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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법적 불의와 기독 법률가들의 책임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회, 이일 변호사 메시지 전문
  • 이일 (newsnjoy@newnsjoy.or.kr)
  • 승인 2017.08.01 18:07

다음 글은 '법과 사회정의'를 주제로 7월 31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회에서, 이일 변호사(공익번센터 어필)가 전달한 메시지 전문입니다. 메시지 주제는 '한국 사회의 법적 불의와 기독 법률가의 책임'입니다. - 편집자 주 

종교개혁 500주년에 회상하는
한국교회의 위상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몰랐습니다. 종교개혁과 관계된 외국 일부 장소들을 연결해 주는 여행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기이하게도 또 다른 교황과 같은 종교 권력으로 작동하는 대형 교회 목사님 일부의 주도로 몇몇 기념행사들이 열린다는 소식만을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왜일까요? 한국교회의 역사는 한국 사회의 역사에서 비껴 나 이미 게토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 속에 등장한 기적과 같은 사건들은 세상은 물론, 생명력과 선명한 메시지를 상실한 한국교회 자신에게도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한국교회 스스로도 진중하게 역사와 오늘을 성서에 비추어 반추하는 능력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세상에 영합하거나 보다 세련되게 상품과 종교적 감성을 소비하는 데만 몰두하는 상황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너무도 아득합니다.

성서 해석을 시민들의 손에 돌려주고, 약자의 목소리가 아닌 압제하는 체제가 돼 버린 기성 교회를 혁파한 역사적 경험들로부터의 500년. 한국에서 종교개혁의 흐름으로부터 솟아난 개신교의 영감, 성령의 역사가 한국 사회에 흘러 구원과 개혁의 단초를 제공한지 백 년하고도 반백 년이 되어 가는 지금. 교회와 사회가 동시에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유산에 따른 소망에도 이를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치부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률이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법률가들, 법 기술자들이 조직하고 운용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저도 변호사로서 바로 이 회색 지대에 몸담고 있고, 제가 속한 기독법률가회도 그와 같은 회색 지대에 몸을 담그고 우왕좌왕하며 분투하는 기독교인 법률가들의 가장 대표적인 모임입니다.

이일 변호사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도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국 사회와 법적 불의

법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긍정적으로는 타락한 세상 속에 국가와 기업과 같은 강한 자들의 손을 묶고, 여기에 배제된 약한 자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법은 공평과 정의와 같은 이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활용되어야 할 도구입니다. 부정적으로는 자본주의사회를 보다 잘 돌아가게 하고 착취에 기여케 하는 상부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 역할마저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국 사회에서 법은 어떤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는 걸까요? 법률 혹은 법률가, 보다 쉽게는 한국의 법률·판사·검사·변호사와 같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 기술자들은 과연 한국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하고 있을까요? 한국 사회가 하나님나라 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을까요?

법은 관념적으로는 정의를 내포하는 것 같지만, 실천적으로는 불의를 정당화하는 가장 적극적인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법률가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입니다. 2015년도에 입법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들과 함께 시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8.2%가 나왔습니다. 성별·연령대·권역별 등 주요 특성과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매우 높았습니다. 유사 전문 직종인 의사와 비교하면 1/3 수준입니다.

지난 정권이 종료되기 전에 저런 수치가 나왔는데, 과연 지금은 어떨까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한국 사회 시민들은 법원의 판결, 검사의 수사와 기소, 변호사의 변론이 공평과 정의의 구현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할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단언컨대, 한국 사회의 시민 대다수는 법원의 판결도, 검사의 수사와 기소도, 변호사의 변론도 모두 이해관계 속에서 돌아 가는 정교한 연극으로만 이해될 것입니다.

관념적으로라도 유지되었던 법 그리고 법률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형이상학적 신뢰는, 1987년 헌법이 등장하고,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이후에도 흐릿합니다. 오히려 그 존재를 점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해 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두 차례의 정권이, 멀게는 유신헌법을 주창한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정치와 사회구조가 정의와 거리가 멀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국가적 층위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정의는 집권 세력을 장식해 주는 자의적인 메타포에 불과했거나, 지배 의지의 또 다른 해석이었습니다. 비근하게는 세월호 참사로 대표될 수 있는 국가적 재난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상 초유의 실정이 그렇습니다. 또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속에서 법률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착취의 주체인 지배 세력을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옹호하고 비호했습니다. 법원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법관의 엄정한 독립을 침해하고 조직적으로 관리했다고 하며, 검찰은 집권 세력의 입맛에 따라 법의 힘을 빌려 부당한 수사와 기소를 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많은 로펌은 정당한 변호 여부를 고려하기 보다는 기업의 본질에 따라 영리 추구에만 명운을 걸어 왔습니다.

13년째 OECD 자살률 1위, 전 세계 자살률 4위를 놓치지 않는 한국의 희망 없는 사회상은 법과 법률가들에게도 관측됩니다. 시민들에게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과, 도덕적 권위를 내팽개친 벌거벗은 현실적 모습의 심각한 괴리에 놓여 있습니다. 법은 있는 사람 편이고, 빽 있는 사람들의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공정과는 거리가 먼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가적 층위가 아니라, 법과 법률가들을 대하는 개인적 층위의 시민들의 경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법은 그 자체로 국가와 기업, 정치인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형사사건에서 만나는 법률 전문가들은 부당한 결정을 내리거나, 영혼 없는 기술자들에 불과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제가 어떻든 전관 변호사를 사야 하고, 수임료를 크게 불러서 대형 로펌을 선임하지 않으면 이겨야 할 사건도 지게 됩니다, 억울한 사람도 유죄가 되어야 처벌받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 전문적 기술이 갖는 권력적 속성으로 법률가들은 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사회에서 다양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한줌의 법률가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되며, 고위급 공무원이 되고 국가 중대사는 물론,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분쟁들에 깊숙이 개입하여 이를 조정합니다. 한국사회가 불의하다면, 이는 법률가들의 책임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적 불의와 기독교인 법률가들

실제로 법률가들이 불의와 맺는 단계는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의를 추구하거나 △불의와 거리를 두거나 △불의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불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그 자체로 불의가 되는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법률가들은 그 중간 언저리에 모여 있습니다. 기독교인 법률가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100억 대의 원정 도박과 관계된 법조 게이트 중심에서 구속된 홍만표 전 대검기조부장은 대형 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안수집사입니다. 18대 대선 전 대국민 심리전과 선거 개입을 시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선법 위반 혐의 적용을 막고, 법정은 물론 광장에서도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신학교를 나올 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도사입니다. 국정교과서 소동에 앞장섰던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은 기독교정치연구소를 만든 경건한 장로입니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최순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 많이 낸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언급할 사람은 많지만, 부끄럽고 암담합니다. 뜨거운 신앙적 열정을 가진 기독 법률가들이 오히려 사회적 지탄을 받는 형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역설을 봅니다. 모든 사안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형식적 중립을 지키며 모두를 이해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멀리 왔습니다.

영혼 없는 '법 잡은 자(렘2:8)'의 책임과 회개

예레미야 2장 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에도 하나님께서는 종교 권력자와 함께 더불어 법률가들, 법 기술자들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물으십니다. 영문 NASB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ose who handle the law did not know Me." 타락한 세상 속, 타락한 법률, 그리고 타락한 법률가들에겐 법의 원래 목적이 전도됐습니다. 법을 창조한 하나님은 잊고 그 자체가 우상적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기독 법률가들 중에도 예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편만한 불의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독 법률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불의가 되는 방식으로 현재의 시스템의 일부로서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로서 이주 난민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활동하며 이방인들을 변호하는 삶으로 소극적으로 자위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발 딛고 있는 기독교인 법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독법률가회의 주요한 구성원으로서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우리의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언자적 사명으로 서는 것 자체에 희망을 놓고, 단지 소극적으로 우리가 덜 타락해 가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었던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 기독교인 법률가들은 예언자적 목소리에 대한 희망은 잃고, 죄짓지 않는 삶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법률가로서 그리고 기독교인 법률가로서 사회적 사명과 책임은 매우 협애한 직업윤리 수준으로만 전락해 있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주류에서 비껴 났다는 생각에 역할을 찾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달리 왜소한 자기 인식 속에 끌려가서 본 바벨론의 정교하고 커다란 권세 앞에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개인적 활동의 충실함에만 몰두하며 이로부터 도피해 왔습니다. 셋째로, 같은 법률가들에게 예언자적인 날선 잣대를 들이밀지 못했습니다. 좁디좁은 법률 영역 속의 그물망과 같은 관계 속에 날카로운 예언자적 잣대는 사적인 관계들과 내부자 논리 속 점차 흐릿해져 가는 것을 경험해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희망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 같은 진흙탕 속에서 어떤 기대와 역할을 하고 계신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고, 우리들은 어디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똑같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영혼 없는 법 잡은자들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과연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권리와 책임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분배하며, 약자들의 목소리를 신원해야할 법의 정당한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법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해하거나, 가치와는 무관한 기술적 조정의 도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를 실현코자 하는 적극적 도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살자는 낮은 수준의 자기반성으로는 추락해 있는 한국교회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 세계에서 기울어진 추로 작동하고 있는 법과 법률가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공평하게 만드는 것은 한없이 부족합니다.

사회는 법, 법률가의 삶, 법 제도를 개혁하는 데 있어 한국교회가 의제를 새롭게 발굴하거나 먼저 앞서나갈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교회가 그런 역량을 벼려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발굴되고, 논해지는 법률 영역 개혁에 관한 의제들을 우리의 책임 중 일부로 껴안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를 보다 공평하고 정의롭게 만드는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탄핵과 정권 교체을 경험한 한국 사회가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의 법률, 그리고 이를 담는 기관들인 법원· 검찰·로펌이 더 죄짓지 않고 창조된 원래 목적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또한 이에 몸담고 있는 기독교인 법률가들이 보다 공정한 입법, 재판,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고 제도화될 수 있도록 맞닥뜨린 전선에서 구체적인 책임을 갖고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해 봅니다.

법은 결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서 정의로운 것으로 추앙될 수 없습니다. 법은 전문 기술자를 자처하는 법률가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는 위험한 것입니다. 법률가들과 기독 법률가들이 공평과 정의를 위해 더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여 주시고, 길을 잃지 않고 타협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날카로운 시선으로 법률가들을 감찰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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