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콜로라도에서 '마스터피스케이크숍'(Masterpiece Cakeshop)을 운영하는 잭 필립스(Jack Phillips)는 2012년, 동성 커플이 결혼식에 쓸 케이크를 주문하자 제작을 거부했다. 자신을 '회심한 기독교인'이라고 표현한 필립스는 결혼을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결합'이라고 보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동성 부부를 위한 케이크는 만들 수 없다고 밝혔다. 동성 커플은 필립스가 콜로라도주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필립스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경우는 더 있다. 2012년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 사진 촬영을 거부한 사진사가 인권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 2013년 워싱턴주 꽃집 주인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 꽃을 팔지 않아 벌금을 내야 했다. 2015년 미국 오리건주 제빵사 부부는 동성 결혼에 쓰일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가 역시 벌금이 부과됐다. 각 주 법원은 사업자가 고객의 성적 지향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은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항소도 전부 기각했다.

잭 필립스(Jack Phillips)는 동성 결혼에 쓸 케이크 제작을 거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CBS뉴스 갈무리

이 사건들은 동성애 반대 운동을 펼치는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이 언급하는 단골 메뉴다. 미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인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개신교인이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보수 개신교인들은 '종교의자유'를 내세우며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개인의 종교적 신념 중 어떤 것이 우선될까. 이르면 올해 말,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원은 6월 26일, 동성 결혼에 쓰일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받은 콜로라도주 제빵사 잭 필립스 사건을 심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연방대법원은 항소법원에서 상고한 모든 사건을 심리하지 않는다. 종신직 대법관 9명이 각각 사건을 심리해 4명 이상 찬성하면 상고가 허가되는 철저한 상고허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1년에 상고 허가를 요청한 안건은 7,000~8,000건이지만 정작 다루는 안건은 100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판례를 만들거나, 헌법과 연방법 해석을 놓고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경우가 있을 때 주로 상고를 허가한다. 낙태 합법화, 총기 소지 등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는 모두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심리를 맡는다. 2015년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것도 연방대법원 결정 때문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빠르면 가을에 이 사건 심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그동안 재판에서 잭 필립스의 변호를 맡아 온 기독교 법률 단체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ADF)은, 개인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ADF는 필립스와 다른 기독교인 사업자들 패소의 근거가 된 몇몇 주의 차별금지법이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위배한다고 주장해 왔다.

동성 커플 변호를 맡은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ACLU)은,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의 상고를 허가하면 앞으로 사업자가 종교의자유를 빌미로 성소수자 차별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틈새가 생길 것이라며 허가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ACLU에서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제임스 에섹스(James Esseks) 변호사는 "사업자가 공적 영역에 가게를 연다는 것은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법은 동성 커플 편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Neil Gorsuch)가 대법관에 취임하면서 케이크 사건 상고가 가능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닐 고서치가 취임하면서 보수 성향 대법관 5명, 진보 성향 4명으로 숫자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연방대법원에서는 보수 성향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에 우호적인 판결도 나왔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다 무산된 반이민 행정명령이 연방대법원 최종 판결 전에라도 일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6월 26일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은 '마스터피스케이크숍 대 콜로라도시민권익위원회'(Masterpiece Bakeshop vs. Colorado Civil Rights Commission) 사건을 빠르면 2017년 가을에 심리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심리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종교의자유가 우선인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우선인지 계속 논쟁 중인데, 이 사건 결과가 양쪽 진영에 좀 더 명확한 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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