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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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예배 시간, 민규의 설교가 끝날 때쯤이었다. 설교가 마무리될 무렵, 한영호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 대예배실의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예배에 참석한 다른 교우들도 일어서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들 중엔 김정은도 있었고, 민규의 어머니 양 권사도 있었다.

민규가 설교 기도를 생략하고 강대상 밑으로 내려왔다. 때맞춰 피아노 반주자인 김정은이 더 이상의 연주를 멈춘 채 일어서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내 율주제일교회 대예배실 전체가 흐느끼는 듯한 울먹임이 뒤섞인 기도의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지금 민규의 귀에 들려오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었다. 주문에 불과했다. 그들이 아무리 긴절하고 절박하게 죄로부터의 정결을 외쳐도 민규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그의 심경일 것이다.

자리에서 내려온 민규가 대예배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때맞춰 스테인드글라스로 마감된 반투명 유리 창문 너머로 검은 연기들이 가뭇가뭇 치솟아 올랐다. 검은 연기의 그늘이 율주제일교회 대예배실을 온통 어둠의 기운으로 내리눌렀다. 민규는 주문처럼 외우는 교우들을 바라봤다. 현재 11시 오전 예배에 참석한 이들은 반토막 규모를 넘어서서 기존 교우의 십분지 일 규모도 되지 않았다. 한영호 장로를 주축으로 모인 그들 모두 유재환 목사의 최후 계시가 실현되길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설교 시간 내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오래전에 썼던 논문의 일부만을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민규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설교가 마무리 부분, 곧 자신의 논문 마지막을 읽어 내려가면서부터 민규는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 치밀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우연에 기댄 유재환의 계시,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명백히 확인하고야 만 것이다. 아마도 이 불길한 깨달음은 어젯밤, 그 소녀, 윤서주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찾아와 자신의 아버지가 14년 전 교회 5층에 들어가 스스로 문을 잠그고 죄의 정화를 위해 불을 지르던 김형윤 전도사였단 사실을 듣지 못했다면, 김형윤 전도사의 정화 의식의 중심에 인간의 정결과 악의 일소, 신의 뜻을 향한 절대복종을 부르짖던 유재환의 광기가 똬리를 틀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더라면 결코 찾아올 수 없는 깨달음인 것이다.

결국 민규는 알아 버렸다. 그것은 결코 원치 않는 발견이었다. 한영호 장로가 대예배실 문을 잠가버리고 문 앞을 가로막고 선 이유 역시 민규의 눈빛에서 불길한 한 징후, 깨달음의 징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민규가 알아버렸다. 한영호가 확신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가장 온전하게 십자가 길을 따르는 계시의 실천을 민규가 알아 버린 것이다. 자신을 가로막은 한영호를 보며 민규가 경고하듯 말했다.

- 비켜요.

교우들은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한영호가 민규를 노려보며 답했다.

- 유 목사님은 지금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 정결 예식을 집전하고 계십니다. 행여 방해할 생각이라면 나가지 마세요!

- 비키라고! 이 미치광이들아!

- 정 목사님. 이건 당신 논문에 적힌 신의 뜻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이 쓰고 당신이 말한 거예요.

진정한 믿음에 이르는 길은 좁은 길이다. 신의 명령이 자신의 아들을 바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단호하게 따르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결단이 부활의 믿음을 이끌어 낸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부활의 믿음 말이다.

- 부활의 믿음이라 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이요!

- 입 닥쳐! 닥치라고!

- …

- 그런 믿음은 없어! 그런 하나님 없단 말이야!

기도하던 교우들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민규가 그들을 향해 절규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쏟아 내고 또 쏟아 내 외쳤다.

- 너희들의 하나님은 미친 하나님이야. 우리들의 하나님은 … 악마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퇴장해 버린 … 진짜 나쁜 하나님이라고!

*

대예배실을 벗어나 교회 밖으로 나온 민규의 눈앞에 펼쳐진 건 주일 정오를 수놓은 끔찍하면서도 화려한 정결 예식의 살풍경이었다.

검붉은 연기가 신애원 건물을 순식간에 휩싸 안은 살풍경, 민규는 절박하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 외침 속에서 민규의 눈에 들어온 단 하나의 대상은 신애원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유재환이었다.

유재환은 자신의 몸을 쇠사슬과 함께 문고리에 완벽히 결박해 버린 상태였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린 채로 온 몸을 체인으로 꽁꽁 감아 버린 그의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검은 불길이 이미 정문 앞까지 휘몰아치고 있었다. 민규의 눈앞엔 신애원 3층, 열린 창문 사이에서 아우성치며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신애원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치솟는 불길 속에는 어젯밤 자신을 찾아와 광기의 화마를 예고한 윤서주도 함께였다. 하지만 3층 마지막 방에 혼자 있던 윤서주는 울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섬뜩한 무표정으로 민규를 내려다봤다.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 눈빛은 민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철거직전의 기차역사에서 마주했던 그 눈빛 그대로였다.

쇠사슬에 묶인 유재환을 향해 민규가 단숨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잠가 버린 문과 하나가 된 쇠사슬을 풀어내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유재환도, 그를 묶은 천형의 죄업이 되어 버린 쇠사슬은 쉽게 그 결박을 풀어 주지 않았다. 점점 더 불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재환은 희열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거룩한 순교를 눈앞에 둔 진심의 환희가 그의 전체를 지배했다. 민규는 곧 닥쳐들 죽음을 기꺼운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유재환을 향해 규탄하듯 물었다.

- 왜!

- …

- 도대체 왜!

유재환이 민규를 노려보며 답했다.

- 사탄아! 물러가라!

- 이 미친놈! 멈춰! 당장 멈추라고!

- 사탄아! 이 순수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에 인도하려는 순교의 길을 막지 마라!

- 미쳤어! 아이들을 왜 죽여!

- 이건 죽음이 아니라 거룩한 희생이야.

- 뭐?

- 뼛속까지 썩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자 민규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민규는 유재환을 붙잡고 애원했다. 불길 속에서 오열했다.

- 제발 그만둬요. 제발 …

- 세상에서 버림받고 철저히 짓밟힌, 누구도 돌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이 순결한 마지막 기회를 막지 마라! 이 거룩한 불꽃, 거룩한 번제를 막지 말란 말이야!

오.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순결한 번제의 향을 흠향하고 기뻐하신다. 오. 주님을 찬양하라. 천지 만물을 지으신 주님을 찬양하라! 찬양하고, 또 찬양하라!

불길에 휩싸인 유재환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힘차고 격정적인 선율로 가득한 진군가였다.

불길의 뜨거움을 견디다 못한 민규가 결국 물러선 채 바닥에 쓰러졌다. 신애원 정문 바닥에 쓰러진 민규는 검붉은 불길에 휩싸인 유재환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 민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 울분에 찬 진군가, 무표정한 섬뜩함,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기도소리, 지금 민규에게 그 밖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끝)

나쁜 하나님 작품 후기

나쁜 하나님을 집필하는 내내 믿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선 참된 믿음이란 무엇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믿음으로 결단하고 선택합니다.

소설 속 악마로 분한 김인철은 약한 하나님을 저주하고 강한 악마를 믿었고, 이단 판정을 받고 쫓겨난 유재환은 사랑의 하나님을 버리고 심판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좁힐 수 없는 수렁과 같은 간극 사이에 끼어 버린 소설 속 주인공 정민규는 과연 무엇을 믿었던 걸까요. 또한 오늘의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걸까요.

소설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었습니다.

시대가 지났다 해서 믿음이란 주제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교회를 넘어서서 공동체, 사회, 세상을 향한 존재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나쁜 하나님'이 결국 믿음의 주제를 가진 소설이라 보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믿음의 주제란 관점에서 '나쁜 하나님'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세계 교회는 분주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차갑게 얼어붙은 동면(冬眠)의 시간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이 동면의 시간이 그대로 계속될 수장(水葬)의 시간이 아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내는 것과 같은 신생(新生)의 시간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하나님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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