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내 인종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소수자 혐오를 이용한 캠페인을 벌였다. 백인을 제외한 흑인·무슬림·히스패닉 등 타 인종과 LGBT·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혐오'를 이용한 트럼프 정권 탄생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백인 복음주의자' 그룹이었다. 2016년 대선에 참여한 백인 복음주의자 81%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백인 가톨릭 교인 52%, 전체 개신교인(몰몬교 포함) 58%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백인 우월주의' 행진
맨 앞에서 막은 목사들

당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낮아졌지만, 캠페인 때부터 보여 온 백인 남성 우월주의 시각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가 당선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미국 곳곳에서 무슬림 여성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발생했다. 일부 대학가에는 트럼프가 내건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바꾼 '미국을 다시 하얗게'(Make America White Again)라는 슬로건까지 등장했다.

'백인 우월주의'가 일어난 샬러츠빌에 목사들이 모였다. 사진 출처 Steven D. Martin 페이스북

미 전역 곳곳에서 소규모로 일어나던 인종차별은 8월 12일(현지 시각) 대규모로 표출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에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백인들이 결집해 시가행진을 벌였다. 참가자 6,000여 명은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남부연합기,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들었다. 쿠클럭스클랜(Ku Klux Klan) 상징으로 알려진 하얗고 기다란 복면을 쓴 사람들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샬러츠빌 시내를 행진하며 세를 과시했다.

행진 전, 백인 우월주의 시위가 열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목사가 반대 행진에 앞장서겠다고 나섰다.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을 띄는 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UCC) 소속 목사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전국 백인 목회자들에게 반대 행진에 동참해 달라는 성명을 띄웠다. 이들은 "샬러츠빌에서 일어날 '백인 우월주의' 행진은 지역 행사이긴 하지만 전국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평화 행진에 참석할 백인 목회자 1,000명을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화 행진에 참여 의사를 밝힌 목회자들은 8월 12일 오전 6시, 샬러츠빌 제일침례교회에 모였다. 이들은 함께 찬양하고 설교를 들은 뒤 "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무기는 사랑이다. 사랑을 들고 전장에 나가자"는 기도로 예배를 마쳤다. 형형색색의 스톨을 두른 목사들은 평화 행진 제일 앞줄에 섰다. 백인 우월주의 행진이 진행될 때는 길가에 나란히 서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한 백인 목사들
백인 우월주의에 답하라

백인 우월주의 시위는 결국 사망자 3명을 내고 말았다. 젊은 공화당원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가 반대 시위 진영을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해, 평화 행진을 위해 나온 사람 한 명이 사망했다. 미국 언론들은, 필즈 주니어의 주변 사람들조차 그가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였는지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대안 우파' 집회에 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 시가행진이 열렸다. CNN 뉴스 갈무리

트럼프 선거 기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안 우파(Alt-Right)는 '백인 우월주의', '신나치주의', 'KKK'를 신봉하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다. 주류 보수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우파를 주장하는 이들로 젊은 백인 남성이 집결한다. 미 시사 주간지 <디애틀랜틱>은 지난해 12월, 대안 우파 리더격인 리처드 스펜서가 주최한 모임 장면을 보도했다. 모임에 참석한 백인들은 '지크 하일'로 알려진 나치 경례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국 교계에서도 대안 우파를 경계하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남침례회조차 대안 우파를 비판했다. 남침례회는 과거 흑인 노예제도를 백인 입장에서 적극 옹호한 교단이다. 1995년 노예제도를 옹호했던 과거를 공식 사과한 데 이어 2015년부터는 인종 화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남침례회는 2017년, '대안 우파'로 불리는 백인 우월주의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우여곡절 끝에 채택했다.

더 이상 백인 목사들이 '백인 우월주의'에 침묵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평화 행진에 참석한 브라이언 맥클라렌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영상을 올렸다. 그와 함께 걷는 백인 두 명이 "만약 당신이 목사고 이번 주일에 인종차별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신학적인 교육이 더 필요하다", "당신 교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 목사를 찾아가 말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었다.

보수적으로 알려진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에드 스테처 편집장도, 목사라면 '백인 우월주의'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8월 12일 기사에서 "백인 우월주의는 복음에 반한다. 우리가 믿는 것과 상반되며 혐오스러운 행동이다.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리더십이 이 행동을 비난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이것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 시위가 일어난 뒤 이번 사태 책임이 "여러 편에 있다"고 말해 비난을 샀다. 비난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 신나치주의 단체 등을 포함해 각종 혐오 단체를 비난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