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이 피고를 모함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꾸며 냈다고 볼 만한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피고는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장기간 다수의 여성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해 온 것으로 인정된다." (서울고등법원, 6월 5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전병욱 목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판결이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법원은 피해자 5명의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전병욱 목사는 교인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고, 수시로 이들의 몸을 만졌고 음란한 말로 희롱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이 선교 중에,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갔을 때, 심지어 임신이나 출산 후에도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인정했다.

피해자들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전병욱 목사를 지지하는 일부 교인의 공격과 상황을 관망하는 사람들의 냉소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을 지우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꽃뱀'·'이단' 소리가 난무했다. 홍대새교회 교인들은 2016년 초 노회 재판 당시 "피해자들의 실체가 없다"는 피켓을 제작해 들고 나왔다.

왜곡된 진실이 법정에서 바로잡히는 데는 피해자의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 그리고 이후 본인이 겪었던 일을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병욱 목사가 집무실 등지에서 수차례 엉덩이 등 신체를 만졌고, 음란한 말로 희롱했다고 말했다.

판결 이후, <뉴스앤조이>는 7월 3일 어렵게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피해자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그는, 대화가 시작되자 교회와 목사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삼일교회 치유와공의를위한TF팀 신창조 집사가 인터뷰에 동행했다.

2016년 1월 평양노회 재판국에 전병욱 목사와 함께 온 홍대새교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인터뷰뿐 아니라 법정 증언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나오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는가.

가족들은 "스트레스 받을 일 왜 하느냐"며 만류했다. 기도하면서 결정했다. 하나님께서 "가서 증언해야 한다"고 하셔서 용기를 냈다.

사건이 일어난 후 교회 안에서는 피해자들이 꽃뱀이라거나 악한 세력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제일 많이 들은 얘기가 "그런 목사인 것 알면서 왜 (집무실에) 가느냐, 왜 (삼일교회에) 남아 있느냐"였다. 전병욱을 옹호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빨리 잊고 싶어 했다. 좋은 일도 아니고 자기 일도 아니니까…. 피해자들이 얼굴 다 드러내 놓고 교회 앞에서 시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나마 나는 비교적 피해 수위가 낮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추행 정도가) 심각했으면 수치스러워서 솔직히 말 못 했을 것 같다. 나보다 더 심한 피해를 입은 분도 분명 더 많을 것이다.

- 재판부가 실제 성추행이 있었다고 판결했다. 교단 재판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나는 법원의 이번 판결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교회 재판 결과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교회는 전근대적이다. 말 한마디로 장관직 날아가는 세상이고 촛불 들고 나가면 대통령도 몰아내는 세상인데, 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교회는 그렇다. 내가 겪은 교회는 그랬다. 어릴 적 다닌 교회는 더 심했다. 목사는 자신을 레위인이고 성물이고 선지자고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했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다. 전병욱은 절대 면직이나 치리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면 '하나님이 저 사람을 정말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재판 가 보니, 전병욱 변호사가 없는 사실을 꾸며 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더라. 만일 내 증언이 거짓말이라면 전병욱이 얼마든지 나한테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을 텐데 연락을 못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도 알고 번호도 바뀌지 않았는데 따지지 못한다. 전병욱은 만만한 피해자들에게는 전화해서 입단속을 시켰다. 문제 제기 안 할 거 같은 사람에게만. 소문낼 거 같은 사람들에게는 전화 안 했다.

- 사건 초기 피해자들이 '꽃뱀'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 분위기를 말해 줄 수 있나.

사건 초기에는 전병욱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제왕적 위치에 있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잡고 있는 상태라, 무슨 말을 해도 내 말을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 성장이라는 결과물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병욱이 "선교 가라", "특새 참석하라" 그러면 교인들이 다 말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때 삼일교회는 전병욱에 중독돼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도 피해를 당했지만 처음에는 '목사님도 사람인데, 저분의 연약함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자발적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 생길 정도였고, 나도 같이 기도했다. 메인 사건(구강성교 강요)은 거짓말일 거라 생각했다.

전병욱이 "내가 오해를 받고 있다. 내가 어떤 자매 옷을 찢었다는데 세상에 내가 그럴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 교인들은 다 그 말을 믿었다. 교인들은 "그 나쁜 년" 하면서 전병욱을 두둔했다. "사모님 심정 생각해 보라. 네가 이럴 수 있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삼일교회 내부에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사건 후 전병욱이 안식년을 갔다. 징계였지만 교회에서는 안식년이라고 했다. 몇 교인이 전병욱을 만나러 기도원에 갔다. 그러면 또 전병욱은 "나는 억울하다. 나 이러다가 자살할까 겁난다" 이런 소리를 했다고 한다. 누가 자신한테 팔짱을 끼면 "이거 봐, 걔도 나한테 이랬어" 이런 식이었다.

교회와 교인은 피해자에게 아무 말 못하게 했다. 상처를 줬다. 교인 어느 누구도 이 일이 드러나고 기사화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보다, 세상이 얼마나 교회를 조롱할까, 공격할까를 생각했다.

법원은 전병욱 목사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온 교인, 임신 중인 교인에게까지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고 인정했다. 사진 제공 지유석

-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이 교회 내 수직 문화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 문제인 것 같다. 이동현 사건 같은 유사 사례를 접하면 어떤가.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피해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다. 왜 거길 갔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이다. 나도 자책하는 마음이 있었다. 힘들었다. 바보 같았고, 순진했고, 왜 그때 그러지 말라고 하지 못했을까 싶고…. 여전히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데, 왜 그때 불러도 안 간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고….

솔직히 피해자들은 그렇다. 드러내는 거 아프고, 잊고 싶고 생각하기도 싫고 부정하고 싶다.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피해 사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숨게 되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있어서 솔직히 고맙다. 예전에 홍대새교회 앞에서 과격하다시피 피켓 시위를 한 자매가 있었다. 삼일교회에서도 그 자매를 욕한 사람이 많았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고.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피해자들은 싸울 힘이 없었고 너무 지쳐서 될 대로 돼라 식인데, 대신 그렇게 해 주는 분이 있어서 감사했다.

-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목사에게 기대하지 말고 교인이 스스로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달라. 그런 긴장감이 있다면 목사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목사를 맹신하면 목사가 교회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래서 성범죄나 교회 세습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교인들이 교회에 문제가 생겨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도 그렇다. 하지만 목사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놔두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교인들이 다들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긴장감을 갖고 목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