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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술과 음주를 논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들
[서평] 성기문 <기독교 역사 속 술>(시커뮤니케이션)
  • 이원석 (dkdndn2@naver.com)
  • 승인 2017.10.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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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이루는 여러 항목을 통해 교회와 세속 사회의 간격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돈·섹스·권력 등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을 들 수 있다. 또한 술과 담배, 대중음악 등 취향의 영역에 속한 것들도 빼놓을 수 없다. 가령 한국교회는 음주를 죄의 하나로 보지만, 세속 사회에서는 인간의 삶과 역사를 구성하는 중심 요소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술 마시는 인간'(Homo Imbibens)도 인간을 가리키는 여러 개념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술을 마시는 이유

그렇다면 대체 인간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위무(慰撫)와 휴식의 수단이다. 가령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창비)는 바로 완충제로서의 술을 이야기한다. 삶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술은 그 신산(辛酸)한 여정을 감당하기 위해 들리는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이역'이다. 물론 이를 달리 말하면, 술은 곧 도피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술을 매개로 삶의 여러 괴로움을 엿볼 수 있다. 권여선에 따르면, 술은 삶의 고통을 투과해서 보여 주는 분광기다.

혹자에게 술은 문화의 모태이다. 가령 패트릭 맥거번(Patrick E. McGovern)의 <술의 세계사(Uncorking the past)>(글항아리)에 따르면, 농경의 기원은 식량의 필요가 아니라 술(맥주)에 대한 갈망에서 찾아야 한다. 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문명도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과거의 (코르크) 마개를 뽑는다'는 제목부터가 이를 암시한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술과 축제의 신인 동시에 광기의 복수자이기도 하다. 술의 양면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술이라고 하는 존재가 개인의 삶과 인류의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에 기독교 또한 술에 대해서 단순하게 재단(裁斷)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술에 대한 입장은 지극히 단선적(單線的)이다. <기독교 역사 속 술>(시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이런 편향된 상황에 대한 교정제로 의도된 것이다. 저자 성기문의 목회적 목적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다만 저자는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방종하지 않게 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술 마시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6쪽)

<기독교 역사 속 술> / 성기문 지음 / 시커뮤니케이션 펴냄 / 227쪽 / 1만 3,000원. 뉴스앤조이 최승현

아디아포라로서의 술

<기독교 역사 속 술>(의 저자 성기문)은 음주를 권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류하지도 않는다. 술 자체에 대해서도 저자는 신학적 맥락 안에서 "절대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속하고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려고 한다."(6쪽) 간단히 말하자면, "음주는 역사적으로 비본질적 문제(아디아포라)다."(7쪽) 이를 드러내고자 그는 많은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술의 "문화사적 연구"(5쪽)이자 교회사적 고찰의 결과를 본서에 집약하였다.

무엇보다 술의 신학을 논의하기 위한 토대 구축을 위해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조망하는 데에서 <기독교 역사 속 술>의 강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8장 이후 개신교 역사 속에서의 술에 대한 논의에 있다. 개혁자 루터와 칼빈(8장), 청교도(9장), 19~20세기 미국 역사(10장)와 한국교회(11장)에 대해 두루두루 살펴보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면면이 독자의 눈길을 모은다. 교회와 세속의 역사에 자리하는 여러 사실들을 건조하게 서술하는데, 외려 그런 방식이 더 설득력을 주는 듯하다.

어떤 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결코 금주를 주장한 바가 없다. 절주(節酒)는 금주(禁酒)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금주령의 근원은 19세기 미국의 금주 운동과 그에 영향 받은 미국 교회와 선교사들에 직결된다. 청교도'주의'의 영향(193~195쪽)을 지적하지만, 17세기의 청교도들은 술을 마셨다(맥주를 즐기고, 럼주를 신의 선물이라 불렀다). 요지는 금주 운동이 오랜 교회사적 흐름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교회의 금주령 배경('한국교회의 금주령에 대한 이해', 192~198쪽)을 청교도주의와 감리회의 영향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는 데에 그친다. 하지만 이 부분은 10장(금주의 시대)과 11장(한국 개신교 전래와 근본주의 운동)을 전제적으로 재구성하는 가운데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그 이전 논의를 염두에 두는 가운데 이 두 개의 장을 검토한다면, 더 포괄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술의 신학을 논의하기 위한 첫걸음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기독교 역사 속 술>은 그간 애매하게 다루어 왔던 술과 음주의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사실관계에 있어서 다소 부정확한 측면이 있다면, 이에 대한 비판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가령 <미주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김동문 선교사의 꼼꼼한 비판적 서평은 성경 본문과 성경 시대에 대한 성기문의 다소 취약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과 (세 번에 걸쳐 연재된) 서평을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더불어 좀 더 신학적 함의를 개진하면 좋았을 법한 대목들이 있다. 가령 "이와 같은 예수=포도주(혹은 포도주틀)의 상관관계는 기독교가 발전해 가면서, 나중에 신학적으로 심화되었다"(89쪽)라고 운을 뗀 후에 뒤에서 (저자가 많이 참고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인) Krengliger의 <The Spirituality of Wine>에서 중세 논쟁을 정리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133~134쪽)으로 갈음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설과 평가가 뒤따르지 않은 것은 독자 입장으로서는 아쉽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저자의 이후 작업과 다른 신학자들의 후속 논의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기독교 역사 속 술>의 의의는 술의 신학을 논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술에 대한 한국 교계의 저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술 담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아가페출판사, 1997), <술 마셔도 되나 - 술 술이 문제로다>(쿰란출판사, 2011), <느헤미야 팟캐스트 3 - 정치와 술, 왜 못 해?>(홍성사, 2014), <나도 중독자였다 – 임 목사가 들려주는 술과 사랑 이야기>(선양미디어, 2017) 등이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술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역사적으로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기독교 역사 속 술>은 그간의 논의에 결여된 공백을 메우고 있고, 그 점에서 술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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