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 오랫동안 여성·성소수자·난민 등 낮은 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문경란 이사장(인권정책연구소)은 최근 <우리 곁의 난민>(서울연구원)을 펴냈다. 그는 <중앙일보> 여성 전문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서울시 인권위원장,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

한국은 난민과 무관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유엔이 설립된 뒤 최초로 난민 구호 지원을 받은 국가다. 67년 전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서는 6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국경을 넘지 않아도 거주지를 탈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국내 실향민이라고 부르는데, 유엔난민기구는 이들 또한 난민으로 분류하고 있다.

당시 유엔은 유엔한국재건단을 설립해 긴급 구호와 원조를 제공했다. 집을 지어 주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 중에는 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 같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미얀마·이라크·스리랑카 그리고 현재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도 있었다. 한국 전쟁 고아 2명이 시리아로 입양되기도 했다(35쪽).

올챙이 적 시절을 잊은 개구리처럼, 지금 한국은 난민들에게 철옹성과 같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에 난민 자격을 신청한 사람은 2만 2,792명. 그중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단 1명이, 지난해 말까지는 총 672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비율로 따지면 약 3%다. 이는 전 세계 난민 인정률(38%)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고 박수를 받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철옹성을 뚫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의 삶은 어떨까. 7월 7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문경란 이사장을 만나 <우리 곁의 난민>에 나오는 오늘날 난민들의 한국살이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한국에 사는 난민 여성 10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마다 출신 지역도 다르고 한국에 온 이유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남성 난민도 겪는 일터 내 노동문제는 물론, 여성들은 가사, 노동, 육아, 자녀 교육, 성차별 등의 문제로 이중 삼중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민 여성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한국까지 온 강하고 지혜로운 여성이라고 문 이사장은 말했다. 이들은 동정이나 시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당한 기회 및 대우를 보장받기 원하는 것이다.

문 이사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문경란 이사장은 한국에 사는 난민 여성 10명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했지만
난민 인정자, 수치상 세계 난민의 0%

- 오랫동안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이번에는 난민 여성 이야기를 책으로 풀었다.

교회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기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항상 교회 얘기를 꺼냈다. 예수는 '인권 지킴이'였다. 늘 가장 작은 자, 약한 자, 과부, 아이, 가난한 자, 아픈 자, 힘없는 자와 함께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고. 기독교인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하면, 소수자들이 겪는 인권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난민 문제를 접하면서, 우연히 한 난민 소년의 엄마를 만났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 여성이 처한 상황에는 두 가지 문제가 중첩해 있다. 난민 문제와 여성 문제다. 이 사실을 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다. 소수자는 말 그대로 잘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존재다.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난민 단체나 인권 활동가 도움을 얻어 난민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책에는 국내 난민 신청자·인정자 현황이 나온다. 전체 신청자에서 인정자 비율이 약 3%다. 한국은 왜 이렇게 난민에게 인색할까.

난민의 개념부터 정의하자. 국가는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난민은 전쟁, 종교, 인종차별 등 여러 이유로 박해를 받는데, 국가가 이를 보호해 주지 않아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다.

유엔은 1951년 난민 협약을 만들었다. 유엔 가입국은 이를 따라야 하지만, 현실은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지난해 굉장히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다. 한국은 지난해 말까지 4명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나머지 신청자는 인도적 체류자 자격을 부여하거나 타국으로 돌려보냈다.

법무부는 난민을 수용하는 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난민 문제에 무관심하고 난민은 위협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난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민이 난민을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수자에 대한 합의를 국민에게 구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소수자는 말 그대로 '소수'자다. 다수 사람이 굉장히 높은 찬성률을 보일 때 소수자를 받아들이겠다? 이는 난민 협약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다. 난민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 2016년까지 2만 2,792명이 난민 자격을 신청했고, 672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 서방 국가도 꼭 독일처럼 난민에 우호적인 건 아니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이 지난해 <부자 나라들의 빈약한 환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 절반인 약 1,200만 명이 요르단·터키·팔레스타인·파키스탄·레바논·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개국에 몰려 있다. 난민이 발생하는 국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6개국이 세계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퍼센트도 안 된다. 그런데 이들이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사실 유럽이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엄살을 떨고 있다. 미국·중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 등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이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56.6%나 되는데, 이들이 받아들인 세계 난민은 전체 8.9%밖에 안 된다.

한국은 수치상 0%다. 우리는 전 세계 난민 문제에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나 부끄러운 자료다. 한국은 출입국 관리국이나 마찬가지다. 난민 협약과 난민법 정신에 근거해 우리를 찾아오는 난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같이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을 최대한 받아들이지 않으려 관리만 하고 있다.

- 책을 보면, 난민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받는 차별도 심각한 것 같다.

난민 여성들과 인터뷰하며 그런 말을 들었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를 일으킨 나라라고 들어서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살고 보니 실망했다고 한다. 인권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관계가 어느 정도 쌓인 뒤에야 조심스럽게 꺼낸다. 자신들이 이런 얘기를 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 선진국이고 인권도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 분명히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과 함께하거나 연대하는 일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난민들에게 직접 이런 말을 들을 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난민이라고 하면 보통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피부색이 검거나 외모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능력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은 죽음의 고비를 뛰어넘어 여기까지 온 용감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만난 난민 여성 중에는 해외에서 신학을 전공한 박사도 있고, 미국 대사관 직원 출신도 있다. 어떤 이는 국립 무용단에서 유명한 무용수였고, 또 다른 이는 러시아 무역 회사에서 일한 유능한 인텔리다.

난민 여성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이들이 하는 것은 허드렛일이다.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없어, 허드렛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가 이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요건을 마련해 주면, 난민 여성에게도 한국 사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의 난민 여성은 가사, 노동, 육아, 자녀 교육 등 이중 삼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난민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머리말에서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해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하기 쉽지만, 구체적으로 만나 대화하고 속마음을 나누는 경험은 소수자를 '인간'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썼다.

난민이든 성소수자든 옆에 소수자 친구가 있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소수자를 접하기 전에는 의구심·두려움·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막상 만나 대화하고 나니, 그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소수자를 싸잡아 험하게 말한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혹시 주변에 소수자가 있다면 말 한마디 걸고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들이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선뜻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럴 때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지고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대할 수 있다.

이 책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처음 쓰려고 할 때는 난민 여성의 삶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쓰고 보니 인간의 삶을 다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이 되고 싶어 난민이 된 경우는 없다. 이들은 역사의 격랑을 맞아 이곳까지 튕겨져 왔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때론 예측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다.

나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 있다. 그때 모두가 넘어진 나를 모른 척하고 외면한다면 어떨까. 최소한 인간 사회라면, 넘어진 이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잡고 일으켜 줘야 한다. 마치 성경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에게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살기 좋을까. 이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도 언제 어떻게 넘어지고 강도를 만날지 모른다.

- 책에서 "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고 했다.

난민 문제를 공부할 때, 한 책에서 아기 예수도 난민이었다는 글귀를 읽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천사가 꿈에서 경고하자, 마리아와 요셉은 밤중에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길을 떠난다. 지도를 펴고 이들이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간 거리를 재 봤다. 직선거리로 약 350km다. 사막을 헤쳐 먼 거리를 가는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갑작스러운 박해로 고국을 떠난 난민들과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난민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자녀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자국에서 데리고 온 아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 먼저 한국에 온 엄마를 뒤늦게 따라온 아이 등.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낯선 이집트로 온 아기 예수가 떠올랐다. 이 아이들 중에도 아기 예수와 같은 인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똑같은 사람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공동체다. 지난해 일산에 있는 한 교회는 시리아 이주민을 위해 할랄 음식을 제공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일부 교회는 난민, 이주민을 대할 때 제2의 선교라며 접근한다.

교회가 난민을 선교 마인드로만 접근하는 건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겠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있다. 전도 대상으로 삼기 이전에 이들의 처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며 지내고 있는 이들에게, 교회가 할 일은 전도일까 그저 손을 잡고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일까.

언어도 다르고 민족도 다른 이집트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어떻게 살았을까. 낯선 사회에서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했을까. 만약 이집트가 피난민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면, 이들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우리를 찾아온 이가 아기 예수일 수도 있고, 요셉일 수도 있고, 마리아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가 이것을 생각하면, 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뻔하다.

성경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아기 예수는 난민이었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안인의 비유를 들며, 우리가 그들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에 등장하는 룻과 나오미도 난민이었다. 보아스가 도왔기에 그들은 살 수 있었다.

인터뷰한 여성 10명 중 2명은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이유를 살펴보니 그들 곁에는 공동체가 있었다. 한국인들과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룰 때, 이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며 적응해 나갔다.

한국인들, 특히 교회가 난민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실제로도 문을 여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난민들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여기며, 무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존엄하고 평등한 존재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건네며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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