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폭행하거나,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고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신문 지면을 장식합니다. '리벤지 포르노'도 인격을 살해하는 범죄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사건을 비롯해 스토킹이나 원하지 않는 스킨십 등이 연인 관계, 호감 있는 사이에서 일어났을 경우 '데이트 폭력'이라고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최근 페미니즘 논의와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생소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연인들 사이에도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오히려 남녀 성 역할을 고정하는 게 일상적인 교회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지금도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교회와 데이트 폭력' 기획 마지막 기사에서는 목회자 또는 교인이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만났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뉴스앤조이>가 만난 교회 내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은 교회를 신뢰하지 않았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해결할 의지도 없다는 이유다. 피해자들은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때 목회자나 교인과 상담하지 말고, 전문 상담 기관을 찾아가라고 당부했다.

여성 문제를 전문으로 상담하는 이들도 같은 의견이다. <뉴스앤조이>는 상담 전문가 3명을 전화 인터뷰했다. 기독교인이자 25년간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해 온 손명희 공동대표(한국여성의전화), 교회 내 성폭력 근절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채수지 소장(기독교여성상담소), 목회자를 대상으로 여성 문제를 강의해 온 김희선 박사(이화여자대학교)다.

이들은 목회자가 교회에서 직접 피해자와 상담하지 말고, 피해자에게 전문 상담 기관을 소개해 주라고 조언했다. 피해자가 상담받기 위해 스스로 찾아왔다면, 이야기를 들어 주되 섣부른 조언이나 지적은 피하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 교인이 목회자를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목회자는 상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라.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물론 가정 폭력, 성폭력 등 여성 문제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목회자가 피해자를 상담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 상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방면으로 피해자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심사숙고하며 피해자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좋다.

부득이하게 상담해야 할 경우, 목회자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교인의 고민을 잘 듣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다.

2. 피해자를 비난·정죄하지 말고 지지하라.

데이트 폭력 범주는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 △정서적 옷차림 △경제적 폭력 △성폭력으로 분류된다. 모든 폭력이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주기 때문에, 절대 피해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는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야"라고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자책할 확률이 높다. 목회자가 피해자와 대화할 때는 정죄하거나 내치지 말고 지지하는 말을 해야 한다.

"가해자가 널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다", "네가 조금만 더 참아라",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와 같은 말은 절대 하지 말라. "하나님이 이 상황을 통해 너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뜻을 찾아보자"라며 이 상황을 신앙과 결부하는 것도 피해자를 지지하는 말이 아니다.

3. 만약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혼전 순결을 말하지 말라.

데이트 '성폭력'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성폭력은 교회 다니는 여성에게 이중고를 준다. 한국교회는 여성에게 '순결 이데올로기'를 강조한다. 보수적인 성 인식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 여성들은 남자 친구 또는 호감 있던 사람과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맺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배운 피해 여성이 목회자를 찾아가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용기를 낸 여성에게 "성관계한 게 맞느냐"고 묻지 말라. "성관계를 했다고 해서 네가 더렵혀진 게 아니다", "순결이라는 틀 안에 메일 필요 없다", "성관계를 했다고 그 남성과 반드시 연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는 게 필요하다.

4. 목회자는 성 평등을 공부하라.

남성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목회자는 피해자 마음에 공감할 수 없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목회자가 데이트 폭력, 성폭력, 가정 폭력을 정확히 알아야 피해 교인을 도울 수 있다. 꾸준히 성 평등 교육을 받으면서 여성이 겪는 폭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목회자가 교인을 직접 상담하지 않고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전문 상담 기관을 소개한다거나 가부장적인 교회 문화를 바꾸는 데 힘쓸 수 있다. 여전히 교회에는 여성 혐오적인 설교가 많다. 교회 내 여성이 절반이 넘는데,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설교는 폭언과 마찬가지다.

5. 교인들도 함께 교육하라.

목회자뿐 아니라 교인들 역할도 중요하다. 피해자가 다른 교인을 찾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두둔할 수 있다. 목회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을 함양할 책임이 있다.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들으며 여성 문제에 눈뜨게 해야 한다. 목회자가 직접 여성 문제를 공부하고 설교하는 것도 좋다. 데이트 폭력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 교인이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교인 역시 데이트 폭력의 잠재적인 피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언제 당할지, 가할지 모른다. 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를 비난하지 말고 지지하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단체는 한국여성의전화가 대표적이다. 전화 상담(02-2263-6465)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통화가 안 될 경우, 국번 없이 1366(휴대전화는 지역 번호+1366)으로 전화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상담을 받고 싶다면, 기독교여성상담소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홈페이지(바로 가기)에서 온라인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전화 상담(02-2266-8275)도 가능하다.

여성가족부(정현백 장관)가 운영하는 '여성 폭력 사이버 상담'도 있다. 여성 폭력 사이버 상담 홈페이지에서 △게시판 상담 △채팅 상담을 선택할 수 있다. 전문 상담원과 365일 24시간 1:1 상담이 가능하다. 카카오톡 상담도 이용할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 1366 검색 후 '여성 폭력 사이버 상담'을 친구 추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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