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중심의 믿음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닌 사람이다. 교회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교회는 내 삶의 중심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닌 나는 교회를 떠난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뿐이겠는가.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좋은 기독교인은 교회 안에서 삶을 시작하고 교회 안에서 삶을 끝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 밖의 삶은 신앙적인 삶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교회 안과 밖이라는 말로 규정되고는 하였다. 교회는 신앙에 있어서 모든 가치의 척도로 간주된다.

이러한 교회 중심 생각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생각은 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교회 중심 믿음은 교회 성장이 하나님나라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믿음의 목표가 교회 성장인 것처럼 믿어 왔다. 그래서인지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교회 성장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두 번째로 교회 중심 생각은 교회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 교인들에게 교회에 대한 충성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회를 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개인의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교회의 일은 일상생활에서 최우선적인 가치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교인들의 생활은 교회를 정점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충성심은 교인 수의 증가와 더불어 교회 건축물의 고급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세 번째로 교회 중심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교회 성장과 더불어 교인 수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극대화하였다. 더욱이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여러 사회복지 사업은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을 증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여러 정치인이 교회를 찾아오게 만들었고, 이러한 현상은 선거철이 되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압력단체가 되었다. 한 교회 목회자의 의견은 교회 중심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정치인 등 여론에 민감한 직업인들은 교회, 다시 말하면, 교회 목회자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교회 영향력 확대는 다른 요인도 많이 작용하기는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중심 신앙생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교회 중심 신앙은 여러 측면에서 오늘의 한국 기독교회를 만들어 내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교회 중심 신앙은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부정적인 영향이 결국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위기에 처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교회 중심 신앙은 한국 기독교를 어떤 모양으로 변질시켜 나갔는가.

게토화 현상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 중심 생각은 우리 삶의 영역을 교회 밖과 교회 안으로 구분 지었다. 교회 일과 세상 일에 대한 구분을 만들어 갔다. 교회 안의 일은 성스러운 일이며 영적인 일이다. 그러나 교회 밖의 세상 일은 세속적이며 육적인 일이라는 구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교회 중심 신앙은 우리에게 점차 세속적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삶을 요구하였다.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해했다. 이에 따라 교회는 교인을 교회 안으로 불러 모으기 위하여 수많은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교회 안에 있는 시간을 늘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회 중심 신앙은 교인들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을 죄악시하였다. 믿으면 믿을수록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삶의 시간은 많아져 갔고, 교회는 점차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으며, 세상 일이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인들이 들을 수 있는 모욕 중의 모욕은 "당신은 너무 세속적이야!"라는 말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면 될수록 그리고 교회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훌륭한 신앙인으로 간주되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었다. 교회는 교회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교회 안의 용어는 세상의 용어와는 철저하게 구별되었다. 삶의 양식도 문화도 점차 세상의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였다. 철저한 게토(ghetto)화 현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교회의 게토화 현상은 교회가 신성화된 감성적 공동체의 성격을 갖도록 만들었다.

교회, 감성적 공동체의 신성화

게토화된 교회는 점차 이성적 접근에 의한 판단보다는 자신의 집단에 대한 감성적 접근에 의한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Daniele Hervieu-Leger는 '감성적 공동체' 운동들이 표출하고 있는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1)

1) 공동체와 구성원들 사이에서 강한 교착과 감성적 관계가 형성되어지며 일반적으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그룹이 이루어지고 있다.
2)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의 견고성은 매우 약하며 따라서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과의 관계, 심지어는 종교 자체와의 관계에서도 실용적이고 주관적인 관계가 주도를 이루게 된다.
3) 자신들의 공동체 혹은 카리스마를 소유하고 있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강한 지역주의(localism)를 나타낸다.

세상과 담을 쌓도록 훈련되어 있는 한국 대부분 교회는 이러한 감성적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판단 기준은 감성 중심적이다. 특히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감성에 의한 판단을 중심으로 한다. 이러한 감성적 공동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신성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역주의를 강하게 나타내는 감성 공동체는 결국에는 신성화(divinization)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게토화되고 감성 중심적인 공동체인 교회는 자신을 신성화하는 데 매우 재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자신의 공동체를 가장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고려하게 되며, 그리고 이것은 주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2)

이러한 현상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대한 강한 교착 현상과 함께 그의 범할 수 없는 지도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 공동체는 지도자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며 결과적으로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적(tribal group) 그룹이 되어간다.

이렇게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는 자신을 신성한 집단으로 간주하게 된다(이것을 공동체의 부족화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집단을 향한 그 어떤 도전과 비판의 행위도 신성모독 행위로 간주된다.

이 같은 신성화된 감성적 공동체로서 교회 모습은 오늘 한국교회 모습을 진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를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공격과 방어

신성화된 감상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이 세계를 향하여 어떤 자세와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것은 한 마디로 공격과 방어의 태도이다. 위에 언급한 과정을 거친 교회는 이제 절대적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교회를 향한 반대 혹은 비판은 신성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된다.

세상은 악한 영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이에 대하여 두 가지 태도만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공격과 방어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은 공격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교회의 판단에 의해 위험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 교회는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독교적 가르침(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하나님의 창조 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는 것에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박멸할 대상이지 이해하거나 타협점을 찾아 화해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거나 대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나 집단은 이단시되어 배제된다. 오직 공격만이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젊은 사람들을 비롯한 일반적인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나는 오늘 목회 현장에서 이러한 배제 현상을 분명하게 목격하고 경험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점차 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을 분리적인 자세로 바라보며 공격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공격하는 대상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 아니겠는가.

오늘 한국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 현상은 이처럼 교회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보이고 있는 자세와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을 이해하거나 세상에 참여하여 세상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하기보다는 세상을 악한 것으로 보고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기독교와 교회를 변호하고 방어하고 설명하는 일에는 열심을 보여 왔지만 세상의 아픔과 현장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해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더욱이 세상의 일에 참여하여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적었다.

신앙은 교인들이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다가 후일(죽음 이후) 천당으로 옮겨 가도록 만드는 도구(길)였을 뿐이다. 세상은 하루속히 벗어나야 할 곳이었다.

교회에서 벗어나자

그러나 우리는 깨닫는다. 세상은 벗어나야 할 곳이 아니다. 이 세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소중한 장소다. 신앙은 죽음 이후 저곳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벗어나서 교회 밖에서 실질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교회가 중요하고 핵심적인 장소인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신앙은 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믿음은 교회를 벗어나, 교회의 울타리 넘어 존재하는 이 넓은 세상에서 펼쳐져야 한다.

교회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교회에서 벗어나자. 바르고 건강한 교회를 형성하기 위하여 교회를 벗어나자. 교회를 벗어나면 비로소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이 사랑한 세계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게 될 것이다.

교회를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왔는지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을 적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하고 참여하여 진정한 예수의 좋은 소식들을 전할 수 있음을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 않겠는가.

교회에서 벗어나자. 교회에서 해방된 교회가 되어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며 산 위 작은 동네의 등불이 되자.

각주

1) Daniele Hervieu-Leger, "Secularizacion y Modernidad religiosa"(세속화와 종교적 근대성), en Selecciones de Teologia, vol. 23. no. 103, 1987, 217~227쪽
2) Jose Maria Mardones, A donde va la religion(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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