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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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기분으로 맞이하는 토요일이었다. 한영호 장로와 몇몇 사찰집사들의 바지런함이 빛을 발한 사택으로 들어선 민규는 곧바로 서재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설교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의 설교와는 달랐다. 민규는 설교문을 쓰다 지우고, 또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유재환의 요구를 그대로 따른다면 설교 준비가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아브라함의 에피소드를 놓고 전개하는 설교는 민규가 이곳, 율주제일교회에 왔을 때 나눴던 설교 주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브라함의 설교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별도의 말이 없었던 점,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 자체도 설교 준비의 어려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금처럼 서재 책상에 자리 잡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이유일까. 왜 설교문을 쓰지 못하는가. 무엇이 내 정신의 발목을 붙잡는 걸까.'

토요일 내내 민규는 뜻 모를 무게감 속에서 신음했다.

민규는 문득 새롭게 정비된 사택, 서재 책상에서 바로 보이는 백색 벽면을 바라봤다. 잡티 하나 발견할 수 없는 새하얀 시멘트 벽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인내심 강한 화가의 유화처럼 수많은 덧칠을 가미한 흔적이 역력한 백색의 벽은 질식할 법한 강박으로 다가왔다.

민규의 시선은 설명하기 힘든 자력에 이끌리듯 벽면의 모서리 부근으로 끌려갔다. 천장과 벽 사이, 바닥과 벽 모서리 틈새에 검은 그을음들이 눈에 뜨였다. 그을음의 흔적은 결코 크지 않았다. 어린아이 손가락 마디 크기만 한 작은 흔적이었다. 하지만 민규의 눈엔 그 흔적들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어른거렸다. 작은 크기였음에도 분명한 흔적을 남기는 그을음은 분명 범접하기 어려운 화마에 휩싸인 흔적이었다. 순간,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깔끔하게 인테리어 마감된 벽면과 방문과 방문턱, 몰딩 마감된 천장을 바라봤다. 깨끗하게 도배가 된 거실의 벽면, 먼지 한 점 발견할 수 없게 깔끔하게 청소된 카펫, 새롭게 들여놓은 가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민규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은 어김없이 사택 곳곳에 미미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그을음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견뎌 온 듯한 그을음의 흔적은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민규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신음과 호소로 끌어 올랐다. 그 들끓음이 민규의 심장을 거칠게 뛰게 했다. 이곳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게 된 이유, 그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의심케 했다. 그 의심은 근원과 연관된 질문을 낳았다. 민규는 결국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자문했다.

'내가 여기서 어떤 설교를 할 수 있지?'

그에 대한 답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도리어 민규의 목줄을 옥죄었다. 한영호 장로로부터 들은 단 하나의 명령, 더없이 간곡한, 수천 명에 달하는 율주제일교회 교우들의 영혼을 담보로 하고 벌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애원과도 같은 청은 바로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민규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하지만 언제까지라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논문의 결론, 그 마지막 결론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이삭은 결국 바쳐진 것이다. 참된 신인 야훼 하나님의 제단, 그게 아님 최악의 부패와 타락의 기운으로 가득한 이교도의 제단에 바쳐지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그 고뇌에 대한 솔직한 결단은 이제 명확해진다. 인간의 비루하고 그럴수록 또렷하고 진솔한 절망과 불신, 두려움, 범죄에 대한 정결을 회복하는 길, 그 길만이 요구될진대 그 욕구에 다른 것이란 있을 수가 없다. 죄악과 악행을 씻는 마지막 정결을 향해 도피하는 길은 신을 향해 자신의 절망을 토로하고 스스로 마무리하는 주체적인 해방을 실천하는 길, 그 길뿐이다.

그 길. 단 하나의 길을 말해야 하는 민규에게 사택 거실 창가를 누군가 두드렸다. 헐거워진 틈새 사이로 벌어진 창문 틈사이의 간격 탓이지 두드림 소리가 더 강하고 크게 들려왔다.

창문을 열자 바로 민규의 눈에 들어오는 건 한없이 어리고 여린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 윤서주였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윤서주와 눈이 마주하자마자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물었다. 소녀의 눈빛이 민규의 심장을 일순간 멎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 천국을 잃어버린 그 어딘가를 떠도는, 지독히 외롭지만 누군가에겐 절대 의존하지 않으며, 진실이 농익고 농익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으로까지 팽창되었지만 진실의 실체 앞을 가로막고 선 검고 암울한 그늘로 존재하는 열여섯 윤서주의 눈빛이 민규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갑게 굳어 버린 민규가 그 역시 차갑게 얼어 버린 모든 감정이 거세된 느낌을 담아 묻고 또 물었다.

- 신애원은 어떻게 되지?

- …

- 넌 어디로 가는 거야?

신애원 운영을 율주제일교회가 아닌 지역 자치단체 시설로 편입되는 것이 결정되자 율주시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애원의 아이들을 다른 지방 시설로 옮기는 이전 조치를 단행했다. 대부분 부모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며, 설령 연락이 닿는다 해도 지자체 측에 관리, 처분을 위임해 버렸기에 율주시는 폭탄과 다름없는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보호는 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의 책임은 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신애원은 시설 폐쇄 절차를 밟았다. 민규도 알 수 있었다. 김정은을 포함해 원장과 선생님들 전부가 떠나 버린 신애원이 아이들은 다음 주 토요일까지 타 정부 보호 기관이나 감호 시설로 보내지게 될 거란 사실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윤서주의 갈 곳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습할 길 없는 자괴감이 민규를 사로잡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답을 기다렸다. 윤서주가 이곳에 자신을 찾아온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민규의 확신은 바로 확실한 반응으로 연결되었다. 윤서주가 분명하고 또렷하게 답했다.

- 아빠도 여기에 있었어.

- 아빠? 아빠가 왜 여길 … ?

이곳은 십여 년 전 유재환 목사의 사택이었다. 율주제일교회 출신 전도사 다섯의 집단 방화, 집단 자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뒤 컨테이너 기도원행을 택한 이후, 이곳은 누구의 출입도 허락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윤서주의 아빠가 이곳에 있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현관 창문은 더 활짝 열렸고, 어느새 붉은 석양이 소녀와 민규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아빠에 대해 말하는 소녀, 윤서주가 말을 이었다.

- 그땐 아빠가 악마를 불태웠지 …

- 아빠… 라고?

- 내일은 우릴 불태울 거야.

- 누가?

- 악마를 불태울 거야. 반드시 불태울 거야.

- 도대체 누가!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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