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술을 마실 것인가 마시지 않을 것인가 문제는 여전히 한국교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과거에는 술을 마시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까지 설교한 목사가 있었다고 할 정도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기독교가 금주를 이야기한 지는 200년밖에 안 됐다고 한다.

예수님도 술을 마셨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마 11:19)이라고까지 비판을 받았다. 가톨릭만 봐도 술과 담배에서 자유롭다. 게다가 유럽이나 미국 개신교에서는 음주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청교도는 독한 럼주를 마셨으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도 음주를 했다. 루터의 아내인 카트리나는 맥주를 직접 빚었고, 아내의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루터의 편지도 있다고 한다. 칼뱅은 건전한 술 문화를 위해 '기독교 펍'을 만들기도 했다.

'신의 선물'에서 '악마의 유혹'까지,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술의 다양한 모습을 다루는 책이 나왔다. <기독교 역사 속 술>(시커뮤니케이션)이다. 성경에 있는 술 만드는 법부터 시작해, 성찬 문제, 음주 문제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살핀다. 술을 마실 것인지 안 마실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제시한다. 8월 31일, 서울 청파동 한 카페에서 <기독교 역사 속 술> 저자 성기문 교수를 만났다.

<기독교 역사 속 술> 저자 성기문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유독 한국교회에서 술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심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술을 안 마시게 된 지는 200년도 안 됐다. 금주와 절주 운동은 180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공장 제조주에 대한 금주로 시작했다가 모든 술에 대한 금주로 이어졌다. 한국 개신교의 금주 배경에는 이 운동이 있었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 기독교의 금욕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면모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 술 때문에 가정 폭력을 저지르거나, 집안을 돌보지 않거나, 병을 앓는 등 개인·가족·사회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초창기 선교사들은 술을 금지하면서 음주를 구원 문제와 연결했다.

감리회나 장로교에서 기독교인의 근거로 술·담배를 끊는 것, 첩을 들이지 않는 것 등을 언급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 거듭남의 징표로 많은 사람이 술·담배 끊는 것을 이야기한 것도 금주에 영향을 미쳤다. 갑자기 술 생각이 안 난다든지, 담배가 써서 못 피우게 됐다든지 등 예수를 믿어 며칠 사이에 술·담배를 기적적으로 끊는 체험이 있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술·담배에 대한 태도를 규정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개신교가 사회를 변혁하는 차원에서 절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술·담배 등을 끊게 하고, 농촌을 살리고 부채를 탕감하는 등 윤리 운동, 사회 운동으로 이어지다가 일제에 의해 폐지됐다. 그 후 이 운동의 흔적이 교회 안에 음주에 대한 정죄로만 남은 것이다. 금주 운동, 절제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등의 좋은 선례(先例)를 남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율법주의화해 술을 마시는 기독교인을 정죄하게 됐다.

- 결국 한국 개신교가 금주를 주장해 온 것은 윤리·도덕적 문제가 크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술·담배를 금지하면서 정작 중요한 다른 윤리 문제는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면도 없지 않다. 개신교인은 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책에도 썼지만, 술은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다. '아'는 '없다', '디아포라'는 '본질'이라는 뜻이다. 본질이 아닌 것들이라는 말인데, 술 문제가 그렇다. 술을 마시는 것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술 마신다고 다 사고 치는 것도 아니고, 술 안 마신다고 사고 안 치는 것도 아니다. 술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잘못 들으면 내가 '술 전도사'인 줄 알겠다.(웃음)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술이 구원의 조건일 수도, 구원의 결과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술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안 마시는 사람은 마시는 사람을 정죄하고, 마시는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안 마신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시는 분이나 안 마시는 분이나 자유로움 가운데 교제를 늘려 가는 게 좋다고 본다.

사실 개신교 일부 교단만 금주를 한다. 장로교나 감리회는 교단 헌법에 목회자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는데, 이것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 한국 개신교가 전래되던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세월이 흘렀으니까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술을 무조건 마시라는 말도 아니다. 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각자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바울서신에 술을 사랑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술에 지배받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번역이 잘못된 점이 없지 않다. 술을 마시면 당연히 취하게 돼 있다. 바울의 말은 고주망태, 술고래 등 술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치면 커피나 다른 음식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다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기독교 역사 속 술> / 성기문 지음 / 시커뮤니케이션 펴냄 / 227쪽 / 1만 3,000원. 뉴스앤조이 최승현

- 책에서, '거룩한 음주', '적당한 음주'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의미인가.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 한국 사람이 과음하는 것은 직장에서 3·4차 가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음주운전을 처벌하고, 김영란법을 제정하는 등 법적인 변화도 있다.

청교도도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고, 더 독한 럼주를 가지고 미국으로 넘어갔다. 술을 금지한다고 세상에 범죄가 없어지는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족끼리, 친구끼리 술을 매개로 교제하는 차원에서 음주가 이뤄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건전한 문화 아닌가. 교회는 오히려 술 문화를 건전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교회는 1,800년 이상 술을 마셔 왔다. 음주를 정죄하거나, 음주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갖지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건전한 음주 문화를 만드는 게 좋겠다. 음지에 있는 것을 양지로 데려올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술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구절도 있다. 책 제목에서 밝혔듯, 신의 선물로 사용할지 악마의 유혹으로 받아들일지 각자 판단해야 한다. 다만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적인 논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더 파헤칠 필요가 있다.

- 책에 보면, 칼뱅이 제네바에서 술집을 폐쇄하고 기독교 펍을 만들어서 운영하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칼뱅 시대의 유산을 이어받은 '신학 펍'을 언급하기도 했다. 신학 펍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루터는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술을 마시는 데 어떤 제한을 두지 않았다. 칼뱅은 거룩한 주점을 만들어 거룩한 음주 문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웃길 수 있는데, 몇 잔 이상 마시지 말아야 한다거나 술을 마실 때 기도해야 한다거나 옆 사람에게 권하지 말라거나 하는 규정이 있었다. 음주 문화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사람들은 술을 마셨으니, 술이 갖고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려 했던 것이다.

신학 펍이 뭐냐면, 책에 썼듯이, 내가 속한 북미기독교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에 있는 목사 한 분이 펍을 운영한다. 여기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보통 술집이나 치킨 파는 데서 술을 마시지 않나. 서양에서는 펍 문화가 있다. 여러 음료와 밥을 파는 곳에서 맥주까지 판매하는 것이다. 식당도 아니고 사교장도 아닌 곳에 사람들이 모여 교제를 나눈다.

성인들이 우르르 앉아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지 않은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그럴 때 서양적인 펍 같은 데서 맥주를 드실 분은 드시면서 '미셔널 처치' 같은 것을 하는 것이다. 세상 얘기도 하고 성경 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대화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미국에도 여러 군데 있고, 한국에서도 몇 군데에서 도입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책이 백과사전식 구성이다. 이런 식으로 구성한 이유가 있나. 이 주제에 대한 더 실제적이고 논쟁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학술적인 글만 써 왔는데, 학술서가 아닌 책을 쓰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전개가 다소 건조한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책이다. 그리고 현실 문제를 다루려면 학술적·역사적으로 먼저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금주를 고집하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증거와 논리를 가지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역사적·성경적 배경을 먼저 제시해 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또 기독교인의 음주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동호 목사님이나 여러 목사님들이 기독교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기독연구원느헤미야 팟캐스트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런데 역사적 접근은 없더라.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기도 하다.(웃음) '마셔라, 마시지 마라'는 피상적 논의에서 역사적이고 근거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새 장을 열었다고 본다. 한 걸음 나간 셈이다.

그리고 백과사전식으로 썼으니까 독자들이 각 부분을 읽으면서 새로운 정보와 도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동적으로 읽지 말고, 적용점들을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읽어 줬으면 좋겠다.

- 책을 쓰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생각보다 기독교인이 쓴 역사책에는 술 얘기가 자주 안 나온다는 사실이다. 나온다고 해도 성찬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만 나온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사이 성찬 논란, 성찬의 영적·신학적 의미 등을 이야기한다. 기독교가 어떻게 술을 사용해 왔는지, 술을 보는 관점은 어떤지 등을 찾기 어려웠다. 비신자가 쓴 책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신학 서적에는 오히려 정보가 없었다. 목회자나 기독교인이 인문학적 소양을 많이 키울 필요가 있겠다 싶더라. 그러면 기독교가 더욱 심화할 듯하다.

또 한 가지는 성경에 술과 관련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때까지 이 사실을 못 읽었다. 술을 통해 성경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성지순례를 가거나, 기도회를 여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에 있는 문자 이상의 것을 알기 위해서가 아닌가. 성경에는 술 만드는 얘기도 나오고, 포도주와 관련한 비유도 많이 나온다. 성경 속에 나오는 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차후의 문제다.

성기문 교수는 <기독교 역사 속 술> 후속작을 쓰기 위해 자료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기독교 역사 속 술>을 개정·증보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각 챕터에 토론 문제를 넣으려 한다. 실용적인 후속작도 쓸 생각이다. 빨리 써서 내 본심을 일점일획이라도 오해받지 말아야 하겠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술과 관련한 여러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하고 설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 속 술 관련 구절을 본문으로 하는 설교집도 하나 쓰려고 한다. 성경 속 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술 관련 말씀을 어떻게 묵상하고 설교할 것인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 한다. 이것은 교회에 직접 적용해 볼 것이다. 지금 생각에, 구체적으로는 구약에서 여섯 본문, 신약에서 여섯 본문을 뽑아 주해 방법론과 설교 예시를 보여 주려 한다. 첫발을 뗀 사람으로서 두 번째, 세 번째 발까지는 떼게 해 줘야 한국에 건전한 술 문화가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2권 더 연작을 쓰려 한다.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빵 문제, 완결판으로 교회 개혁과 성찬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기독교가 술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더 보여 줄 생각이고, 술을 가지고 교회 개혁에 앞장서 보려 한다. 성찬에 변화가 있어야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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