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훗)는 바울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인 영국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 1944~)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대중적인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 왔다. 이 책도 그 작업의 일환이다. 그는 신구약성서와 신학자·역사가들의 연구 자료를 참고해 바울을 재구성했다.

카렌 암스트롱의 관점에서 바울을 다시 읽는 일은 기독교인에게 하나의 도전일 수 있다. 성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썼기에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많고, 1세기 현실에 관련한 연구물과 성서 텍스트에 기반해 당대 로마 세계를 현실감 있게 표현해 내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바울을 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에게 이 책의 효용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타자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작업은 거리 두기를 통해 '다르게 읽는' 자기 객관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여성 혐오자, 노예제 지지자, 악의적인 권위주의자이며 유대인과 유대교에 극히 적대적인 것으로 혹평받았"(32쪽)던 바울의 모습을 되돌려 놓는 작업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인종, 계급, 성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35쪽) 싸운 바울의 모습을 재현한다. 남녀평등, 공동체주의, 실천적 영성을 보여 준 당대 '에클레시아 공동체'에 주목하고, '예수의 케노시스'를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 가르침이라고 줄기차게 지적한다.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호영 옮김 / 훗 펴냄 / 264쪽 / 1만 5,000원

케노시스는 빌립보서 2장 7절("자기를 비워")에서 기인한다. 예수의 자기 비움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교회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인이 보여 줘야 할 신앙적 태도이기도 하다.

"바울은 '약한 자들'을 고압적인 신념으로 위협하는 '강한 자들'에 대해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독단적인 신앙인들이 이러한 바울의 경고를 완전히 가리고 있다. 어떤 미덕도 그 안에 사랑이 스며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일상적이고 실질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사랑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통찰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259쪽)

기독교인 관점에서 바울을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텍스트에 드러난 바울의 삶과 사상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 줄 수도 있다. 카렌 암스트롱이 주목한 케노시스는 기독교가 얘기하는 십자가 영성의 핵심으로, 기독교인이 끊임없이 묵상해야 하는 주제다. 바울신학자 마이클 고먼은 <삶으로 담아내는 십자가 – 십자가 신학과 영성>(새물결플러스)에서 고린도전서 13장을 변주하는 것을 통해 이 가르침을 정리했다. 카렌 암스트롱이 강조하는 지점도 다르지 않다.

"십자가를 본받는 사랑은 행동하는 믿음이다. 이 사랑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한다. 실제로 이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권리들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다. 십자가를 본받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세워 주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 원수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 사랑은 복수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본받는 사랑은 다양성을 환영한다. (중략) 이 사랑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지위를 가질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높이고자 자신은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 이 사랑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 소유를 내놓는다." (<삶으로 담아내는 십자가 – 십자가 신학과 영성>, 425~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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