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모호한 정체성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정치 영역이 그렇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먼 '보수'와 '진보'로 갈라졌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태극기'와 '촛불'로 가시화했다.

0과 1. 이진법처럼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0은 0끼리, 1은 1끼리 뭉치고, 0은 1을 악마화하고 1은 0을 조소한다. 0도 1도 아니게 보이는 사람은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고, 은연중에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뭔가 이상하다. 세상은 0과 1로 구분되는가.

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는 0과 1의 어느 중간쯤 있는 영화다. 중간쯤에 서서 양쪽을 끌어당긴다.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는 영화의 목적은 알겠는데, 그래도 불편한 걸 어쩌나. 어느 한쪽에 서야 한쪽의 지지라도 받을 텐데. 미스 프레지던트는 그러기는 틀렸다.

영화는 '박정희 세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세계관을 짐작할 수 있다. 젊고 비교적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습만 사람이지 외계인처럼 보였다. 불편하다는 말은 어찌 보면 반은 틀린 말이다. 너무 이상해 보여서 오히려 마음을 놓았(?)으니까.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 민중총궐기에 맞불을 놓을 시기, "친박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보수 단체에서 돈을 받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돈이 목적인 사람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돈을 노리고 온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많은 사람은 신념, 믿음으로 그 자리를 채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저 언론사는 기사를 왜 저렇게 쓰지?', '저 인간은 왜 부패한 담임목사 옆에 찰싹 붙어 있지?', '저 목사는 왜 범죄한 목사를 편들지'…. 이런 고민을 쉽게 끝내는 답이 있다. '돈 때문이겠지.'

그들을 돈을 좇는 속물로 치부하면 조리돌리기 딱 좋다. 그런 속물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저들은 세계관, 신념,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냥 조롱하는 건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살 수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할 텐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조소하지 않고 들어 보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언론이 해야 할 일도 다시 생각해 본다. 쉽게 고민을 끝내 버리지 않는 것, 편 가르기보다 0과 1, 그 중간 어디쯤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 말이다.

※ 미스 프레지던트는 10월 26일(목) 개봉한다. (김재환 감독 인터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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