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여야가 138년 전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이론 '토지 공개념'을 놓고 때아닌 공방을 펼치고 있다.

추미애 대표(더불어민주당)는 9월 4일 국회 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인용하며 한국 경제가 '지대 추구의 덫'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는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지대가 함께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지대 특권이 야기한 불평등과 양극화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력한 부동산 대책과 임대료 관리 정책을 세워 지대의 고삐를 틀어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대표는 10월 9일 기자들과의 오찬에서도 헨리 조지를 거론했다. <뉴스1>에 따르면, 그는 "생산에 투자돼야 할 자본이 생산에 투자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지대로 빼앗기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헨리 조지가 살아 있었다면 땅의 사용권은 인민에게 주되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 중국 방식을 지지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하태경 의원(바른정당)은 10월 10일 소셜미디어에서 추 대표를 비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토지는 사적 소유로 돼 있다. 토지의 사적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민주당 대표로 있다. 이렇게 위험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당 대표는 물론 소속 의원으로 있는 것도 부적합하다"며 당이 추 대표를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 공개념'이 무엇이기에, 한 경제학자가 138년 전 말한 이론을 여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인용하고 야당 의원이 비판하는 것일까. 하 의원 주장처럼, '토지 공개념'은 위험한 사상일까. 추 대표가 인용한 헨리 조지의 사상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고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다. 그의 책은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려
"토지에서 얻은 수익·지대
국가가 모두 환수해야"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다. <자본론> 저자 칼 마르크스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1879년 출간한 대표 저서 <진보와 빈곤>(김윤상 역, 비봉출판사)은 당시 약 300만 부가 팔렸으며, 19세기 말까지 영어로 쓰인 논픽션 분야 책 중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은 '진보 속 빈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술 문명은 급속도로 발달하고 경제도 크게 성장했다. 당대 지식인들은 곧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산업혁명 이후 한 세기가 지나도, '진보'하는 사회와 달리 '빈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헨리 조지는 이를 해결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대도시 속의 비참한 생활을 접했을 때 당혹스럽고 괴로웠으며 그때부터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치유 방안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느라고 편안하게 지낼 수 없었다." (<진보와 빈곤>, 542쪽)

그는 개인이 토지를 독점하고 불로소득을 얻는 데서 양극화와 불평등이 비롯했다고 봤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지역사회가 발전하면, 땅 주인들이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다. 도시 개발로 땅의 가치가 올라가면, 땅 주인이 얻는 지대(임대료 혹은 매매 차익)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작 지역사회가 발전하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한 도시 노동자들 임금은 크게 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자면, 헨리 조지가 개인의 토지 소유를 부정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소유'는 크게 사용권·처분권·수익권 등 세 권리로 이루어진다. 헨리 조지가 문제 삼은 건 '수익권'이다. 그는 개인이 토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처분해도 되지만, 토지에서 얻은 수익(지대)만큼은 국가가 모두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토지가치세'다.

토지가치세는 토지단일세라고도 불린다. 헨리 조지는 토지에서 얻은 수익(지대), 불로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대신 다른 세금(임금·이윤)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멈추고 생산 활동에 투자하기 시작하며, 면세 혜택을 받은 임금노동자들의 생산성도 증가해, 소득 증대와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산업 혁명 이후, 기술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는 성장했다. 하지만 빈곤은 사라지지 않았다. 헨리 조지는 이러한 양극화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빈곤이 낳은 고통과 야만성
하나님 욕되게 하는 행위 
국내 기독교인 경제학자들
'성경적 토지 정의' 위한 모임 창립

헨리 조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토지 정의를 실현해 빈곤을 해결하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구현하려 했다. 양극화와 불평등은 하나님 뜻에 위배된다고 여겼다. 그는 <진보와 빈곤> 말미에 이렇게 썼다.

"빈곤에서 생기는 고통과 야만성을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섭리로 돌린다거나 또는 두 손을 모으고 만물의 아버지 앞에 가서는 대도시의 궁핍과 범죄의 책임을 미룬다면 형식상으로는 기도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신성모독이다. 영원하신 존재를 폄하하는 행위다. 정의로우신 분을 욕되게 하는 행위다." (<진보와 빈곤>, 532~533쪽)

"빈곤이 타파되면, 탐욕이 고결한 열정으로 변하면, 인간을 반목하게 하는 질투와 두려움 대신 인류애가 평등으로부터 피어나면, 최하층민도 안락과 여가를 누리는 상황이 되어 정신력에 대한 속박이 풀리면, 우리 문명이 얼마나 높이 날아오를지 누가 측정할 수 있겠는가? (중략) 이는 요한이 파르모트(Parmot) 섬에서 황홀경에 빠져 감은 눈으로 보았던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정신의 극치며 지상에 실현되는 하나님나라로서 벽옥 담장과 진주 대문을 가진 곳이다. 이는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 다스리는 나라다!" (<진보와 빈곤>, 535쪽)

한국에도 헨리 조지 사상과 이론을 전파하고 연구하는 '조지스트'들이 있다. 교회에서 희년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남기업 소장의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헨리 조지를 따르는 이들을 '조지스트'라고 부른다. 한국에도 헨리 조지 사상과 이론을 국내에 보급하고 연구하는 조지스트가 있다. <진보와 빈곤> 등 헨리 조지 주요 서적을 번역 출간한 김윤상 교수(경북대학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한 이정우 교수(경북대학교),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성경에서 말하는 토지 정의 가치를 전하고 실현하기 위해 1984년 한국헨리조지협회를 만들었다. 이후,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성토모)'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현재 희년함께·토지+자유연구소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수도원 공동체 예수원을 세운 대천덕 신부도 헨리 조지 사상을 전하는 데 앞장섰다.

헨리 조지와 토지 공개념을 지지하는 모두가 소위 '진보'도 아니고, 공산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대형 교회 목사들도 토지 공개념 도입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는 2007년 <복음과상황> 인터뷰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빈부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현실 경제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헨리 조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랑의교회도 부동산 폭등의 피해자다. 700명 모일 때 지은 건물에 4만 명이 출석한다. 강남에 있지만 땅에 대해선 피해자 중 하나다. 교육 장소가 협소해서 (교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중략) 통일이 되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북한 토지 전체에 토지 공개념을 실시하면 북한은 엘도라도, 즉 황금의 땅이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

두레교회 김진홍 원로목사도 저서 <김진홍 칼럼>(대장간)에서 노태우 정부가 토지 공개념 정신을 담은 법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토지 공개념의 철저한 실시는 우리 체제의 생존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헨리 조지와 토지 공개념을 지지한다고 꼭 '진보'인 건 아니다. 공산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오정현 목사는 과거 헨리 조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노태우·노무현 정부
토지 공개념 제도 시행
결과는 실패
"종합부동산세 강화하거나
국토 보유세 도입해야"

과거 노태우·노무현 정부가 토지 공개념을 제도화한 적이 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토지 공개념을 기초로 3개 법안(택지소유상한법·개발이익환수법·토지초과이득세법)을 만들었다. 개발이익환수법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오래가지 못하고 폐기됐다. 개발이익환수법도 2003년 말 효력이 정지됐다.

택지소유상한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 소유를 금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택지는 주거용 또는 부수 건물의 건축용지로 이용할 수 있는 토지를 말한다. 당시 법에 따르면, 개인이 200평 이상의 택지를 취득하거나 법인이 택지를 소유할 경우 당국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은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소유 상한이 낮고 소유 목적이나 택지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상한선을 정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개발이익환수법은 법인이 택지 개발, 공단·관광단지·유통단지 등을 조성할 때 발생하는 이익을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정부는 초기 개발 이익의 50%를 징수하다 얼마 안 돼 25%로 과세 비율을 낮췄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기업 부담을 줄여 준다는 명목으로 2003년 말 효력 정지했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지역개발 등의 이유로 토지 가격이 급증할 경우 초과 이득을 과세하는 법이다. 이 법은 헌재에서 위헌보다 한 단계 낮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토지 지가를 감정평가사 같은 전문가가 아닌 하급 공무원이 맡도록 한 점과 양도세 부과 때 이중과세가 된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

노태우 정부의 토지 공개념 정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헌법재판소가 해당 정책을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걸 보고, 일부는 토지 공개념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가 과세 기준을 세우거나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발생했던 거지, 토지 공개념을 반영한 법 자체가 헌법에 위배되는 건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도 토지 공개념을 바탕으로 2005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시행했다. 종부세는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토지, 건물)을 소유한 이에게 국세청이 별도로 누진세율을 적용해 과세하는 제도다. 주택의 경우 국세청 기준 시가로 6억 원 초과, 나대지(지상에 건축물이나 구축물이 없는 대지)의 경우에는 공시지가로 3억 원 초과, 빌딩·상가·사무실 등의 부속 토지의 경우에는 공시지가로 40억 원을 초과했을 때 과세한다.

종부세는 이명박 정부가 기준을 낮추면서 입법 취지 목적을 상실하고 이전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보유세를 올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미애 대표 연설 이후, 여론도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 도입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와 SBS는 10월 5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개헌 관련 공동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는 토지 공개념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1.8%가 찬성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의원(더불어민주당)도 9월 21일 SBS CNBC(경제 채널)에 출연해,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보유세를 적게 매기면 (부동산 보유에 따른 금전적 부담이 없어) 토지나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경제적 강자가 되고 불평등이 커진다. 소득세 등은 과하지 않게 물려 '부자가 되기 쉽게' 하되, 보유세 등 불로소득에 붙는 세금은 높여 '부자로 남기 어렵게' 하는 게 좋은 조세제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과세 제도를 강화 혹은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기업 소장은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이명박 정부 때 후퇴한 종합부동산세를 다시 강화하는 안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다. 종합부동산세(국세)와 재산세(지방세) 과세 기준을 강화해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자본이 생산적인 활동으로 흘러가 경기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강수 교수는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국토 보유세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국토 보유세는 보유세와 기본 소득을 결합한 제도다.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세금을 징수해 세수를 모든 국민에게 '토지 배당' 명목으로 나눠 주는 방식이다. 전 교수는 "국토 보유세를 걷으면 대략 세수로 15.5조 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모든 국민에게 1인당 연 30만 원씩 토지 배당으로 지급하면, 전체 가구의 95%가 순수혜 가구가 된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국유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한민국 국유지 비율은 약 25%다(2016년 기준). 전 교수는 "대다수 선진국은 국유지 비율이 50%대다. 국유지가 증가할수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임대 정책을 강화할 수 있고, 시민들이 지불하는 사용료도 공공 임대 사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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