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적 논란이 끝나자마자 드럼 논란이 또 한 차례 휘몰아쳤다. 그 때문에 교회음악 봉사자들이 상처를 입고, 음악 중지를 공적으로 선언하는 음악인들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지금은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개신교회 프로테스탄트 제1호로 불리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의 말을 아래 붙여 본다.

"난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내가 열광주의자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데, 이 자들이 음악을 완전히 망쳐 놓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음악은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만듭니다. 음악은 마귀를 사냥하여 참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그 때문에 분노 질투 교만 같은 건 음악이 모두 덮어 버립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신학과 더불어 음악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다윗과 예언자의 예를 보십시오. 그들이 매번 말하고 노래하지 않았던가요? 음악은 이렇듯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WA 35, 483, 16-484, 26)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입니다. 그러니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 (중략) (그것으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합니다.)" (WATR 2,434, Nr.2362)

"음악과 마귀는 상극입니다. 음악은 마귀를 쫓고 사냥합니다." (WABr 5,639, Nr.1727)

"왕과 영주 제후와 주인들은 반드시 음악을 장려해야 합니다." (WATR1, 90, Nr.968)

"학교에서 음악교육은 무조건 해야 합니다. 또한 가르치는 자라면 반드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음악이 뭔지도 모르고, 노래도 못하는 사람을 교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녀석(junge Geselle)이 목사가 되려고 한다면 절대로 세우지 마십시오. 학교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라고 돌려보내야 합니다." (WATR 1, 90, Nr.968)

16세기 개혁 진영에서 음악의 가치를 인정한 부류는 루터가 유일하다. 실제로 미성의 테너 목소리를 지녔던 그는 아이제나흐 김나지움 시절에 게오르그교회 소년합창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후일 이곳에서 바흐가 태어났고, 바흐 역시 그 합창단 일원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노래만 잘한 것이 아니라 작사·작곡에도 능했다. 학창 시절에는 기타와 비슷한 류트(lute)로 아르바이트할 정도로 악기에 능했다.

루터가 없었다면 개신교 음악은 어떻게 변했을까. 다른 개신교 진영과 달리 루터파는 음악과 예술의 가치를 지대하게 여긴다. 개혁파의 원조 격인 츠빙글리와 칼뱅에게 교회음악은 '가톨릭의 잔재'이자 제거와 혁파의 대상이었다.

한국교회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면 개신교 교회음악은 물론이고, CCM이라든지,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도 존재하지 못했을 수 있다. 루터는 음악을 신학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인정한다. 그는 '코랄(Choral)'이라고 불리는 회중 찬송을 직접 만들어서 온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의 예배를 구체화했다. 코랄은 지금 우리가 찬송가에서 보듯 화음이 함께 들어가 있는 최초의 회중 찬송이다. 루터가 만든 가장 유명한 찬송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다. 사제 그룹이 독점했던 예배음악을 회중에 넘겨준 것은 루터가 강조했던 개신교 신학, '모든 신자의 만인사제직'에서 연유했다.

루터는 일반인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조와 가사를 덧붙여 찬송을 만들었다. 가끔은 독일 민요나, 지금으로 말하면 대중가요 곡조에 시편이나 기도문을 붙여 곡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전문용어로 '콘투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부른다. 이 유산은 후에 개신교 음악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실제로 외국 국가의 선율에 신앙적 가사를 덧입힌 우리나라 찬송가나 아리랑 가락을 미국 찬송가에 붙이는 일은 콘투라팍툼의 실제라고 할 수 있다.

루터파로 폭을 좁혀 보면 바흐·멘델스존 같은 경우가 철저히 루터파 신앙과 신학을 바탕으로 음악을 했던 인물이다. 루터 신학에서는 콘투라팍툼 원리가 철저히 지켜진다. 루터에게 세상과 교회는 분리된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 한가운데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Anknüfungspunkt)'을 제공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신학적 차이로 1930년 장로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 루터파 신학자들[대표적으로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 1888~1966)] 간에 신학적 쟁론이 일어났다. 루터에게 세상의 음악·예술·문화 등 모든 분야는 '숨어 계신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일종의 '가면(larva dei)'이며 접촉점이다.

분명한 사실은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중 찬송(코랄)을 만들어서 보급한 장본인이 루터이기 때문이다. 루터가 아니었다면 예배 시간에 주구장창 성직자들의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 소리만 일방적으로 감상하다 집에 돌아왔을 게 뻔하다. 교인들이 찬송가를 들고 함께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루터 덕이다.

위 인용구에서 보듯, 루터는 음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했다. 음악의 가치를 존중했던 신학적인 이유는 루터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본질인 조화와 질서가 음악 안에 담겨 있다고 보았다는 데 있다. 음악은 루터에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담아 세상에 전하는 선한 도구다. 루터는 그 때문에 음악에 마귀를 쫓고 사냥하는 능력이 있다고까지 가르친다. 물론 당시에 드럼은 없었지만, 드럼이 있었다면 루터는 드럼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 적극 인정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요즘 문제의 핵심은 악기 자체나 악기를 다루는 교회 내 음악 봉사자들에게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자의 직무에 서 있는 사람에게 있다. 루터 말대로 그런 사람은 학교로 다시 보내서 음악 공부부터 시켜야 한다. 음악 공부를 시켜서 단순히 노래 잘하고 악기 잘 다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질서가 무엇인지 알게 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거룩한 성도의 공동체다. 참된 교회라면 일방적으로 훈수 두고 갑질할 수 있는 특권층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며, 서로에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목사나 신학자라면 개인적 감상이나 감정으로 높은 곳에서 말을 던지지 말고, 정당한 방법과 복음으로 공동체를 설득하여 조화와 질서라는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게 마땅하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인 '조화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문제는 음악인들이나 악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를 독점하고 교인 전체를 보조 코러스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닐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로고. 사진 출처 독일: 2012 '종교개혁과 음악'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매년 독일 정부와 교회가 함께 주제를 정해 종교개혁 정신을 고취하고 있다. 일종의 국가 프로젝트다. 2012년 주제가 '종교개혁과 음악'이었는데, 1년 내내 이 주제에 대한 수많은 포럼이 열리고 논문이 발표되었다. 음악회와 다양한 행사도 진행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치면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2012년 로고 포스터다. 이 포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루터는 500년 전 인물이지만, 교회와 음악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말이다. 루터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이 포스터처럼 귀에 헤드폰을 꼽고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