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글쓰기로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자매가 있다. 홍승은·홍승희 씨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금기시하는 여성의 성(性) 이야기와 여성 혐오 담론을 거침없이 글로 풀어낸다. 섹스, 동거, 성폭행, 임신 중절 등을 다루는 두 사람 글에는 여성의 삶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직접 겪은 이야기나 가까이 있는 실제 사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언니 홍승은 씨는 올해 4월 페미니즘 에세이집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동녘)를 펴냈고, 동생 홍승희 씨는 올해 9월 '섹스'를 주제로 연재한 글을 출판할 예정이다. 연대는 글쓰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홍 씨 자매는 포항에 거주하면서 인문학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 카페에서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8월 4일 일산에서 만난 홍 씨 자매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성 혐오는 물론 모태신앙인으로서 바라본 한국교회 내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여성 문제를 쉬쉬하는 한국교회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예수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승은 씨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공감적 상상력'과 연결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경험한 일을 상상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홍승은 씨, '대한민국효녀연합'으로 이름이 알려진 홍승희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승은 씨는 올해 4월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를 펴냈다. 승희 씨는 인터넷에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경험담을 가감 없이 글에 담는다. 가정사와 개인사를 쓰는데 부담은 없나.

홍승희 / 사람들이 묻는다. 왜 가정사나 노출증, 섹스에 관한 글을 쓰냐고. 한국 사회는 여성이 먼저 나서서 섹스를 이야기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나는 이런 시선과 싸우기 위해 더 글을 썼다. 터부시되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나와 주변을 성찰할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변했다. 우리가 하는 건 대단히 특별한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용기를 냈으면 한다. 여성들이 당장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더라도, 글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홍승은 / 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날 보면서 "업소 여자 같다"는 말을 하고 지나간 적 있다. 그 순간 알았다. 경험을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나는 이미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노출됐다는 것을. 한국 사회는 담배, 타투 등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녀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창녀로 본다. 지금까지 당해 온 일을 글로 풀면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 당당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도 책이 나온 뒤 나에게 "이런 글은 그만 쓰고 이제 행복한 내용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 '영페미니스트'들은 '몰카', '리벤지 포르노', '데이트 폭력' 등 일상에서 겪는 문제에 관심을 둔다. 두 사람이 관심 갖는 여성 문제는 무엇인가.

홍승희 / 성 노동자 이슈다. 페미니즘은, 사회가 여성을 성녀와 창녀라는 두 가지 프레임 안에 가둔다고 말한다. 창녀는 여성에게 가장 낙인이 되며 금기시되는 프레임이다. 그들의 삶은 실체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성 노동자들은 신비화되거나 악마화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 마련이 우선이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데 기여하고 싶다.

홍승은 / 승희 말에 동의한다. 성 노동자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대나무숲이나 통로가 생기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성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심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성 노동자를 피해자 또는 창녀로 본다. 두 시선 모두 성 노동자를 평등한 관계, 대화의 주체로 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이 문제를 풀어 가고 싶다.

두 사람은 인터뷰 때 얼굴 사진을 찍지 않는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그간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보니, 정면 사진이 없더라.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홍승은 / 춘천에서 인문학 카페를 할 때 한 매체와 인터뷰했다. 그때 기자가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독자에게 보이는 사진이 조회 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러다 승희가 '대한민국효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한일 협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당시 사람들은 승희를 '광화문 청순녀'라고 불렀다. 얼굴도 예쁜데 개념까지 있다고 칭찬했다.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승희를 보며 "강간하고 싶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칭찬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는 사람이나 모두 승희의 외모를 언급했다.

여성이 사회운동을 하든 글을 쓰든 발언권을 가질 때, 그 메시지보다 이미지로 각인되고 노출되는 게 불편했다. 승희가 퍼포먼스를 한 건 여성 문제를 알리려고 한 거였다. '위안부' 한일 협정이 문제 있다고 알리는데, 그 사람을 또다시 외모로 소비하는 게 불편했다. 이 상황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사람들은 나를 '동생을 질투하는 언니', '페미나치', '꼴페미'라고 불렀다.

그게 1년 반 전이다. 이 일을 계기로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지난 인터뷰 때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나간 적이 있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은 "승은 씨가 생각을 제대로 고쳐먹었다. 여성의 자원(외모)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황당했다.

- 당시 '위안부' 한일 협정이라는 중요한 담론을 이야기하는데, 왜 '외모 소비'라는 사소한 일을 지적하느냐고 오히려 승은 씨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에게는 중요한 일이 대다수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것처럼 보였다.

홍승은 / 여성의 외모를 부각하는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썼을 때 여러 메시지를 받았다. 소녀상이나 노란 리본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둔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사소한 걸 이야기한다고 했다. 어떤 것이든 사소한 건 없다. 폭력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을 사소한 일로 여겼다. 폭력은 국가권력이 개인에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소리 냈고, 가장 일상적인 폭력 역시 폭력이라는 점을 알렸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꼭 청산해야 한다.

홍승희 / 민주주의는 하나의 목소리로 단결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단결하는 느낌이 강했다. 언니가 <당신이 계속 불편했으면 좋겠습니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결론이 아닌 과정 자체라고 내린다. 거기에 동의한다. 과거에는 사회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사회운동이 진행됐다. 이제 그러면 안 된다. 이슈가 발생한 원인을 일상에서 찾고 해결해야 한다. 일상을 사는 나 자신도 성찰하지 않으면서 이슈만 따라가는 건 소용없다.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이면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승은, 승희 씨는 모태신앙이다. 그들이 경험한 교회는 어땠을까. 뉴스앤조이 최유리

- 교회 안에도 페미니스트가 있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교회를 비판한다. 여성을 비하하는 설교, 성 역할이 고정된 문화로는 신앙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모태신앙인데, 본인이 경험한 교회는 어땠나.

홍승은 / 부모님이 열렬 기독교인이었다. 모태신앙으로 살다 2008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갔는데 목사가 "촛불 집회에 나오는 사람은 악마"라고 설교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텐데 왜 인간이 나서냐고 했다. 그때 촛불 집회에 나가는 등 정의에 심취해 있던 터라 그 설교가 용납이 되지 않았고, 결국 떠나게 됐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순결을 강조하던 문화가 기억난다. 교회 안에서 가부장제, 순결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사람들은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으면 더러운 몸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기독교인 지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부터 섹스는 더러운 것이라 주입받아서 그런 것인지, 여성의 몸을 수치스럽게 또는 더럽게 여겼다. 나 역시 모태신앙이니 이런 정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남자 친구와 첫 경험 후, 몸이 더러워졌으니 헤어지자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 혐오 문화는 교회 다니는 지인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지인 중 한 사람은 교회 수련회에서 임신 중절 찬반 토론회를 하는데, 찬성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토론회 도중 청년들에게 온라인으로 의견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현장에서 "낙태충", "더러운 년"이라는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그걸 보는데 마음이 무너졌다고 이야기하더라.

홍승희 / 남자 친구와 성당에 간 적 있다. 교회보다 혐오 문화가 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사를 드리는데 다 남성밖에 없었다. 설교할 때도 좋은 사람 만나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하나님나라라고 설교하고. 교리 시간에 나에게 "색시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묻고 남자 친구한테는 '신랑'이라는 호칭을 썼다. 호칭이 불편해서 교리를 가르치는 분께 "우리는 비혼이고 지금 동거 중"이라고 말했다. 약간 당황하시는 것 같았다. 종교 밑바닥에 깔려 있는 성 역할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교회는 여성의 성 문제를 쉬쉬한다. 자위, 혼전 섹스, 임신 중절 문제를 죄악으로 보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홍승은 / 나는 21세까지는 혼전순결주의자였다. 당시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잘 듣지 않았던 거 같다. 이들은 교회가 죄라고 말하는 임신 중절의 경험이 있는 사람, 성소수자를 만나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교회가 말하는 것 또는 자신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책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등 생각을 깰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성경은 분명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타자를 나와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공감적 상상력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공감적 상상력은 나와 다른 타인의 세계가 어떤지 살펴보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또는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볼 수 있는 안목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그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홍승희 / 교회에서 말하는 신화 자체는 이분법을 기반하고 있다. 거기서 기독교인들의 인식이 파생됐다. 진리처럼 받아들였던 생각에 의문을 품고 인식을 깨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신앙인이 비판적 사상을 갖는 게 예수님을 따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당연시 여기는 것들을 새롭게 보았다. 거룩하지 못한 성전을 부수고 청소하셨다.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지배 권력에 이용되는 게 종교라고 생각한다.

승희 씨는 성경의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교회 내 혐오 문화' 하면, 동성애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몇 달 전 '동성애 바로 알기' 강의를 진행한 한동대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홍승은 / 춘천에서 하는 인문학 카페를 접고 포항에 자리를 잡았다. 포항에 정착하기 전, 한동대에 강의하러 온 적이 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포항까지 내려오게 됐다.

한동대에서 반동성애 강의를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피켓 시위를 했다. 일단 학교 차원에서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게 충격적이었다. 20여 명이 강의를 찾아갔다. 탈게이가 나와 간증하더라. 전에는 (동성과) 섹스만 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이성애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학생 500명이 엄청 박수를 쳤다. 혐오를 정당화하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섬뜩하고 무서웠다. 강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피켓 시위하는데, 학생들이 "동성애는 죄다"며 우리를 비아냥거렸다. 이미 신앙으로 무장된 혐오는 깨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홍승희 / 호모포비아는 보수 기독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현재 동성애 혐오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지배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 전, 사람들은 그 표를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홍준표 씨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보수 기독교 인사들을 방문했다. 종교를 근거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굳이 신학 문제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정치 구조만 보더라도 이들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의도조차 모르는 거 같다.

- 인터뷰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인문학 카페도 운영하고 있는데, 특별히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홍승은 / 글쓰기는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을 추천하고 싶다. 헤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책세상)도 좋다. 작가는 장애가 있는 페미니스트다. 사람들은 흔히 장애인이 어떤 일을 하면 "대단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을 시혜의 시선으로 보지도 동정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정말 추천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재밌게 잘 나타내고 있다.

홍승희 /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김규항 선생의 <예수전>(돌베게)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인식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책에서 예수 역시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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