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 팀 켈러 지음 / 윤종석 옮김 / 두란노 펴냄 / 280쪽 / 1만 4,000원

팀 켈러. 그의 책이 처음 번역 출간된 2007년도만 해도 내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국내 기독교 출판사 가운데 메이저급이라 할 수 있는 두란노에서 그의 책을 전담했나 싶을 정도로 꾸준히 소개하면서, 최근 수년간 기독교 출판계에서 앞다투어 출간해 내는 몇 안 되는 저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2007년부터 번역 출간된 그의 책들이 대략 25권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권의 책이 5월부터 다달이 번역 출간되었다. 그가 낸 책들의 한국어 번역서가 대개 그의 이름을 앞세워 제목을 삼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이름을 들은 지는 벌써 오래였다. 그에 대해, 또 그의 책들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언뜻 보기에 과하다 싶은 상찬(賞讚)의 글들도 보아 왔다. 호기심도 있었다. 그럼에도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에 급급하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이 약간은 버거웠는지 진득하게 책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이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학교의 고등부 1학년 여학생이 독서 시간마다 이 책을 들고 뒤적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더니만 며칠 후에 책을 눈앞에 들이대며 이 책 읽어 봤냐며,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이에 꼭 한 번 읽어 보리라 다짐하던 차에 드디어 이 책을, 그리고 팀 켈러를 처음 읽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감은? '과연'이다. 묵직한 여운이다.

우선, 성경을 읽는 그의 섬세한 눈과 예리한 관찰력에서 비롯한 신선한 통찰에 무릎을 친다. 성경의 유명한 사건들에서, 표면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서 그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인 우상을 파헤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그것은 차가운 이성적 활동만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애정 담긴 시선인데, 예를 들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여자였던 레아를 발견해 준 것이나, 나아만의 아내가 부리던 그 따뜻한 마음씨의 여종을 우리 앞에 소개해 준 것이 두고두고 고맙다. 풀꽃처럼, 오래 보고 자세히 봐 준 결과다.

또한 성경의 이야기들이 결코 오래전 별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과 얼마나 적실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 연결이 자연스럽고 풍부하다. 현대판 사건들을 각 장 앞에 배치하여, 그가 본문 삼고 있는 멀게는 4,000년 전, 가깝게는 2,000년 전 이야기들을 오늘로 소환해내는 그의 소환술은 금세 책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옛날의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며,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에 대한, 나를 향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불현듯 직면할 때에는, 그는 우리 모두에게 나단이다. 이렇게 우리 자신도 쉬이 발견하기 어려운 우리 안에 내재한, 우상을 향한 교묘한 경향성을 들춰내고 그것에 대한 유일한 답으로서 예수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는 숙련된 외과의다.

복음에 대한 확신과 그로 인한 선명한 복음 제시는 유독 돋보인다. 구체적인 우리네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공식화되고 판에 박힌 복음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 똬리 튼 다양한 모양의 거짓 신들을 거침없이 쫓아내는 참된 하나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희끗하고 불분명한 형체의 모조품 신들을 뒤로 하고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확실하게 부각되는지! 이를테면 오래 바라 온 아들의 이야기에서 아들을 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안내해 준다든지, 사랑에 목말랐던 가련한 레아의 이야기에서 참된 신랑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돈으로 자신의 근원적 우상을 경배하던 삭개오의 이야기에서 우리를 부요케 하려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울 때에 그분의 영광은 더욱 찬란하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참되신 하나님 그리고 이 참된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마음이 새로워지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흡족하게 읽었다. 팀 켈러의 손에 들린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숨겨진 우상들의 실체를 발견하고, 나아가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섭취하고 나니 무슨 영적인 수술을 받은 것만 같다. 몸과 마음이 새롭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더욱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결과를 보니, 과연 좋은 책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나상엽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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