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종 제도는 1950년경 탄생했다. 개신교, 천주교 지도자들이 이승만 정부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군선교연합회·곽선희 이사장)는 올해 2월 23일 때아닌 '입장문'을 내놓았다. 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개신교가 1대 종교로 나타났는데, 군 선교와 관련 있다는 내용이었다.

군선교연합회는 '국군 장병 전도 진중 세례(침례) 운동'을 통해 2005~2015년 160만 명을 전도하고 세례·양육했다고 주장했다. 군인들이 전역한 뒤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했고, 결과적으로 신자 수 증가에 역할을 미쳤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지는 따져 봐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오랫동안 군대가 포교의 '황금 어장'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 종교들이 군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올 수 있었던 배경은 '군종 제도'와 관련 있다. 군종 제도는 한국전쟁과 함께 탄생했고, 황금 어장 신화를 써 왔다.

강인철 교수(한신대 종교문화학과)는 최근 펴낸 <종교와 군대 – 군종, 황금 어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현실문화)에서, 한국 군종 제도의 역사를 살펴보고 성찰해야 할 지점들을 짚었다. 강 교수는 현실문화 출판사 이용석 편집자의 부탁으로 군종 제도 연구에 착수했다. 군종 제도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으니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저자는 군종 제도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국가와의 관계에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교단 이익과 선교·포교를 위해 노골적으로 국가권력과 상부상조해 온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가권력도 종교들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며 이익을 도모했다.

<종교와 군대>는 △군종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시작으로 △독점에서 준독점으로: 특권으로서의 군종 △공동 운명체: 교단과 군종의 관계 △동질화에서 이질화로: 한국과 미국의 비교 △압축 성장과 무성찰성 △황금 어장의 신화: 도구주의, 종교 경쟁, 정교유착 △몇 가지 성찰의 쟁점들 △한국에서 새로운 유형의 군종이 출현할 수 있을까 등 8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다.

군종 독점한 '그리스도교'
불교는 박정희 정부 들어 참여

군종 제도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로 보면, 군의 종교사제는 1,600년 전부터 있었다. 군종 제도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보편적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강인철 교수에 따르면, 주요 100개 나라 중 군종 제도가 있는 나라는 미국·브라질·영국·스페인·터키·프랑스·한국 등 69개국이다. 중국·대만·일본·북한·이집트 등 31개국은 군종 제도가 없다.

한국에 군종 제도가 만들어진 시기는 1950년경이다. '그리스도교'로 불리는 개신교·천주교가 군종 제도의 물꼬를 텄다. 여기에 개신교 장로 이승만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줬다. 장로교·감리교·천주교를 각각 대표하는 한경직·류형기 목사, 캐롤 신부는 '군종제도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전쟁 중에도 대통령을 3번이나 면담하며 군종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그 결과 해군-육군-공군 순으로 군종 제도가 도입됐다. 초기 개신교단 중에는 장로교·감리회·성결교·구세군 4개 교단이 이름을 올렸다. 1950년대 장로교는 기장·예장통합·예장합동으로 분열됐다. 분열한 뒤에는 따로 군종을 배출했다. 1960년에는 침례교도 참여하게 됐다. 당시 전체 인구의 5%도 안 되던 그리스도교가 군종 제도를 독점한 것이다.

당시 교세가 가장 컸던 불교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불교계는 군종 제도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이승만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불교는 박정희 정부 때에야 군종을 배출할 수 있었다. 한국 불교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은 1968년, 첫 군종 장교를 배출했다. 그리스도교의 군종 독점 체제가 깨진 순간이었다.

"그리스도교 독점 체제가 해체되면서 한국 군종의 종교적 다원화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교 내부의 교파적 다원화는 이후에도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64쪽)

불교 다음으로 군종 제도에 참여한 종교는 원불교다. 1966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청원 운동을 벌였고, 40년이 지난 2006년에 허가를 받았다. 강 교수는 "3대 종교에 의한 준독점 체제 내지 과두 체제에서 다원화의 방향으로 특히 종교적 다원화로의 큰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군종에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역시 개신교다. 군대 내 종교 시설(2014년 기준)을 보면, 교회는 979개다. 법당은 409개, 성당은 282개, 원불교당은 9개다. 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는 1년에 약 150억 정도를 군종에 지원하는데, 이 중 개신교가 120억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종장교, 병사 상담 사기 증진 역할 도모했지만, 
군 인권 보호 활동은 미약 
1970년 '전군 신자화 운동', 종교 지도자 비판 의식 마비

저자 강인철 교수는 '황금 어장'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군종의 탈군대화, 민간화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군종 제도의 중심에는 '군종장교'가 있다. 군종장교는 장교단의 일원으로 참모장교 역할을 하고, 동시에 소속 교단으로부터 파송된 성직자의 기능을 담당한다. 군종장교는 주로 병사 '상담', '사기 증진' 활동을 한다. 그러나 군인의 삶의 질 향상, 군인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은 미약한 편이다.

어중간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신앙 전력화'와 함께 일어난 '전군 신자화 운동'은 군종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강인철 교수는, 이 시기 정부와 종교의 '달콤한 밀월' 분위기가 군종 안팎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썼다.

"1970년대 들어 개신교와 천주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특히 노동 현장, 도시 빈민촌, 농촌,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 사이에서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이 확산되었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에 의해 온갖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군 신자화 운동은 군종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종교 지도자들의 비판 의식을 거의 완전하게 마비시켰다. 정권과의 관계 방식 면에서 '긴장 어린 대결'과 '달콤한 밀월'이 그리스도교 교회들 내부에 불편하게 공존하던 시대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이다시피 한 지지 태도에 기초한, 정부 종교 사이의 달콤한 밀월 분위기가 군종 안팎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과 사건들 역시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군종장교들이 미국 정부의 군사-외교정책에 대해 예언자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사실과 대조된다." (141쪽)

종교와 군대의 밀월 관계는 지속됐다. 군사정권이 장기화하면서, 군부 엘리트와 교회 간 상시적 교류가 1961년부터 30여 년 이어졌다. 강 교수는 "군종 제도는 군부 엘리트와의 교류, 네트워크 형성 수단이 됐다", "교단의 정치적 영향력 확장을 위한 수단이자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지적했다.

군종 제도가 '특권'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개신교·천주교·불교는 군종 쿼터제 지분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외부인의 진입도 봉쇄했다. 2000년대 재림교회(안식교)가 군종 제도에 진입하려 할 때 개신교 교단들은 일제히 나서 막았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천태종과 진각종이 군종에 진입하려 할 때 조계종이 적극 반대하며 무산됐다.

"군종, 특권적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 높아
군종 제도, 군종장교 누구 위해 존재하는지 성찰해야"

강인철 교수는 "한국의 종교 지형 및 종교 시장의 구조적 변동 과정을 보건대, 군종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특권적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며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군종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학살로 대표되는 그 전쟁들의 추악한 측면들을 외면했다. 한국군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 군종이 고발한 사례는 전무하며, 만연한 병영 폭력과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서도 군종들이 거의 기여한 바가 없는 것 같다. (중략)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도 답해야 한다. 이른바 '녹화 사업'과 '삼청교육대' 같은 극심한 인권유린 행위들이 군대를 무대로 공공연히 난무하던 1980년대에 군종장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군종장교들은 수많은 군 내 '의문사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던가? 나아가 일부 장병들이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군 내부의 부조리들에 대해 용감하게 '양심선언'을 감행했을 때 군종장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254쪽)

"보다 근본적으로, 황금 어장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군종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만든다. 군종 제도와 군종장교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은 누구에게 봉사하는가? 현재의 한국 군종은 진정으로 군인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가? 아니면 군종은 교단들의 제도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군종 활동의 한정된 물적·인적 자원과 시간은 군인 신자들(기성 종교인들)을 위한 종교적·영적 보살핌, 나아가 장병 일반의 영적·정신적 복지 증진에 온전히 사용되고 있는가? 오히려 그 자원과 시간의 많은 부분이 무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을 자기 교단으로 영입하거나, 그들을 상대로 자기 교단을 홍보하는 데 바쳐지고 있지는 않은가? 새신자 영입과 교단 홍보가 자원 배분 우선순위가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황금 어장의 산화에 열광하기에 앞서, 이런 근원적인 의문들이 제기되는 연원과 배경을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이다." (282쪽)

강인철 교수는, 한국의 종교를 향해 황금 어장의 신화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나아가 군종의 탈군대화·민간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말한다. 군인의 사기를 북돋는 '치어리더'가 아니라 '비판적 양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독립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종의 탈군대화/민간화는 군대에 대한 군종의 종속성에서 빠져나와 이를 자율성 강화의 방향으로 역전시킴으로써, (1)정교분리 위반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2)군대 내의 군종 역할 전환(장병 인권의 옹호자·변호인)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3)윤리적·신학적 딜레마들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고, 나아가 (4)더 나은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현재의 군인 중심 시스템에서, 과도적인 군인-민간인 공존 시기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민간 우위' 혹은 '완전한 문민화/민간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런 여정(旅程)을 '지금'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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