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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들어오면 국가 무너진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콩고 여성 도르카스 씨의 한국 생활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7.10.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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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사람들은 '난민'이라고 하면 여전히 시리아·IS·이슬람 등을 떠올린다. 우리 옆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집단으로서의 난민 묘사에 익숙하다.

이런 인식은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편견이 더 심하다. '난민'이라고 하면 바로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최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개헌 논의 중, 한국교회는 또 한 번 '난민 = 위험한 이슬람 신자'라는 인식 수준을 보여 줬다.

한국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는 7월 19일 "(헌법) 개정안 제1항에서는 '국민'을 '사람'으로 바꾸어, 우리 자국민이 아닌 사람도 보호하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이는 소위 '망명권'을 두려는 것으로 보는데, 우리나라가 이를 허용하면, 세계 각지의 난민들과 이슬람 사람 등이 무분별하게 한꺼번에 몰려와, 국가의 안보와 질서가 무너지는 대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논평을 냈다. 난민과 무슬림을 위험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집단으로서의 난민이 아닌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난민 개개인의 삶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단체 한국알트루사(박영희 회장)는 매월 한 차례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다. 여름 방학이라 휴강했던 '난민과 함께 살기'는 9월 26일 서울 계동 한국알트루사 본부에서 모임을 재개했다. 콩고 여성 도르카스 씨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난민 지원 제도 없어
"아예 밑바닥에서 시작"

도르카스 씨는 2010년 5월 조국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다. 수도에 있는 킨샤샤대학교에서 공공보건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카빌라 부자(父子) 대통령의 독재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긴 독재 기간,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을 억압해 온 카빌라 대통령 치하에서 콩고 출신 난민 수는 급증했다. 그도 해외행을 택한 수많은 난민 중 한 명이었다.

도르카스 씨는 간호사였지만 한국에서는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하지 못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삶을 한국에서 새롭게 일구어야 했다. 조국에서 취득한 대학교 학위, 간호사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살면서 쌓은 모든 인간관계, 소유하고 있던 모든 물건을 내려놓고 '0'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정치 탄압을 피해 왔지만 한국은 도르카스 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2014년 6월, 도르카스 씨의 난민 지위 신청을 거절했다. 한국에서 만난 콩고인 남편과 함께 두 자녀와 살고 있는 도르카스 씨는 현재 '인도적 체류 허가'를 얻어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의 희망은 아직 난민 심사 과정 중에 있는 남편이 정식 난민 자격을 얻는 것이다.

도르카스 씨는 한국에 도착해 가장 힘들었던 것을 '난민 지원 시스템의 부재'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1993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 도착한 난민을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시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 도착했어요. 한국은 난민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이 아예 없더군요. 유럽·미국에 가면 최소한 언어는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요. 학생 신분이었으면 학생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데,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아예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가끔 난민 제도가 어떻게 구비돼 있는지 잘 모르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왜 너희는 한국에 와서 언어도 안 배우고 일도 안 하고 그러고 있느냐.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난민으로 한국에 오면 배운 것을 전혀 쓸 수 없고 일자리도 구할 수 없어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통로도 없고요. 그런 사정을 모르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속상하죠."

콩고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도르카스 씨는 전문 역량을 펼칠 수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한국에서 난민 심사를 거부당한 뒤에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본국에서 전문직 공부를 마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힘들어한다고 도르카스 씨는 전했다.

아픈 딸 안고 발 동동 
"내 품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1993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신청한 사람은 2만 2,792명. 그중 난민 자격을 획득한 사람은 678명에 불과하다. 난민 자격은 거절돼도 '인도적 체류 허가'를 얻는 경우는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에 해당하는 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는 있어도 직장을 얻거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도르카스 씨는 현재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린 두 자녀가 힘들 때 마음껏 병원에 갈 수 없다는 것, 아픈 아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도르카스 씨를 눈물짓게 한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에 갔다가 '의료비 폭탄'을 맞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딸이 아팠던 때를 이야기하고 있는 도르카스 씨. 뉴스앤조이 이은혜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출을 최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도르카스 씨. 어쩔 수 없이 약국을 찾는 일이 훨씬 잦다. 얼마 전 여섯 살 딸이 아플 때 동네 병원을 찾았다. 도르카스 씨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의사는 "종합병원에 가면 진료비가 많이 나오니까 처방한 약 먹고 버티면 될 것"이라며 약을 지어 줬다. 시간이 지나도 딸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다.

결국 안산에 있는 외국인 지원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소개해 주는 곳이었다. 기다림 끝에 딸을 조금 더 큰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었고, 아이는 일주일 가까이 투병한 후에야 회복됐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아이가 내 품에서 그냥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지원 센터를 거쳐야 한다는 게 쉬운 현실은 아니에요. 우리도 제도만 보장된다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데…."

도르카스 씨 남편도 의료보험이 없어 고생을 했다. 남편은 6개월 계약으로 닭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아직 난민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하루 일하고 돈 버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한 지 4개월째,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병원비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소식을 들었다.

"닭 공장 사장은 남편이 병원에 가니까 남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구했어요. 6개월 계약이었는데 4개월에서 그냥 끝났고요. 남은 임금을 못 받은 것은 물론 의료보험 혜택도 사라져서 또 한 번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를 내야 했죠."

"내 삶은 오늘도 전투 중"

사회에서 거절당했다는 좌절감,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매일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도르카스 씨. 그럼에도 도르카스 씨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난민'이라고 하면 무슬림이 많을 것 같지만 도르카스 씨는 개신교인이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본국의 전쟁이 하루속히 끝나 모두 평화롭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도 불안하죠. 지금은 어리기 때문에 또래들과 잘 지내기는 하는데 가끔 '쟤는 흑인이라서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돈이 없다 보니까, 아이들이 뭘 사 달라고 하거나 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없느냐고 말할 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어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하나님께 우리를 지켜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죠."

한국알트루사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난민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도르카스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막 도착한 난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다른 난민을 만나 대화하고 서로 위로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오히려 힘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난민을 돕는 NGO와 함께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라크 출신 난민 유스라 씨와 함께 '맘쉐프'라는 푸드트럭을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매주 금·토 저녁,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에서 아프리카·중동의 음식을 선보이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며 웃음 지었다.

한국을 찾은 난민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한국인들과 동행하는 것도 그에게는 큰 기쁨이다. 도르카스 씨는 대화에 참여한 한국알트루사 회원들처럼 난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한국인들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내 삶은 오늘도 전투 중입니다. 매일 싸우고 있어요. 삶 앞에 놓인 장애물과 어려움도 많지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 나갈 거예요. 어렵다고 속으로 되뇌다 보면 그 생각이 나를 잠식하고 내 상황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거든요. 힘들어도 그 속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고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이런 태도로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 운동이란?

(사)한국알트루사는 여성들의 자원봉사 단체로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지향합니다. 무료 여성상담소와 주말 대안 학교 '재미있는학교'를 운영하며, 정신 건강 계간지 <니>를 발행하고, 오케스트라 모임, 뜨개 모임, 노래 모임을 합니다. '핵없는세상', '난민과함께살기'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 운동은 난민을 불쌍한 대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협력해 마음을 나누는 친구로 지내고자 합니다. 알트루사 홈페이지와 소식지를 통해 난민의 상황을 알리며 함께 공유합니다. 매월 정기 모임에 난민을 초대해 깊이 있게 대화합니다. (문의: 02-762-3977~8, http://www.altru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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