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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갑 자손들이 포도주를 먹지 않은 이유
타협할 것인가, 절개를 지킬 것인가
  • 희년함께 (hgakor@hanmail.net)
  • 승인 2017.10.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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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의 틈새 상상하기

후세 사람이 보기에 성경은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다. 성경의 원저자 및 편집자들은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가 아니라 당대의 청중과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기에 당대의 상식이다 싶은 내용은 과감히 생략을 한다. 그래서 2,000여 년이 지나서 성경을 읽는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간혹 나온다.

예레미야 35장 레갑 자손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예레미야 35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자손들을 불러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명령한다. 레갑 자손들은 선조 요나답이 집을 짓지 말고, 포도원과 밭을 소유하지 말고, 장막에서 살며 포도주도 마시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포도주를 먹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대비되는 레갑 자손들의 순종을 칭찬하며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을, 레갑 자손에게는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복을 선포한다.

레갑 자손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요나답은 왜 후손들에게 저런 명령을 내렸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다. 단순히 금욕주의로 삶을 살라는 차원이었을까. 단지 조상의 유언이라는 이유로 손해와 불편함을 감수하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언가 후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 없이는 250년 가까이 조상의 유언을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요나답이 유언으로 집을 짓지 말고, 포도원과 밭을 소유하지 말고, 포도주를 금하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다면, 하나님 명령에 지독히 불순종하는 우리네 삶에 조금은 레갑 자손과 같은 결기와 각오가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예후 혁명의 일등 공신
레갑의 아들 요나답

레갑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긴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여호나답이라는 이름으로 열왕기하 10장에 예후와 함께 북이스라엘을 재건하는 혁명가로 잠시 등장한다.

예후 혁명의 시초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다(왕상 21장). 연속적인 쿠데타 정국에서 정권을 찬탈한 오므리는 자신의 아들 아합을 시돈의 왕이자 아세라 신의 제사장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킨다. 엣바알의 딸과의 정략결혼으로 바알과 아세라 숭배 문화와 토지 무한 축적이 가능했던 페니키아의 토지법이 이스라엘로 흘러 들어왔다.

이 와중에 토지의 영구 매매를 금지하고, 각 지파 각 가족에게 토지를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의 토지법과 바알의 토지법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사건,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토지법을 지키고자 포도원을 아합왕에게 팔지 않았던 나봇은 아합 왕 아내 이세벨에 의해 죽임당하고 포도원을 빼앗긴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이후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이세벨 시체를 개들이 먹을 것이며,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멸절할 것이라는 신랄한 심판을 선포한다. 아합이 죽은 후 10년도 되지 않아 예언을 이루어진다.

아합의 온 집을 멸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선지자 엘리사의 제자에게서 들은 예후가 아합의 온 집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중에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 혁명에 함께해 달라고 요청한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예후의 병거에 함께 올라 이스라엘에서 아합의 온 집과 바알 숭배자들을 척결한다.

이처럼 아합의 온 집을 척결하고 예후와 함께 혁명을 성공시킨 요나답은 전리품을 나누고 축배를 들어도 모자랄 판에 왜 후손들에게 집과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라고 하고, 포도주도 금했을까. 요나답의 출신 배경과 예후의 혁명 과정을 세밀히 살펴보며 열왕기하 10장의 행간에 담긴 요나답의 심경 변화를 상상해 본다.

근원적 회복 꿈꿨던
겐 족속 레갑의 아들 요나답

요나답은 어떤 심경으로 예후의 제안에 응했을까. 열왕기서 기자는 요나답을 레갑의 아들이라고 간단히 소개한다(왕하 10:15). 성경학자들은 레갑을 겐 족속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으로 본다(삿 1:16, 대상 2:55). 겐 족속은 이방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야훼 신앙 회복을 꿈꾸며 예후의 혁명에 동참했던 요나답의 열심은 이방 민족인 겐 족속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불러 주신 은혜에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원가지인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마치 당연한 듯이 여겼지만 접붙임받은 가지인 겐 족속은 언약 백성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 실감 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요나답은 바알 신앙에 물들어 가던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던 예후를 전폭 지지하며 야훼 신앙의 근원적 회복을 꿈꾸었다. 하지만 예후의 개혁은 미완의 개혁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므리 가문이 들여온 바알 신앙은 척결했지만, 여로보암이 만들었던 금송아지와 산당은 없애지 않았다(왕하 10:29). 금송아지와 산당을 없애면 백성들 마음이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 향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은 권력 유지를 위해 백성들의 욕망을 최고의 신으로 섬기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가 아니라 눈에 보이고 우리가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산당에 있는 금송아지가 인간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해 준다. 예후의 혁명으로 비록 오므리 가문이 멸망하고 바알 숭배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근원적 회복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요나답은 깨달았을 것이다.

요나답은 이스라엘의 율법이 온전히 회복되어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구현되는 이스라엘을 꿈꾸었을 것이다. 예후의 개혁으로 눈에 보이는 오므리 가문과 바알 추종자들은 사라졌지만, 풍요를 향한 우상숭배는 어느덧 백성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말았다. 예후도 굳이 거기까지는 손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기에 백성들 마음이 떠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요나답은 이스라엘의 근원적 회복을 꿈꾸었지만 바알의 토지법이 점점 더 이스라엘 전반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타협하며 살 것인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두 가지 길에서 세상이 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을지라도 나만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다짐을 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다"(수 24:15)는 여호수아의 결기를 이어받는다.

요나답은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법, 희년의 토지법이 시행되지 않고 바알의 토지제도인 토지 사유제가 만연해 가는 이스라엘에서 토지를 가지지 않고 살 것을 요청한다.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서 살며, 포도원과 밭 없이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불의한 바알의 토지제도 수혜를 입지 않고 살 것을 요청하였을 것이다. 풍요라는 포도주에 취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한 이스라엘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유언하였을 것이다. 요나답의 후손들은 선조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유언을 지키며 겐 족속의 유목 시절 삶으로 돌아간다.

혼합 신앙 빠져 있는 우리에게
"누구를 섬기고 있나" 질문 던져

예레미야 35장의 레갑 자손 이야기 바로 앞에 배치되어 있는 예레미야 34장은 하나님의 법을 철저히 짓밟는 이스라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바벨론 침략 위기에 대응하고자 희년을 선포하며 노예를 해방한 이스라엘 고관들과 기득권층은 전쟁 위기가 일시적으로 해소되자마자 해방된 종들을 다시 잡아들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하나님의 법을 악용하는 이스라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선포한다.

반면, 하나님은 선조 요나답을 좇아 희년의 토지법이 무너진 이스라엘에서 불의한 바알의 토지제도와 타협하지 않는 레갑 자손들에게 그들의 후손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설 것이라고 축복한다.

부러질지언정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기와 각오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고 불의한 제도의 수혜를 거부하는 여호나답과 레갑 자손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희는 누구를 섬기고 있느냐고. 하나님과 천황을 겸하여 섬기고, 하나님과 불의한 권력을 겸하여 섬긴 이들이 여전히 한국교회의 주류로 머물러 있고, '이신칭의'를 왜곡해 21세기 면죄부를 남발하며, 돈의 신 맘몬이 우리의 일상과 교회를 장악한 상황 속에서 너희는 누구를 섬기고 있느냐고.

이성영 / 희년함께 학술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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