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신비한 듯, 미지의 것에 대한 믿음을 빙자하여 어이없는 확신감을 갖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과 상식을 부정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 관습적으로 믿어 왔던 것만을 믿을 뿐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습관에 의존하여 오도되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믿음을 우리는 확증 편향이라고 부른다. 확증 편향의 자기 함정을 형성한 사람들은 자기가 믿어 왔던 내용과 다른 사실과 지식 모두를 부정하거나 일부러 무력화한다.

온갖 고정관념과 타성들, 나아가 은폐와 음모에 빠지는 오도된 믿음들은 곧 온갖 비리와 몰상식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확증 편향을 행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소위 지식인이나 과학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이들의 확증 편향은 개인의 심리적 성향만으로 그치지 않고, 은폐와 기만 그리고 자가발전의 권위 의식을 통해서 자기 권력 형성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감염성 병증으로 이어진다.

요즘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수많은 확증 편향 중에 단연 으뜸가는 것은 "창조과학"의 횡행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창조과학의 신봉자들은 '젊은지구창조론'의 신화를 실제 사실로 믿는다. 구약성서에 나온 대로 6,000년의 지구 나이와 창세기에 쓰인 6일 창조론에 기반한 교리의 믿음 체계를 창조 신앙이라고 한다. '6,000년' 설화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종교로서 본다면 그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모든 종교 교리의 원형들은 모두 그런 광대한 서사시들의 조각 모음이기 때문이다.

창조 신앙은 성서 문자로만 나타난 종교적 상황으로서 '대홍수 이야기'(a religious appearance)를 마치 역사적 사실 같은 '대홍수 이론'(the flood theory)으로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 시리아와 요르단 지역에서 오늘의 코카서스 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있었던 거의 모든 고대 종교에서 일반화되었던 '대홍수 이야기'를 기독교만의 고유한 창조 신화로 승화한 것은 기독교의 대단한 신화 창조 능력으로 여긴다.

이러한 창조 신앙에 대해 시비를 따지지 않으며 그럴 필요를 갖지도 않는다. 원래 과학은 종교 교리 체계의 하나인 노아의방주처럼 '대홍수 이야기'에 관심도 없었다. 과학은 노아의방주에 태운 동물들 중에서 북극의 북극곰과 호주 대륙의 주머니쥐가 어떻게 같이 배를 탈 수 있었는지, 지구 90만 종의 곤충을 어떻게 모았고 어떻게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태웠는지, 지구의 거대한 산맥들을 꽉 채울 정도로 엄청난 홍수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그런 이야기 모두에 대하여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신앙 체계를 과학적 지식으로 둔갑하려는 미신적 조작에 있다. 믿음을 지식으로 둔갑하는 조작은 일종의 미신이며 주술이다. 불행히도 미신을 지식처럼 조작하는 주술 전략이 한국 사회에 이미 크게 유포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창조과학"이다. '과학 지옥 창조 천국'을 외치는 창조과학의 표방자들, 소위 창조과학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지식의 혼란을 유도하는 전략이 정도를 한참이나 넘어서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수많은 화석 증거, 지구 지표면 전체에서 드러나는 지각판과 지질 단층의 증거들, 퇴적물의 증거들, 암석층의 분석 증거들을 단칼에 거부하고 역공하며, 억지로 꿰맞춘 주장들을 내놓는다.

창조 신앙을 과학으로 위장하려는 창조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과학적 증거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변형시키거나 조작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정보국'이라는 웹 사이트에서는 공룡의 생명종의 역사까지 조작하거나 생물학의 기본인 암수 양성 번식까지도 왜곡시킴으로써 건강한 기독교인까지 혼란에 빠트린다. "창조과학"이 과학적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고 거부하는 이유는 의외로 종교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과학을 믿는 일부 창조 주술가는 창조과학을 선교하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사과학적 도구로 사용한다. 이런 조직적 전략을 위해 창조과학은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진화생물학을 거부하고 소수자 평등주의마저 강하게 공격한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과학적 사유와 추론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만약 현대 생명과학에서 진화론을 부정한다면 유전자공학에서부터 항생제 의약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명공학 기술에서 당장 손 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은 사실을 일부러 무시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들의 억지가 가능한 이유는 강력한 몰과학적 확증 편향이 그들에게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일반 사람에게도 그런 위험 요소가 잠재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는 한다. 편향된 믿음, 거짓에 대한 동참, 위약 효과(placebo effect), 물신주의, 그럴듯함에 대한 기대감, 남들 따라 무조건 믿게 하는 집단 동조 의식, 기만에 대하여 기꺼이 세뇌당하고 싶어 하는 자기기만의 유혹 등이 우리 행동 성향 안에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마술사는 그런 인간의 허점을 역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믿음의 권력자는 그런 허점을 통해 사람들을 현혹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한다. 특히 창조과학은 꽤나 거창하고 그럴듯한 과학용어를 사용하여 믿음의 대상을 지식의 체계로 바꾼다. '믿음 행위'만으로 부족해질 수 있는 종교의 집단의식을 지식으로 위장된 신앙 권력으로 채우는 것이 창조과학의 핵심이다.

창조과학은 자신의 사회적 병증을 자기 합리화한다.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창조 신앙으로 사람들을 선교하려는 종교적 의지를 넘어서 있다. 창조과학을 표방하는 소위 지식인들은 겉으로는 창조 신앙을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지식 권력을 지향한다. 여기서 지식 권력이란, 그들 개인의 확증 편향을 집단의 확증 편향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집단 지식의 주도자로 되려는 데 있다. 창조과학과 같은 종류의 확증 편향이 집단 맹신주의로 되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창조과학 지식인 대부분이 한반도의 역사 왜곡과 비리 정치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려는 자기기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해로 그칠 일이 아니라, 우리는 이런 창조과학류의 주술적 문맹을 경계하고 없애야 한다. 일부 창조과학자는 아주 손쉽게 혹은 기꺼이 일베 동조자에서 일베 지도자로 변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논란 중인 박성진 교수 곧 물러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박성진 개인만이 아니라 잠재적 박성진이라는 한국의 몰과학적 미신 사회를 퇴거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데이터 조작하는 부정행위, 제자에게 갑질하기, 연구비만 따 먹으려는 프로젝트 등의 연구 부정행위 등, 권력형 지식사회의 수많은 병증이 자동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나아가 실험실 연구는 열심히 하지만 일상에서는 중심 잃은 비과학적 사고를 하는 무중력 상태의 '진공관 연구자'도 따라서 줄어들 것이다.

"난 그냥 알아", "아니면 말고", "내가 해 봐서 다 아는데", "너희들은 여전히 낭만적이군", "밀어붙이면 다되지 않겠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는데 웬 시비야", "참고 기다리면 유토피아가 올 거야", "불신 지옥", "빨갱이들"이라는 단어가 횡행하는 한국 사회에서 "생활 주술"과 "생활 미신"이 판치고 있다. 창조과학에서부터 빨갱이론 등의 권력형 믿음들, 무임승차와 낙수 효과 등의 공허한 믿음들, 환상과 가공이 실제를 지배하는 유토피아의 믿음들은 사실의 인식론과 자연의 과학을 주술과 미신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부터 주술을 떨쳐 내야 하고, 위장된 미신을 과학과 구별해 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다가올 미래에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일상성의 문맹, '4차 미신 혁명'(Superstition 4.0)이 올 수 있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15] 생활 미신, 창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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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 / 상지대학교 교수(과학철학)

*이 원고는 웹진 <ⓔ시대와 철학>에 실렸던 내용인데, 많이 수정하여 다시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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