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고 없이 93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입금 바로 전에 후원하겠다는 통보(?)가 있었습니다. 93만 원이라니…. 개인 후원으로는 금액이 크기도 했지만 조금은 특이한 숫자입니다. 일시 후원 금액은 대부분 0으로 끝나니까요. 전화를 드렸습니다. 직장 생활하시는 청년이었고 그동안 모은 돈을 어떻게 쓸까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뉴스앤조이>에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청년, 이런 부모님이 계시다니! 만나기로 했습니다.

강남 어느 식당에서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떻게 후원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답이 의외였습니다. 원래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단체에 기부하려 했다가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뉴스앤조이> 후원을 결정하셨답니다. 십수 년째 대형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뉴스앤조이> 같은 비판적인 시각이 한국교회에 꼭 필요하다 느꼈기 때문에 후원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후원자님이 교회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부당한 것들이 있을 때 용기 내어 문제 제기해도, 논의 과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어떤 조직도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소통 과정을 거쳐서 해결할 수 있느냐가 조직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잣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후원자님이 느끼시기에 교회의 소통 과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교회에서는 내부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 자체를 공격한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문제 제기도 사랑과 애정이 있어서 하는 것인데, 적응하지 못하고 엇나가는 교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후로 그냥 입을 다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어쩌면 이런 경직성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지지하는 교인뿐 아니라 문제 제기하는 교인에게도 귀를 기울인다면, 정말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경직된 소통 구조를 갖게 된 원인이 여럿 있겠지요. 혹자는 문제 제기하는 사람 태도를 지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후원자님처럼 10년 넘게 한 교회를 애정으로 다녔던 분들마저도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에게 93만 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교회 개혁을 위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마도 그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래저래 저희 마음이 무겁습니다.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후원자님들의 마음이 저희에게는 다 빚입니다. 그 빚, 모두 갚을 수도 없겠지만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저희가 한국교회 일원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한국교회 개혁을 향한 저널리즘 운동에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재정적 어려움은 몸에 박힌 가시처럼 매년 겪는 일이지만 올해는 또 다르게 우리 몸을 죄어 옵니다. '경제 위기'가 더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소액 후원으로 함께 이 길을 걸어 주십시오.

어려운 시기에도 함께 이 길을 걸어 주시는 길동무님들께, 그리고 저희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청파동에서
강도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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