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가 '한국교회의 오적(五賊)'으로 드럼, 대형 스크린, 주여 삼창 기도, 단체 급식 같은 성찬식, 청바지와 같은 싸구려 복식이라고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급히 사과문을 다시 올렸다. 원래 몰매 맞을 각오로 올린 글이라면 그만큼 소신을 가지고 올린 것이었을 텐데, 며칠 만에 소신을 꺾고(?) 사과문을 올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한국교회 오적(五賊)'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한 주장이 넘쳐나게 되었다. 그러한 주장을 대하면서, 한국교회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송길원 목사는 이러한 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실없는 유머로 웃게 만들고, 그러는 가운데 진리를 보게 하는 송길원 목사 특유의 어법이었을지 모른다고 애써 자위해 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교회 진짜 오적(五賊)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교회 진짜 적은 참된 복음을 대신해 버린 '번영신학'이다. 철저한 부패와 타락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는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이 세상 형통을 추구하는 번영신학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언약궤를 가지고 가서 전쟁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신앙을 이 세상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 번영신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적이다.

번영신학이 활개를 치게 만든 것은 한국교회에 파고든 '미신적인 관점' 때문이다. 우리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적 원리(sola scriptura)는 한국교회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놀랍게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미신적인 관점이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깊이 파고들어 왔다. 놀랍게도 한국 신학자들은 이런 미신적인 관점을 강화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교회 현재 모습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신앙 행태'를 많이 닮아 있다. 이러한 율법주의적 신앙 행태는 참된 복음을 잃어버리고 번영신학을 추구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 같은 강연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한 해답으로 주어진 것이 율법주의적 신앙이다. 헌금을 많이 하면, 종교적 열정에 힘쓰면, 최선을 다하면, 더 나아가 마음을 비우면 성공할 것이라는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면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겠는가. 율법주의적 신앙은, 우리의 철저한 무능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또 하나의 적은 '신앙도 성공의 척도로 바라보는 세속적 관점'이다.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것(마 6:1)인데, 사탄은 신앙마저도 성공의 관점으로 재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전도 왕, 맨손으로 개척하여 대형 교회를 일군 목사, 주일학교 학생이 많은 교회, 이웃에게 사랑을 많이 베푸는 교회 등… 신앙은 어느새 사람들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평가에서 박수 받는 사람과 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형 교회를 일구지 못하면, 또는 사람들 주목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신실한 경건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이 실패자들 변명거리로만 치부되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본질에 주목하지 못하고 형식에만 매달리는 '형식주의'가 한국교의 오적 가운데 하나이다. 찬양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마음속에서부터 올리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드럼이 문제라느니, 복식이 문제라느니 시비를 건다. 우리가 자라 온 문화는 신앙보다 더 강한 것이어서 나와 다른 문화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 신앙을 거짓으로 몰아가는 문화적 편견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을 돕기 위해 마련된 여러 문화가 하나의 전통이 되어 버리고, 알맹이는 빠진 채 그 전통이 진리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신학적으로 훈련되지 못한 일반 신도보다 목회자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오적(五賊)들로 가득 찬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을까. 누군가는, 그래도 깨어 있는 양심을 가진 분들이 있어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강호에 고수들이 있듯이,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실하게 사역하는 목회자들과 정말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무명의 신도가 우리 한국교회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오적(五賊)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오적(五賊)을 규명하는 순간, 규명하는 사람은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에서 살며시 빠지게 되고, 또한 그 글에 동조하는 사람도 그런 혐의를 벗게 된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주범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고, 실체 없는 오적(五賊)만 세워 놓고 돌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이다. 그리고 내 글을 함께 읽고 동조하는 바로 우리다.

한국교회를 망친 주범의 얼굴이 누구인가 하고서 우물을 들여다보면 바로 그 속에 우리들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우리는 오적(五賊)들이 활개 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우리 자신이 오적(五賊)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깨어 있는 양심을 가진 무명의 신실한 신도들도 실체는 없다.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다면, 오직 예수님뿐이다. 더럽고 추한 모습을 가진 우리들이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신앙마저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바꾸어 버리는 죄성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우리 죄를 자복하는 것 외에는 어떤 소망도 없다. 오늘도 주님의 은총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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