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유영 기자] 텅텅 빈 예배당이 나이트클럽과 술집 등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던 영국 교회가 최근 10년 사이 변화하고 있다.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FxC)'이라고 불리는 현상 때문이다. <뉴스앤조이>에 3월 18일 자로 실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브렌든선교연구소 구균하 신부 인터뷰 기사에는 FxC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잉글랜드 영토에 선을 그어 전도구를 만들고, 그 전도구에 속한 교회가 각 지역을 관할했던 영국성공회. 하지만 자기 지역을 벗어나 여러 전도구에 속한 사람, 혹은 아예 전도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것이 포착됐다. 그래서 생긴 단어가 '새로운 표현'이다.

현재 영국성공회에서 FxC는 또 다른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수백 년간 전도구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교회. 여기에 더해 취미가 비슷하거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지역과 상관 없이 모이는 것 또한 '교회'라고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개교회주의가 아닌 국교회(영국 헌법에 명시된 교회) 시스템을 이어 가는 영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개교회 중심주의 분위기가 강한 한국에서도 FxC가 가능할까. 이를 실험하려는 이들이 있다. 개척학교 숲과 대한성공회 FxC 연구자들이 올해 'Fresh Expressions Korea'(Fx korea·공동대표 김종일·김홍일)를 설립했다. Fx korea는 한국에서 FxC를 실험할 사람을 길러 내려고 한다. 11월 4일부터 FxC를 주제로 파이어니어 훈련 과정을 시작한다.

FxC는 탈(脫)교회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10월 9일, 2017 작은 교회 한마당에 참여한 Fx korea 관계자들을 만났다. 김홍일 신부, 김종일 목사, 구균하 신부, 염종열 목사가 좌담에 참여했다.

좌담에 참여한 2017 작은 교회 한마당에 참여한 Fx korea 관계자들(왼쪽부터 구균하 신부, 김홍일 신부, 염종열 목사, 김종일 목사) 뉴스앤조이 경소영

- 영국에서 FxC는 어떻게 발전했나.

김홍일 신부 / 영국은 국민 20%가 교회에 출석한다. 나머지는 교회를 떠났거나,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없다. 어린이는 5%다. 영국 교회는 고사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바쁘다는 이유로, 더는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 교회에 상처 받아 반감을 가지고 떠난 사람도 많다. 기존 교회가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이다.

교회에 오지 않는 80%를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가 영국 교회의 숙제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크리스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이들이 생겼다.

영국 성공회는 관할 사제가 '회중 + 행정 구역'을 관할한다. 사제가 동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른 교단 교회가 예배, 교회를 세우려고 해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 허락 없이 예배하는 공동체가 여기저기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영국 성공회는 실태 파악에 나섰다.

실태 파악을 기초로 영국 성공회는 1994년 '새 땅 개척하기'(Breaking new ground)라는 보고서를 냈다. 영국 성공회는 이런 현상을 선교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04년 보고서 '선교적 교회'(Mission-shped Church)에서는, 이런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교회의 틀을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은 이들에게 다가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이들을 '파이어니어'(pione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 성공회는 파이어니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들 경험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수용·격려해 파이어니어와 함께 성장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려받은 유산을 가진 전통 교회 방식과 새로운 교회 방식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혼합경제 교회(the mixed economy church)'로 지칭했다.

Fx korea 공동대표 김홍일 신부. 뉴스앤조이 경소영

- 영국 교회는 FxC로 모인 커뮤니티를 바로 교회로 인정하는가.

구균하 신부 / 영국은 교회가 되려고 하는 모임을 위한 인증 과정이 있다. 영국 성공회에는 '비숍스 미션 오더(Bishop's mission orders·BMO)'라는 단체가 있다. BMO는 FxC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슈퍼바이저를 지명한다. 슈퍼바이저는 FxC 커뮤니티를 관찰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BMO는 제출받은 보고서를 토대로 회의를 연다. FxC 커뮤니티에 목회자가 필요한 단계라고 판단하면 교회로 인정하고 목회자를 세운다. 하지만 그 전까지 자유롭게 풀어 둔다. 영국은 성공회와 감리교회 중심이다. 감독 중심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FxC로 모이는 모든 커뮤니티가 반드시 기성 교회로부터 '교회'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교회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체계를 만든 것이다. FxC 중에는 교회라는 인증이나 목회자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 '파이어니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가.

구균하 신부 / '파이어니어'를 '개척자'로 번역하면, 한국에서는 '개척 교회를 하려는 목사'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파이어니어의 개척은 한국교회에서 통용되는 '교회 개척'으로만 볼 수 없다. 훨씬 다양한 의미가 있어서 개척자로 번역하지 않기로 했다.

김종일 목사 / 파이어니어는 목회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FxC는 기존 교회가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모아 기독교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목회자보다 교인이 더 유리하다.

몇 년간 '개척학교 숲'을 하면서 고민했다. 개척학교 숲에는 주로 목회자만 찾아온다. 코치와 강사도 대부분 목회자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개척', '대안적 교회'를 말하는데, 기성 교단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목회자들은 기존 교회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일반 신자 중에는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많다. 선교적 교회에 관심이 있는 교회는 파이어니어가 될 교인이 개척하도록 돕는 게 좋다고 본다. 새로운 교회를 고민하는 교인은 무척 많다.

Fx korea 공동대표 김종일 목사. 뉴스앤조이 경소영

구균하 신부 / 같은 생각이다. 교인이 파이어니어가 된다면, 세상과 기존 교회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FxC가 교회 개척의 도구로만 인식된다면, 기존의 교회 개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염종열 목사 /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FxC 활동을 하기에 더 유익할 수 있다. FxC는, 소통하는 언어가 중요하다. 신학교에 가면 사고방식과 언어가 비기독교인에게서 더 멀어진다. 현재 신학교 체계가 '설교자'를 길러 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서, 교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소명이 있는 것 같아 신학교에 가면, 3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면서 언어가 바뀌고 사람이 변해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사라진다. 이런 사람이 파이어니어가 되어 FxC를 이루면 어떨까. 목회자가 되어 기성 교회로 들어가는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 기성 교회도 그렇지만, 교인들도 '목회자 없는 교회'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염종열 목사 / 한국교회 교인들 인식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라면 목회자가 꼭 있어야 하고, 목회자가 되려면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자격은 신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에 있다.

기존 교회에 한계를 느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평신도 교회 중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평신도끼리 모인 교회인데도 누군가 목사 역할을 한다. 그 사람만 설교한다. 기존 교회 방식을 벗어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교회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FxC를 통해 이런 한계를 깨 보면 좋겠다.

염종열 목사는 교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뉴스앤조이 경소영

김종일 목사 / 이런 경우도 있다. 사람 모으는 게 은사인 권사님이 계셨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잘 귀 기울이고, 편안하게 소통한다. 그때는 이런 말이 없었지만, 그분이 바로 파이어니어인 것이다.

이분은 30~40명을 모아 놓고 나중에는 꼭 목회자를 데려왔다. 그분 입장에서는 전통적 교회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순수한 신앙의 결정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가셔서 또 사람을 모으고 목회자를 청빙했다. 그런데 목사를 데려오면 꼭 그 공동체가 깨졌다.

이런 경우라면 목사를 꼭 청빙할 필요가 없다. 파이어니어가 된 교인을 중심으로 공동체로 설 수 있다. 전통 교회는 이들을 지원해 주면 된다.

- 11월부터 시작하는 파이어니어 강좌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가.

염종열 목사 /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의 성공한 모델을 도입하려고 한다. 그런데 더는 제시할 수 있는 모델이 없다. 교회 관련 세미나가 줄어든 이유도 여기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맞는 모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정해진 틀에만 묶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고, 열어야만 한국 문화와 상황에 맞는 선교 코드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많은 교회가 쫓아올 것이다.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많은 사람이 시도해 보아야 한다. 자기를 돌아보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가령, 앞서 말한 평신도 교회를 생각해 보라. 설교자 없이, 교인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교회 운영 방식은 너무 많다. 이런 고민을 함께할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김종일 목사 / 개척학교 숲에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교육생들은 따라가는 일에는 익숙했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힘들어했다. FxC 교육에 오는 분들은 나만의 길을 찾는 과정을 즐거워하기를 바란다.

김홍일 신부 / 강의 위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처럼 주야장천 강의만 듣는 곳은 없다. 우리는 질문하게 해서 성찰하게 도우려 한다. 현장과 공부가 분리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구균하 신부 / 왜 파이어니어가 되어야 하는지 계속 질문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답하지 않더라도 계속 질문 받으면 대답을 고민하게 된다. 고민이 내면화하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개념을 찾도록 돕는다면, 참가자가 파이어니어로 성장할 길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 길을 찾은 파이어니어는 한국교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파이어니어가 되어야 할 이유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한 구균하 신부. 뉴스앤조이 경소영
Fx korea에서 10월 넷째 주부터 <뉴스앤조이>에 6차례 '선교적 교회' 연재 칼럼을 게재하기로 했다. 첫 글은 Fx korea 김종일 공동대표가 맡았다. '선교적 교회와 작은 교회 운동'을 주제로 칼럼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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