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1> / 한수산 지음 / 창비 펴냄 / 484쪽 / 1만 4,000원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했던 한수산.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한수산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된 '군함도'를 소재로 장편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군함도가 이슈화된 최근 몇 년 쓰인 것이 아니라 오랜 산고를 겪고 나왔다는 사실은 더더욱 뜻밖이다.

그 때문일까. 한수산의 '군함도'의 태동과 진화는 소설 속 주인공 지상과 상당히 닮은꼴처럼 비친다.

<군함도>(창비)가 연재소설에서 시작해서 대하소설로 변모했다가, 지금의 제목으로 한·일 동시 출간을 기획하다가 작년에야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은 주인공 지상이 겪은 험로와도 같아 보인다. 지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최악의 징용 장소였던 하시마탄광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몸을 숨긴 장소도 험악하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원자폭탄'이라는 또 하나의 지옥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소설 <군함도>도 일종의 평행 이론을 겪는 듯 보인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겪은 이유 중 하나는 군함도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데서 연유했을지 모른다. 그 촉발점은 하시마섬이 '007 스카이폴'에서 데드시티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 이유로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나 싶다. 꽤 높은 건물들이 그로테스크하게 둘러져 있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도 상당히 강렬했다.

종종 세계의 사진작가들 작품에서 드러났지만, 기괴하고 기이하다는 정도로 느꼈지 그 섬이 왜 그런 모습을 갖추었는지는 역사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2년 전 무한도전에서 그 참상과 아픔을 다루면서 대중적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하시마섬을 보며 우리 근현대사의 숨겨진 아픔, 아니 외면했던 아픔의 역사를 목도한다.

사실 이 책은 1985년 대학교 입학 당시, '범생'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내가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표성흠의 <토우>(현암사)를 읽고, 교과서에서 멈췄던 6·25 전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일본강점기에 대한 또 다른 부분과 몇 가지로 쪼개져 있던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에 주목은 하지만 종종 그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각각의 사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놓치기 쉽다. 이 소설은 내게 그런 연관성과 흐름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인상적인 퍼즐 조각이 여러 개 모였을 때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줄 때처럼 말이다.

이 책 제목이 <군함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군함도'만 보이고 있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군함도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려 내기도 하지만, 군함도와 더불어 미츠비시 및 일본 병참의 거점이었던 나가사키의 군수기지와 지하기지 건설, 교토와 함께 그곳을 지옥으로 만든 '원폭 투하' 사건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군함도의 처절한 현실과 더불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원폭 투하 묘사는 핵의 참혹성과 그 위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각각의 사건은 처참하다. 군함도의 또 다른 명칭이 지옥도인 것처럼, 당시 사건과 현장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보여 준다. 모든 사건은, 특히나 징용되어 온 한인들에게 더 극심한 지옥으로 다가왔고,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지옥화(地獄畵)를 이루는 듯하다. 작가는 그 현실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만이 이 책의 중심은 아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중심이다.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군함도에 던져진 지상과 우석, 명국, 금화, 그리고 숱하게 사그러져 간 징용한인들이다. 그들 일부는 군함도에서 죽어 가기도 하고, 지옥 같은 군함도를 못 견뎌 가족을 향해 탈출하다가 상당수 실패하고, 일부 탈출하긴 하지만 안식이 아니라 군함도에 가까운 또 하나의 지옥, 나가사키의 처참한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또 한 번 그 상황을 이기고자 하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원폭 앞에서 대부분 무력하게 죽어간다. 그들 나름대로 대항도 하고 항거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무기력하다. 또 다른 거대한 지옥 앞에 불타 없어지고 상처 입어 무력하게 죽어 갈 뿐이다. 인간 이하 대접을 일본인에게 당하던 이들이, 심지어 원폭 투하 후 겨우 생존해도 또다시 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버림을 당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결국 해방 후에도 지금까지 잊힌 존재(징용자, 원폭 피해자)로 지내 왔고, 지금에야 조금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 정권에서 무시당하고 숨겨지는 등 조국에 의해 또다시 버려지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은 탈출구가 없는, 글자 그대로 희망 없는 막장의 삶이었다.

군함도에 징용된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다. 그의 뜻과 상관없이 유곽에 놓이게 된 여러 여인이 있다. 그중 금화는 자기 몸을 술로 파괴시켜 나가는 나날을 보내다가 그 안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만 그 사랑에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뻔히 후폭풍이 예상되는 일에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녀의 희생은 최소한 사랑하는 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되고 만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가 살아 있는데도 자기 목숨을 던져 죽는 허무함을 보여 준다.

금화의 희망이었던 우석, 그리고 금화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사랑으로 인생을 다시 결단하는 우석이지만, 예상할 수도 없었던 원폭 앞에서 그도 세상을 마감한다. 유일하게 지상만이 원폭에서 살아남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 소망 없는 세상에서 조그마한 상징성을 갖고, 이후 어떤 증거자로서 살아갈지 암시할 뿐이다.

군함도에서 약탈당하고 핍박당하는 한국인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 일본인이 조선을 침탈하고 착취하는 데 동참한다. 조선인을 혐오하고 커다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극단의 악함을 보이지만, 일본인도 결국 원폭 앞에서 무기력하게 죽어 간다. 일부 일본인 중 나름 객관성을 가지는 이들마저도 죽어 갈 뿐이다. 오히려 작가는 기상이 야키코를 구함으로써 현재 일본의 혼란스러운 역사 인식을 구원할 가능성을 한국에게서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인물이 서형이다. 지상의 아내인 서형은 직접적으로 일본의 징용과 핍박을 경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릴 뿐 아니라 직접 하시마섬까지 찾아가는 한국의 강한 여성의 면모를 보여 준다. 하시마의 남자들은 무기력해도, 서형은 당당하게 맞서며 자신의 아이를 붙들고 소망을 놓지 않는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것은 우리 역사가 그런 현실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고 생존할 수 있었던 희망이 아닐까.

저자는 이 군함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 회피했던 역사를 다시 세상에 꺼내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지금 영화와 매체 덕분에 '군함도'가 주목받기는 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선을 더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에게 군함도 이후를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군함도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과 원폭 피해를 받고도 전쟁 가해자인 치료나 배상에서 제외됐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이가 죽어 간 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어야 할 또 다른 책임이 그에게 있다. 먼저 이야기한 이의 의무로서 말이다.

설혹 그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회피하고 방치했던 역사를 이제 다시 꺼내야 할 때가 된 듯싶다. 결국 그러한 무책임과 방기가 지난번 국정교과서 파동과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말도 안 되는 일들 앞에서의 무기력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소망을 포기한 듯한 지금 우리의 무기력은 소망이 보이지 않는 군함도의 무기력과 본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군함도 이후 지금 한국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싶다. 일본이 징용했는데도, 그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서형의 당당한 항의처럼 국민을 지키지 않는 정부 모습을 우리는 거의 10년 가까이 보아 왔다. 아직도 꺼져 가는 권력을 살리려는 무리를 보고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소망 없음'이라는 현실이 오지 않도록 무기력을 깨쳐 나가야 할 것이다.

군함도, 나가사키, 원폭이라는 소망 없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초들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소망 자체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에 이제 그 소망을 살리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지상이 원폭에서 살아남은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망을 품었고, 또 서형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힘썼던 것처럼, 우리의 소망 살림은 우리 자녀와 후대가 살아갈 이 땅이 지옥도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어야 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문양호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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