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기독교 핵심 교리 '삼위일체론'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성에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교리다. 성부·성자가 남성으로 그려지는 것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의 관계가 위계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은 남성 신학자들의 해석으로 남성성이 더 공고해진 부분이 있어, 섣불리 재해석하기 어렵다.

여성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최유진 박사는 영국 여성 신학자 세라 코클리(Sarah Coakley, 1951~)의 삼위일체론을 소개하는 논문을 작성했다. 최 박사는 미국의 여성 신학자인 캐트린 테너와 세라 코클리의 삼위일체론을 비판적으로 비교하며 한국 여성신학적 삼위일체론을 제안하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 박사는 7월 11일 새물결아카데미에서 여성 시각으로 해석한 삼위일체론을 소개했다.

최유진 박사가 영국성공회 사제이자 여성 신학자인 '세라 코클리'의 삼위일체론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최유진 박사가 주목했던 세라 코클리는 신학자이자 성공회 사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삼위일체를 해석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에 팽배한 이성주의와 획일주의를 비판하며 1960~1970년대부터 논의돼 온 문화 운동이자 이념이다. 백인 중산층 남성들이 근대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삼위일체는 개인보다는 성경, 계시, 교부 전통을 중시했고 이를 토대로 교리가 구성됐다.

세라 코클리는 근대주의를 전복해 개인 경험을 기반으로 삼위일체에 접근했다. 남성들이 기록부터 유통까지 모두 개입돼 있는 성경과 교부 전통을 배제한 여성의 경험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성의 흔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뿐더러 유포되지도 않았다. 여성주의 관점은 물론 개인 체험으로 성부와 성자의 존재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라 코클리는 '성령'의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두 가지 모델로 삼위일체론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회자됐던 모델은 성부·성자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는 '단선적 모델'이다. 세라 코클리가 집중한 모델은 계시로부터가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결합적 모델'이다. 최유진 박사는 세라 코클리의 두 모델을 소개했다.

"'단선적 모델'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개신교로 내려오는 서방 교회에서 주로 언급되는 방식이다. 우리도 이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파송하고, 요한복음 14장 16절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도움이 있어야 보혜사가 온다고 본다. 남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세 남성 연합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삼위일체를 드러낸다.

세라 코클리는 '결합적 모델'로 삼위일체를 소개한다. 로마서 8장 26절은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나니'이다. 성령이 우리를 성자께 인도하고, 성자가 우리를 성부로 이끈다. 세라 코클리는 이 때문에 기도를 통해 삼위일체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유진 박사는 세라 코클리의 신학 체계가 지금까지 서구 사상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일자 철학', '획일화'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했다. 세라 코클리는 위로부터 전달되는 계시가 아니라, 인간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경험하는 삼위일체론을 이야기한다. 이는 지금껏 담론에서 배제된 다양한 타자들을 인정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보았다. 그간 교회 안에서 억압되어 왔던 여성과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세라 코클리의 결합적 모델은 성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기도와 영성을 강조한 세라 코클리는 기독교인들이 더 깊이 기도하면 할수록, 인내·공감·참을성·용서·따뜻함 등 소위 여성적인 특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적인 특성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남성적 고정관념을 보완해 준다고 보았다. 최유진 박사는 세라 코클리가 말한 '여성성'은 선천적인 게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것이므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교회 현실로 넘어왔다.

"조선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여성들은 참된 해방을 경험했다. 이름도 없던 여성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이 생기고 남성들 사이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교회는 주체가 되는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남성과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타자로 남아 있다. 교회가 제도화하면서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밥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생산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는 교회 안에 아이들이 없으니 아이를 낳으라고 재생산 노동을 강요받기도 한다."

최유진 박사는 강의를 듣는 여성들에게 "힘든 건 알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떠나지 말고 살려 줬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있어야 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말뿐이 아니라 진정으로 교회가 개혁되기 원한다면, 교회가 페미니즘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과 남성이 골고루 참석해 강의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교회를 살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최유진 박사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니는 교회가 되려면 지난한 세월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자신은 여기에 뼈를 묻는다는 생각으로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유진 박사는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 책 모임이나 지지 그룹을 만들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의를 듣던 또 다른 남성은 여성적 관점에서 성경과 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게 중요하지만, 새로운 해석 작업을 할 수 있는 자원 자체가 희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경에 나오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더러, 여성주의 시각에서 교리를 재해석해야 할 때도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유진 박사는 말했다.

"그래서 여성 경험이 중요하다. 이건 비단 신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철학·심리학·정신분석학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 남성 중심 체제 안에 있던 골조들을 여성들이 재구성해야 한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번 이 작업을 해 볼 생각이다. 아직은 희미해 보이지만, 여성 신학을 가르쳤을 때 해방을 경험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 여성신학이 교회를 개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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