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에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 과학의 건강성을 담보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 연속 기고'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글들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1650년, 북아일랜드 아마의 대주교(Archbishop of Armagh)였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성경을 꼼꼼히 조사해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오후 6시경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천지창조가 언제 일어났는지 알아내려는 시도를 어셔 대주교 혼자만 했던 것은 아니다. 10세기에서 18세기의 유럽에서 기원전 4000년 전후를 천지창조 시점으로 계산했던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기원전 4000년,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기원전 3977년 4월 27일,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기원전 3961년에 천지창조가 일어났다고 보았다. 어셔 대주교의 계산 결과는 1701년 잉글랜드 성공회에서 발간하는 킹 제임스 버전(KJV) 성경에 공식 채택되었다. 성경의 본문에는 이런 내용을 추가할 수 없으니 주석으로 달렸을 것이다.

사실상 영어권 성경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던 킹 제임스 버전 성경과 마찬가지로 어셔 대주교가 계산한,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오후 6시라는 천지창조 시점 역시 영어권 많은 기독교 신자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지구의 나이를 6000년에서 1만 년 정도로 보는 일부 기독교 신자의 생각은 이러한 성경 해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어셔 대주교가 1650년 당시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계산한 것은 아마도 당시로서는 믿을 만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해 얻은 결과일 것이다. 1650년이라는 시기를 과학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가 유리관 속의 수은을 이용해 공기에도 무게가 있음을 보인 것이 1643년, 로버트 후크(Robert Hooke)가 현미경을 이용해 세포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1665년의 일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주위의 대기가 어떤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고, 세포 안에 다양한 세포소기관과 세포핵이 있으며, 세포핵 안에 염색체를 이루고 있는 DNA가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누구나 알다시피) 17세기 중반의 과학적 지식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오늘날의 과학적 지식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현대 과학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45억 4000만 년 정도로 본다. 우주는 138억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태양계는 46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의 연구가 축적되어야 했다. 서양문명이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혜를 보탠 과학자도 많은 경우 기독교인이었다.

지구의 나이를 둘러싼 긴 논쟁에서 눈에 띄는 인물 중 한 명은 19세기 후반의 물리학자인 켈빈 경(William Thomson, 1st Baron Kelvin)이다. 당대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켈빈 경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지질학자들에 맞서서, 말하자면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였다.

당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는 여러 과학적 시도가 있었는데, 켈빈 경은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을 활용해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전체가 녹은 상태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냉각되어 현재의 단단한 지각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보고 암석의 냉각 속도를 계산해 지구의 나이가 2000만 년에서 4억 년 사이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후에 이것을 1억 년으로 정정했다. 그러니까, 19세기 말의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독실한 기독교인 과학자가 추정했던 '젊은 지구'의 나이가 1억 년이었다는 이야기다.

켈빈 경의 추정에는 암석이 녹는 온도를 1,200도가 아닌 4,000도로 잡는 등 틀린 가정이 있었고, 지구 내부에서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로 인해 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냉각 속도도 잘못 계산되긴 했지만,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합리적인 방식으로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훌륭한 과학적 시도였다.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논쟁과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의 발전을 거쳐 지구의 나이는 1억 년에서 15억 년, 30억 년으로 늘어나다가 현재 약 45억 4000만 년으로 정착되었다.

지구가 6,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거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을 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사람이 자신이 가진 모든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일도 정도가 있는 법. 큰 고양이와 작은 고양이의 문을 따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면 모를까,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판단력을 가진 (혹은 그런 생각을 가진 단체와 동조하던) 사람에게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맡기려 한다는 소식은 많은 과학자에게 경악을 넘어 공포를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내가 청문회장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에게 먼저 지구의 나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겠다. 지구의 나이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질문에 6000년에서 1만 년이라고 대답한다면 최소한 그의 과학적 사고 일부가 17세기에, 1억 년 내외라고 대답한다면 19세기 말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에, 세상의 파고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야 할 중소 벤처기업들에게 17세기, 혹은 19세기의 과학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장관이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여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출처: [창조과학 연속 기고 - 2] 17세기로 돌아갈 것인가, 21세기를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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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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