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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참전한 전쟁, 부끄러운 일"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시민 평화 법정 내년 4월 개정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7.10.20 16:05

한국군과 베트남 피난민.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42주년이다. 남베트남을 지원했던 미국은, 북베트남과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간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전쟁 초기 제공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화력으로 승기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고 국내에 전쟁 반대 여론이 커지면서 결국 승리를 얻지 못한 채 본토로 철수했다.

베트남전쟁에는 한국도 참전했다. 한국은 1964년,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베트남에 파병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3년 3월에 모든 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약 32만 명을 파병했다. 이 기간에 5,000여 명이 전사하고, 1만 1,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치켜세웠다. 그는 "베트남 참전 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논란이 됐다. 베트남 현지에서 문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커졌다. 베트남 국회사무차장을 역임한 응우옌시중 박사는 6월 9일 베트남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이유가 바로 돈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돈을 위한 참전 행위는 '청부 살인'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베트남 외교부도 6월 12일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가 기억하는 베트남전쟁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
퐁리·퐁넛 학살 알려진 지 17년
진전되지 않은 양민 학살 연구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는 바로 '경제 발전' 논리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는 베트남전쟁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월남 파병은 조약상의 의무나 우리가 원해서 참전한 전쟁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 우방에 대한 신의를 지켰고, (중략)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차관을 보장받는 등의 반대급부도 얻게 됐다. 참전 중 수많은 국군 장병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벌어들인 외화는 상당 부분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로 지칭되는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해외파병 - 월남 파병에서 유엔평화유지군까지')

<베트남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한겨레출판)을 쓴 박태균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는 2000년대 초반 외국 학술회의에서 한국 동료 교수에게 "(베트남전쟁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한국에 베트남전쟁 참전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됐다는 뜻이었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온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이 기록들을 처음 접했을 때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10월 19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와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정기 세미나 강사로 나섰다. 그는 한베평화재단과 민변 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진상규명TF에서 활동해 왔다.

이날 강의 제목은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대변하는 방법 - 가해자의 자리에 서기'였다. 임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참전 이유와 구체적인 전쟁 활동 내용은 자세히 모른 채 '경제 발전'이라는 점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쟁은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개입한, 명분 없는, 불의한 전쟁이었다. 이는 당시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럽 사회는 참전을 거부했고, 전 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펼쳐졌다. 하지만 한국은 베트남전쟁 이유나 의미는 따지지 않고 '경제 발전'이라는 효과만 거론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전 세계에서는 반전운동이 펼쳐졌다. 사진은 1967년 미국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 모습.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공용 이미지

청룡부대 1대대 1중대는 19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마을에서 주민 74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군은 베트남전쟁 당시 노인·아이·여성 등 양민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혹은 1999년 <한겨레21>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구수정 상임이사(한베평화재단)는 당시 <한겨레21> 베트남통신원으로서, 한국군이 주둔했던 5개 성(꽝남성·꽝응아이성·빈딘성·푸옌성·카인호아성)을 돌며, 100여 명에게 들었던 피해 증언을 전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베트남 꽝남성에 있는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1968년 2월 12일, 청룡부대 1대대 1중대가 두 마을에서 주민 74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중대는 당시 인근을 돌며 베트콩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임재성 변호사는 올해 7월 베트남에서 만난 퐁니 마을 생존자 응우옌티탄 이야기를 소개했다. 응우옌티탄은 당시 8세 소녀였다. 총소리가 갑자기 들려 오빠·여동생과 함께 방공호로 몸을 피했는데, 곧 한국군이 나타나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와 보니 마을 주민들이 군인들 지시 아래 마을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오빠가 쓰러졌고 자신도 복부에 총을 맞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민들은 모두 사망했고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응우옌티탄 남매는 미군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구수정 이사는 한국군이 퐁니·퐁넛 마을을 비롯해 총 80여 개 마을에서 민간인 9,000여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2000년 제주 인권 학술 대회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9,000명은 근거가 불충분한 통계로 정산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임재성 변호사는 구수정 이사가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을 집계한 최초 통계자료를 발표했지만, 17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한 연구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고 했다. 연구자들이 해당 주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정부도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나 관련 부처는 이 사건을 부인하고 있다. 국방부도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활동 기록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한국도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진정한 평화는 자신을 가해자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진정한 평화는 자신을 가해자 자리 세우는 것" 
내년 4월, 시민 평화 법정 개정

임재성 변호사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독일은 독일군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억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만든 기념비 2,711개를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세웠다. 기념비 지하 전시관에는 희생자 정보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독일군이 어디서 이 사람을 체포했고, 어떤 수용소로 보냈으며, 어떤 방식으로 죽였는지 등등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글이 있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이 우리가 꼭 말해야 하는 핵심이다."

임 변호사는 "독일은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것을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독일 사회가 부러웠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기억하고, 책임져야 한다. 한국 사람들도 우리가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후대에게 전승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베트남전쟁으로 경제가 발전했다는 말은 부끄러운 얘기다. 돈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게 부끄러운 일 아닌가. 우리가 그때 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는지, 가서 어떤 일을 했는지 이제 다시 밝혀야 한다.

진정한 평화는 자신을 가해자의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 폭력으로 타인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그 사회는 평화를 이룰 힘을 갖게 된다."

임재성 변호사는 현재 퐁니·퐁넛 마을 사건과 하미 마을 사건을 근거로 시민 평화 법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여성 국제 전범 법정'이 모델이다. 당시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에서 온 피해자 60여 명을 증인으로 불러, 천황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모의 법정이다.

시민 평화 법정은 내년 4월 말 열린다. 주최 측은 이때 퐁니 마을 생존자 응우옌티탄를 포함해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과 당시 파병군인들을 증인으로 초대할 계획이다. 이 법정에서 원고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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