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묵상 - 아픈 시대를 함께 걷는 이들에게> / 박영돈 지음 / IVP 펴냄 / 292쪽 / 1만 3,000원

어느 신학 포럼에서 노(老)교수 한 분이 본인의 연구를 차근차근 발표하고 있었다.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지만 단정한 모습의 노교수는 몇 가지 주요 개념을 명확하고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는 참그리스도인의 모습이란 무엇인지 고찰하는 부분까지 확대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두렵다고 말했다. 평생 신학자, 교수, 목사로서 참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죄인인 자신을 발견할 뿐이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깨달을 뿐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또 깊은 감사가 무겁게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기대되는 동시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두렵다고 했다.

그날 포럼의 모든 주제가 매우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어떤 주장보다 노교수의 발표 속 짧은 고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하여 포럼이 끝나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인터넷 창으로 노교수의 성함을 검색했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는 박영돈 교수였다.

"개혁신학을 운운하기 전에 참된 인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개혁주의는 진리로 지적 교만과 허영, 자기중심성에서 자유롭게 하여 우리를 자기 부인과 겸손, 온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173쪽)

사실 포럼에서 박영돈 교수를 처음 봤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다.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그의 신학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고,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설교와 강의를 듣고 저서도 틈틈이 읽는 중에,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박 교수는 나에게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 그가 <시대 묵상>(IVP)이라는 제목의 글로 모두에게 선생님으로 찾아왔다.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 교육자로, 목회자이자 그리스도인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그리고 자유의지를 지닌 평범한 인간으로 삶 속의 소소한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적어 들려준다.

정갈한 언어 속에 간간이 유머도 담겨 있고, 신학자의 지식도 엿보이며, 깊은 성찰도 담백하게 배어 있다. 그의 묵상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할지 그 방향을 배우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의 가치를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박영돈 교수를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묵상집이 의미 있는 것은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벼운 에피소드 같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봤을 일이나 제기했을 법한 질문, 그렇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이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들과 신자들을 돌아본다.

"분명히 기억하라. 이 나라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의 길을 따를 때 하나님이 이 땅을 지키시고 축복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불의를 묵과하고 옹호할 때 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이 땅을 지키시는 전능자가 그의 손을 거두시기 때문이다." (253쪽)

묵상의 글 곳곳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를 향한 염려와 사랑도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1인칭 서술인데도 대화처럼 느껴진다.

"수고스럽게 공부한 고학력자들이 졸업하면 적은 사례를 받으며 부교역자 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사회에 팽배한 목사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 차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부디 타락한 일부 목사들 때문에 새벽빛같이 신선한 젊은 사역자들까지 싸잡아 매도하지 않으면 좋겠다. 냉대와 고난의 협착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성령의 큰 위로가 있기를." (176~177쪽)

모든 연령대에 좋은 책이다. 그중 20대 청년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이제 막 사회에서 고군분투하고,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갈등하는, 그리고 믿음을 불안정하게 여길 수도 있는 청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여전히 그 섭리 안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성인이 되었어도 속에는 아직 다독거림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앉아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을 나누고 싶다.

"흠집을 파내기 위해 매섭고 핏발 선 눈빛들만 이글거리는 험악하고 흉흉한 세상이지만, 사랑과 긍휼의 눈빛으로 자격 없는 나를 바라봐 주는 제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빛이 내가 사랑의 빚을 갚는 눈빛을 가진 선생이 되는 기적을 일으켜 주리라." (39쪽)

"젊은이들이 학업과 삶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가 모처럼 며칠 동안 말씀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에 푹 잠기는 시간을 갖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이다. (중략) 이번 여름에도 모든 수련회와 집회에 영혼들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새벽빛 같은 주의 청년들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87쪽)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이민희 /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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