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김현일 씨인가요? 한강 다리에서 누가 뛰어내린 것 같은데, 신발 안에 김현일 씨 명함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바하밥집>, 김현일 지음, 93쪽)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는 2010년 10월 어느 날 한강 지구대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 날 새벽, 전화가 다시 울렸다. 시신을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성순 형님이었다.

성순 형님은 바하밥집에서 만났다. 처음 봤을 때 그는 술과 질병에 절어 있었다. 형님은 30년 동안 거리에서 생활했다. 김 대표는 그가 수급비를 받을 수 있도록 기초 생활 보장 제도를 신청하고 치료를 받게 해 줬다. 고시원도 한 칸 마련하고, 폐지나 고철을 주우며 돈을 벌 수 있도록 리어카도 구입해 줬다.

자활할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열렸다고 생각했을 때,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쳤다. 성순 형님은 노숙을 하면서 사기를 당해 대포 통장과 대포 휴대폰을 만들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채무가 그의 이름 앞에 쌓인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형님은 스스로 삶을 놓아 버렸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카페 브룩스와 만두동네. 바하밥집이 노숙인 자활을 위해 만든 사업장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현일 대표는 서울 성북구 일대 노숙인들의 '동생'을 자처한다. 그에게는 성순 형님을 포함해 큰 형님, 럭셔리 형님 등 아는 '형님'이 많다. 2009년부터 매주 화·목·토 대광고등학교 옆 담장과 용두4교(토요일만)에서 '형님', '누님'을 위해 밥을 차려 왔다. 함께 밥 먹고 대화하며 많은 노숙인 형님, 누님을 두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어디에 계실 거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거리에 있는 이분들과 함께 계실 거예요."

김현일 대표는 최근 노숙인과 함께해 온 그동안의 이야기를 담아 <바하밥집>(죠이북스)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자신도 한때 노숙한 적이 있다고 밝힌다. 노숙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고 노숙인들과 함께하게 됐을까. 김 대표를 8월 3일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카페 브룩스에서 만났다.

IMF 때 사업 실패 5개월 노숙
나들목교회서 하나님 영접

서울역, 영등포역, 종로를 지나다 보면 노숙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연구원이 2015년 8월 발간한 보고서 <노숙 진입에서 탈출까지 경로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서울시 공식 노숙인 수는 4,500명 내외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채 쪽방 등지에서 생활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5,700~5,8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노숙인을 보는 사람들 시선은 곱지 못하다.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냄새난다며 이들을 괄시한다. 멀쩡한 몸을 두고 왜 저렇게 사냐며 혀를 차는 이도 있다. 김현일 대표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한다.

"그분들이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일을 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하는 겁니다.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이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점점 알코올에만 의존하는 부랑자가 되고 마는 거예요."

김 대표 역시 노숙 경험이 있다. 1997년 IMF 때 그는 사업에 실패했다. 회사도 집도 모두 잃은 김 대표에게 남은 거라곤 커다란 빚덩이뿐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친정에 보내고 노숙을 택했다.

그는 당시 경험을 잊지 못했다. 특히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일을 선명히 기억했다.

"그 줄은 마치 절망의 줄 같아요. 뒤에 서서 제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끔찍했어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온갖 생각이 들어요. 배식이 제 앞에서 끊긴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죽고 싶기도 하고…너무 끔찍해요."

다행히 노숙 경험은 길지 않았다. 김 대표는 5개월 만에 일자리를 구해 작은 월세집을 얻을 수 있었다. 가족과도 재회했다. 이후 그는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때 사업 실패로 노숙을 했던 김현일 대표. 지금은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과 자활 사역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현일 대표는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됐다. 둘은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통해 서로 알게 됐다. 어느 날 김형국 목사가 김 대표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이어 나들목교회에도 초대했다. 김 대표는 교회에서 김형국 목사 설교를 들으며 '펀치'를 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책에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삶을 선택하는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겠어요. 어차피 이런저런 모양으로 악착같이 살아 봐도 삶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나라는 정말 매력적이에요. 그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 세상 그 어떤 삶보다 흥미롭지 않아요?

이 땅의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와 하나님과 분리된 것에서 시작해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때에만 삶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52쪽)

편하게 사는 삶에 불편
교회는 사람이다
컵라면 5개로 무료 급식

김 대표는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 앞에서 우연히 노숙인을 봤다. 자신이 노숙을 해서 그랬을까, 자꾸만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날마다 밖에서 무엇을 먹을까 어디서 잘까 고민하는 이들을 두고, 자신은 혼자 편하게 예배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갈등 끝에 김형국 목사를 찾아갔다. 김 대표는 김 목사에게 물었다.

"형님, 밖에는 저렇게 다리 밑에서 밥을 굶고, 여름이면 물에 떠내려가고 겨울이면 얼어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예배하고 눈물 흘리고 돌아가면 뭐합니까? 은혜 타령 좀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뭔가 적극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8쪽)

김형국 목사가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김 목사는 김 대표에게 "교회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어 김 목사가 말했다.

"나만 교회냐? 나들목교회도 교회지만 너도 교회인데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있냐? 내가 설교도 하고 밥도 하고 노숙인 사역도 하고 교회학교도 하고, 다 하리? 하나님이 네게 보여 주시는 걸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마라. 어쩌면 너는 지금 하나님이 네게 맡기신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지도 몰라." (29쪽)

김 대표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이 교회를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회는 건물도 조직도 아니다. 사람이다. '성령의 전'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성령이 임재해 거룩하게 사는 삶이 교회였다. 김 대표는 직접 노숙인을 위한 일을 해 보자고 다짐했다.

2009년 1월, 컵라면 다섯 개와 빵, 우유, 밥을 담은 보온 통과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대광고등학교 옆 성북천에 갔다. 바하밥집의 첫 무료 급식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바하밥집은 활동가 10여 명과 함께 100~200인분의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09년 1월 컵라면 5개와 김치, 따뜻한 밥으로 노숙인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바하밥집

"형님, 형님" 하다
노숙인으로 착각
'배식'·'봉사'라는 말 안 써

처음에 노숙인들은 김현일 대표와 바하밥집 식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첫날, 김현일 대표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담아 한 노숙인에게 건넸다. 그는 김 대표를 힐끔 쳐다보더니 컵라면을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 영역을 침범하니, 노숙인들은 이들이 나쁜 목적을 품은 건 아닌지 경계했던 것이다.

노숙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이들이 있다. 술과 밥을 사 주거나 몇 십만 원 쥐어 주고 주민등록 정보를 알아내 대포 통장을 만들거나 유령 회사를 차려 대출을 받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김 대표는 노숙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매주 그들을 찾아갔다. 편한 옷차림을 하고는 식사하러 온 이들에게 다가가 "형님, 형님" 하며 인사했다. 그러다 보니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 노숙인이 김 대표에게 아는 척하지 말고 뒤로 가서 줄이나 똑바로 서라며 호통을 쳤다. "형님"이라고 하니, 김 대표를 노숙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바하밥집에서는 '배식'이나 '봉사'라는 말을 가능한 잘 안 쓰려고 해요. 그냥 그분들에게 한 끼 식사 대접하는 거죠. 저도 노숙하면서 배식을 받아 본 경험이 있잖아요. 행여 그분들이 와서 불편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거죠. 오면 '형님 또 오셨냐고' 아는 체도 하고요. 가끔씩 여기 오면 사람대접받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면 저희도 보람을 느껴요."

바하밥집 사역이 나들목교회 안에 알려지면서, 후원이나 봉사로 참여하는 교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료 급식소 규모도 커졌다. 초기에는 일주일 동안 노숙인 20~30명이 급식소를 찾았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500여 명이 찾아온다.

밥을 푸고 있는 김현일 대표 사진 제공 바하밥집
바하밥집은 현재 대광고등학교와 용두4교에서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바하밥집

현재 김현일 대표는 노숙인 자활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에 나가 일하며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급식 봉사나 카페·식당 일을 맡기기도 하고, 인문학 교실을 열어 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술과 약물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큰형님'처럼 무료 급식소에서 만나 노숙을 중지하고 삶을 회복한 이도 있다. 큰형님은 나들목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도 해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성순 형님이나 럭셔리 형님처럼 바하바집을 떠난 이들도 있다.

"사역의 열매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해요. 그런데 열매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수고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저희에게는 예수님이 있으니까요. 예수님이 안 계셨다면 이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고요."

김현일 대표는 보문동 일대에 공동체 마을을 그리고 있다. 직업 자활 센터를 세우고, 카페 브룩스, 만두 가게, 베이커리, 사랑방 등을 마련했다. 자활이 필요한 사람들도 보문동으로 이사 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자활의 최종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비전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밥집에서 밥을 먹고 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좋아진 분이 많은데, 그분들도 저녁 시간이 되면 방치가 돼요. 절망과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인 거죠. 그래서 늘 퇴근하고 나면 그분들에게 죄송했어요. 저는 가정, 친구, 공동체가 있어서 외롭지 않으니까요. 결국 이분들에게 필요한 건 공동체였어요. 밥도 먹고, 예배도 하고, 함께 울고 웃는 그런 공동체가 필요한 거죠." (194쪽)

김 대표는 기독교인의 역할은 단순 명료하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약한 이를 돌보는 일이다.

"주님의 말씀은 아주 선명해요.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계셨어요. 그럼 교회가 있어야 할 곳도 약자와 빈자들 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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