회 확장과 교회 분열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근하 박사(조선대 종교사회학)는 9월 출간된 한국실천신학회 학술지 <실천과신학> 제56호에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 제목은 'LA 한인 타운의 확장: 한인 교회들의 분열을 중심으로'. 정 박사는 올해 초, 3개월 정도 LA에 머물면서 조사한 한인 교회 연혁과 현황, 분열 교회 교인과 유학파 동료 박사 인터뷰 등을 기초로 연구했다.

교회 분열이 한인 타운 확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 박사의 논리는 간단하다. 먼저, 한인이 모이는 곳에 교회가 생긴다. 한인이 많지 않던 지역이라도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예배와 모임이 있는 수·금·토·일요일에 한인 왕래가 빈번해진다. 성장하던 교회가 문제가 생겨 갈등하고 분열한다. 분열된 교회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 나간다. 이후 앞의 과정을 반복한다.

한인 교회가 한인 타운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원인은, 이민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데 있다. 정 박사는 선행 연구를 통해, 초기 이민자 사회와 교회의 관계를 분석했다. 교회는 초기 영어가 부족한 사람이 미국에 정착하는 일을 도왔고, 고달픈 현실을 함께 위로하는 가족 역할을 했다. 정 박사는 한인 교회의 긍정적 역할을 몇 가지로 평가한다.

"첫째, 기독교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고독과 피곤,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이민노동자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둘째, 교회는 교포들의 친교의 매체가 되었다. 예배 후 모국어로 교제하며, 인생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해결을 위해 협조하게 했다. 셋째, 조국과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갖게 함으로써 주체적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넷째, 교회는 한인들의 교육 센터가 되었다. 초기 이민의 65%가 (한글) 문맹자들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십 년 후에는 완전히 문맹을 퇴치할 수 있었다."

한인 교회가 이민 사회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인구통계로도 나타난다. 교인 상당수가 이민 후 교회에 출석했다. 정 박사는, 허원무 교수(노던일리노이대학교)가 1986년 발표한 논문을 인용했다. 허 박사에 따르면, 이민자가 급속하게 늘었던 1985년 미주 지역 한인 수는 60만 명에 달했다. 그중 교인은 42만 명이었다. 42만 명 중 15만 명은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던 이들이다. 가톨릭에서 개종한 4만 명을 합치면 19만 명이 개신교로 개종한 것이다.

한인이 가장 많이 유입된 LA 지역 한인 교회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1982년 LA 지역 한인 교회는 1972년보다 8배 늘었다. 장 박사는 이민 교회의 증가세를 <동양선교교회 30년사>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보여 준다.

"1965년 7개에 불과하던 LA 지역의 한인 교회 수가 1972년에는 개신교회 40개, 천주교회 1개로 증가했고, 1979년에는 개신교회 176개, 천주교회 4개로 증가했다. (중략) 1982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만 한인 개신교회가 319개, 천주교회가 5개나 되었다. 한인 신학교의 수는 8개나 되었다. 1990~1991년 한인 업소 전화부에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554개의 개신교, 13개의 천주교회, 17개의 신학교 명단이 실려 있다. 2003~2004년 한인 업소록에는 649개의 개신교와 16개의 천주교회, 3개의 성공회 그리고 38개의 신학교 명단이 실려 있다."

한인 교회들은 분쟁을 통해 분열됐다. 정 박사는 LA 지역 한인 교회의 대표적 대형 교회 동양선교교회와 나성한인교회를 비롯한 한인 타운에 있는 교회 15개 및 LA 지역 교회 71개 분열 역사를 정리했다.

한인 교회 분쟁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목회자가 너무 많이 생겨 자리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난립하는 신학교에서 목회자가 양산되고, 해외 유학을 마친 목회자들이 불법체류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교회 재정 문제와 교인 사이의 파벌 형성, 목사직 세습 등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쪼개진 교회는 LA 한인 타운 외곽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다. 정 박사는 "한인 교회들이 쪼개지고 나누어져 세포 분열을 하듯 교회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한인 교회들의 분열을 통한 새로운 지역에서의 이동은, 지금까지 한인들이 접근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으로 한인들의 행동반경을 확장시키는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교회 분열을 앞서 연구한 학자들은 교회 분열과 쪼개진 교회의 새로운 개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라종일 석좌박사(가천대)는 2002년 논문에서, LA 한 한인 교회 분열을 예로 들며 "한인 타운의 서진", "복음으로 주류 사회(백인 사회)를 정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해석했다.

"교회 분열은 LA 이민 사회가 확장하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다." 정근하 박사의 결론이다. 교회 중심으로 발전한 한인 사회의 단편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한인 교회가 분열을 멈추지 않는 이상 LA 한인 타운과 한인 사회는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A 이민 사회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 세워진 동양선교교회. 초대 목사 은퇴 후, 새로운 목사가 부임할 때마다 분쟁을 경험했다. 동양선교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정근하 박사의 논문은 현재 LA 한인 교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논문 초록에 4명과 인터뷰했다는 내용과 정 박사의 LA 체류 기간이 문제로 지적됐다. LA 한인 사회를 파악하기에는 정 박사가 만난 사람이 너무 적고 LA에 머문 3개월 역시 짧다는 것이다.

<미주중앙일보>는 10월 12일 보도에서 "한인 인구 및 한인 업체의 분포와 교회 분열의 연관성이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혀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교회 분열로 한인 사회가 확장됐다고 해도 그 확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한인 사회의 위상만 떨어뜨리는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전했다.

논문을 게재한 <실천과신학>은 정 박사 논문은 학회 심사 과정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실천신학회 책임 고문이자 <실천과신학> 편집장인 위형윤 교수(안양대)는 10월 2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논문 심사 과정을 설명했다.

"<실천과신학>에 투고하면 3명의 심사위원이 논문을 심사한다. 논문 통과 조건은 박사 논문 5편 인용, 각주 50~70개, 유사도 검사(표절 검사) 10% 미만이다. 논문의 논리성, 내용도 확인한다. 심사위원 3명 중 2명 이상이 합격 점수(80점 이상)를 줘야 논문이 게재될 수 있다.

정 박사의 논문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다. 정 박사는 관련 논문과 자료가 많이 부족한 LA 한인 교회와 관련된 내용을 다뤘다. 문헌 연구도 문제 없었고, 인터뷰 인원도 4명이 아닌 10명 가까이 진행했다. 우리 학술지에 기고하는 논문은 소논문이다. 인터뷰 인원을 많이 넣을 수 없다. 적당한 인터뷰가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논문도 이제 공공성 회복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정 박사의 논문은 한국교회 공공성 회복을 위해 접근했다고 평가한다."

정근하 박사는 LA 한인 교회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연구를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10월 2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LA 한인 교계가 (내 논문을) 읽고 싶은 대로 읽은 것 같아 아쉽다"고 답했다.

"당연히 연구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 짧은 기간 방문했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도 한정적이었다. 가장 오래된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 방문해서 역사 관련 기록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안타깝게도 방송국 역사를 정리한 자료도 없었다.

LA 한인 사회 확장과 교회 분열의 역학 관계는 미국 이민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이다. 나는 미국만큼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일본에서도 오랜 기간 지냈다. 일본 한인 사회는 확장되지 않았다. 미국 이민 사회의 형성 역사에 차이도 있지만, 사회를 구성한 구심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 한인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았기에 교회 분열이 한인 타운 생성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LA시에서 정해 준 한인 타운 구획은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인 타운은 넓어졌고, 여러 곳에 생겨났다. 실제 LA 한인 타운을 벗어난 오렌지카운티와 얼바인 등에서도 한인 타운이 형성되고 있다. 그곳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타운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내 논문은 하나의 연구 결과다. 한인 사회 역사의 한 축이 무엇이었는지 분석한 연구로 봐 주기 바란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영의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line 주차장 만들려고 거주민 퇴거시킨 대형 교회 주차장 만들려고 거주민 퇴거시킨 대형 교회
line 한인 운영 미국 기독교 대학 파산 신청 한인 운영 미국 기독교 대학 파산 신청
line 힘으로 해결하는 한국교회, 대화가 필요해 힘으로 해결하는 한국교회, 대화가 필요해

추천기사

line 권력과 주도권을 포기할수록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권력과 주도권을 포기할수록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line 그리스도교 신앙의 샘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길잡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샘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길잡이
line 예장합동, 여성 목사 안수 허하라 예장합동, 여성 목사 안수 허하라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