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는 동안 100여 건의 목회자 성폭력 제보를 받았는데, 피해자가 만족할 만한 성과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중략) 피해자를 적절히 돕지 못했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홍보연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양성평등위원장)는 2015년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8년간 기독교여성상담소 상담국장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그는 "엄청난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상담소를 나왔다고 했다. 목회자 성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교단과 교회가 오히려 피해자를 매도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좌절을 느꼈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뉴스앤조이>가 9월 5일 주최한 긴급 좌담에서도,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나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교회가 바뀐 게 없다고 했다. 좌담회 주제는 '문대식 목사 성범죄로 보는 한국교회 청소년 사역'이었다. 홍보연 목사를 포함해 주원규 목사(동서말씀교회), 이은혜 기자(<뉴스앤조이>)가 패널로 나왔다.

좌담회는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했다. 패널들은 주제가 청소년을 상대로 일어난 성범죄인 만큼 행사장에 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참석자 30여 명도 심각한 표정으로 패널들 말에 귀 기울였다.

좌담회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성범죄 목회자 편드는
교단과 교회 중직
피해자 약점 이용한 문대식

좌담회는 완고한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성폭력 인식 수준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홍보연 목사 말처럼, 목회자 성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교단과 교회 중직들은 대부분 목회자 편에 섰다. 홍 목사는 1998년부터 2006년 1월까지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근무하면서 성폭력 제보를 100여 건 받았지만, 사법 처벌을 받은 사람은 2명뿐이라고 했다.

"목회자 성범죄는 사회 법으로도 처벌하기 어렵다. 법정에서는 가해자가 얼마나 강제했고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따진다. 그런데 목회자 성폭력 같은 경우, 목회자가 영적 권위를 앞세워 순종을 강요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겉으로 볼 때에는 합의된 성관계처럼 보여 처벌하기 어렵다."

교회법으로도 성범죄 목회자를 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각 교단에는 목회자 성범죄 징계 규정이 부재한 실정이다. 홍 목사는 "기독교여성상담소에 있을 때, 가해자 처벌 규정과 법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지만 교단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벌써 15년 전인데, 아직도 교단에는 성폭력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했다.

이은혜 기자는 엄밀히 따지면 이동현 씨도 '성폭력' 때문에 면직당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속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 헌법에는 성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다. 이 씨는 교단 헌법 권징조례 중 △교리상으로나 도덕상으로 교인을 크게 실족하게 한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훼손하게 한 중죄를 범한 경우라고 판단돼 징계를 받았다.

홍보연 목사는 각 교단에 목회자 성범죄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목회자 성범죄가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은혜 기자는 이번 문대식 목사 사건 피해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거나 아버지가 없는 한부모 가정이거나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자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기자는 상담을 통해 신변을 알게 된 문 목사가 이를 이용해 이들에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문 목사가 범죄 이후 피해자 입을 막는 과정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너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는 말로 달래다가, 나중에는 가족을 거론하며 자신의 가정을 지켜 달라고 했다. 그것도 안 되면 성경을 인용하며, 발설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망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에는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했다.

수십 년 반복된 이야기
성범죄 근본 처방은
성차별 구조 개선

올해 가을 총회를 앞두고 각 교단에서는 목회자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권오륜 총회장) 양성평등위원회는 '교회 내 성폭력 금지와 예방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총회에 헌의할 계획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성희 총회장) 국내선교부는 목회자, 장로, 직원을 대상으로 성 교육을 실시하는 안건을 청원할 예정이다.

감리교여성연대는 7월 말 △총회 양성평등위원회 신설 △목회자 진급·연수 과정에서 양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시행 △교회 성폭력 특별위원회 설치 및 특별법 제정 등을 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에 제출했다. 장개위는 감리교여성연대의 요구안을 부결했다.

홍보연 목사는 "최근 몇 년 사이 각 교단 안에서 성범죄 사건이 터지면서, 여성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예방과 교육이 중요하다며, 목회자와 중직자를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과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범죄를 야기하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 내 성차별적 구조에 있다. 홍 목사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성 불평등 때문이다. 성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교회를 성 평등한 구조로 바꾼다는 말이다. 여성국을 설치하거나 여성 할당제를 확대해 구조를 바꿔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논의는 벌써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다. 이은혜 기자는 사건을 터뜨렸을 때보다 후속 취재를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목회자 성범죄가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문제를 지적해 왔는데도, 교회는 전혀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홍보연 목사는 "감리교여성연대가 제출한 성폭력 및 성 교육 관련 법안은 모두 부결됐고, 여성 할당제도 폐기하려고 했다. 우리는 총회 현장에서 성폭력 및 성 교육 관련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 이번 한 번으로 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스러운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주원규 목사는 청소년 사역을 할 때 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청소년들과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청소년 사역은 어떻게…
교리·금기 강조 말아야
평등한 관계 형성이 중요

문대식 목사나 이동현 씨는 모두 유명한 청소년 사역자였다. 청소년 사역자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욱 분개했다. 주원규 목사는 문대식 목사나 이동현 씨 같은 청소년 사역자들이 남성 중심적 성경 해석으로 혼전 순결 등을 강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잘못된 성 정체성을 심어 줄 수 있고, 청소년 사이에 남녀 차별적인 위계 관계를 조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은 종교 스토리텔링을 쉽게 받아들이고, 종교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때 남녀 위계 관계도 더 견고해진다. 문대식 목사나 이동현 씨처럼 성경을 문자 그대로 차용할 때, 남성은 여성을 돌보는 존재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재로 여기는 왜곡된 성 정체성을 심어 줄 수 있다."

"자위는 죄",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죄" 등, 성(性)을 얘기할 때 금기만 강조하다 보면 청소년들이 성을 잘못된 시각으로 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 목사는 "교리·금기는 최대한 뒤로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분명히 사고 칠 거야'라는 걱정이 들겠지만, 그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섹슈얼리티와 금기를 얘기하지 말고, 섹슈얼리티와 세상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왜 동북아시아 포르노는 강간의 텍스트인지, 온라인상에서는 왜 이렇게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범람하는지, 왜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가 자리를 잃어버렸고 남성 중심의 영화만 재생산되는지, 이런 문화적 코드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원규 목사는 '관계'를 강조했다. 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아이들 말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듣고 대화할 수 있는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대식 사건 이후 '청소년 사역하지 말라'는 글도 썼지만, 나를 포함해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해 온 청소년 사역을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청소년들은 한국교회와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세대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 사역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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