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엄인영 목사(들꽃푸른샤론교회)는 2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5월 31일 주일예배 설교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회자됐기 때문이다. 엄 목사는 당시 설교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인은 하나님의 뜻을 온몸으로 실천하려 애썼습니다. 반칙과 특권의 문화에 찌든 정치를 개혁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고,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으며,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는 곧 더불어 사는 참세상을 염원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인영 목사는 6월 27일 제8회 목회자·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 오전 강의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했던 설교를 떠올렸다. 목회멘토링사역원(안진섭 원장)·공동체지도력훈련원(최철호 원장)이 공동 주최하고 교회개척학교 숲(김종일 대표코치)·교회2.0목회자운동(김성률 대표)이 공동 기획한 행사다. 엄인영 목사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회자는 제사장이자 예언자 역할을 맡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 앞에 예언자적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는 제사장 노릇만 할 뿐 예언자 역할은 잃어버렸다. 목사라면 우리 사회가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날 강의 주제는 '교회와 목회란 무엇인가 - 그리고 목사란 무엇인가'였다. 강사로 나선 엄 목사는 30년 목회 인생을 돌아보며, 과거 한국교회가 오늘날보다 더 성경적이고 건강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본질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엄인영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엄인영 목사는 한국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지탄받게 된 건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혜·기도·봉사만 강조하고 설교, 성경 공부는 소홀히 여겼다는 지적이다. 엄 목사는 목회자가 먼저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목사는 '성경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성경을 잘 모르고 가르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군인이 총을 들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 군인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를 하고 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모든 목사가 교인에게 성경 66권 전체를 가르칠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뱀이 먼저 등장하는 건 지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지혜롭지 못하면 순결함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폭넓게 읽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춰야 한다.

나는 설교를 50분 넘게 한다. 장로들이 설교 시간을 25~35분으로 하자고 요구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어떻게든 설교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썼다. 요즘은 정통 교회가 말씀을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교회에 십수 년 출석한 교인들도 성경을 모른다. 오히려 이단이 성경 공부에 더 열심이다.

한국교회는 종교 행위만 강조한다. 예배·찬양·십일조·기도를 너무 강조한다. 아무리 봐도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나는 교인들에게 '기도는 10분만 하라'고 말한다. 대신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가정·직장 등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엄 목사는 목회자가 조심해야 할 일도 소개했다. 그는 돈, 명예(자리·기득권), 성 문제 등은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약점이라며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의는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후 엄 목사와 참석자 80여 명이 대화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엄 목사가 지난 30년 동안 어떤 목회의 길을 걸어왔는지 궁금해했다. 이들이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A / 10분 이상 기도하지 말고, 대신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엄인영 / 그 말은 연세대학교 한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 보면 개신교·불교·유교·천주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다원 사회 같지만,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종교가 한 뿌리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샤머니즘이다. 종교는 저마다 다르지만 각 개인의 내면에는 샤머니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모습이 기도다. 옛날 어르신들이 정화수 떠 놓고 빌었던 형태가 교회에 그대로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샤머니즘 성격이 강한 기도를 백날 열심히 해 봤자, 하면 할수록 참된 신앙에서 멀어질 뿐이다.

물론 기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기도다.

B /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교인 개개인의 삶만 강조하는 것 같다. 교회 공동체 차원의 기도는 없을까. 공동체가 함께 세상에서 행동으로 올리는 기도 말이다.

엄인영 / 나는 이 세상에서 고난과 역사의 현장을 직면하고, 교인을 현장으로 인도하는 게 목회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는 5월이 되면 5·18국립묘지에서 주일 오후 예배를 한다. 세월호 참사 때도 교인들과 함께 안산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다. 최근 화두는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문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GMO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지만, 식품에 GMO 첨가 표기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도록 전문 강사를 교회에 초청하기도 한다. 탈핵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 교인들이 다 같이 교회 인근 영광원자력발전소를 직접 찾아간 적도 있다.

한 참석자가 엄 목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C / 주일예배 설교를 정말 50분 동안 하는가. 한국교회 상황에 맞을지 의문이다. 교인들이 긴 설교 시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엄인영 / 설교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투쟁했다. 교인들은 25~30분 설교에 익숙하다. 그 이상 길어지면 노골적으로 저항한다. 하품을 하거나 시계를 보는 등 다른 행동을 한다. 당회원들 반응은 더 심하다. 장로들이 설교 시간 때문에 교인들이 힘들어한다며 온갖 걱정과 근심을 늘어놓는다.

설교 때문에 당회원들과 갈등이 많았다. 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종종 예언자적 설교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한 설교가 대표적인 예다. 당회원들은 굉장히 듣기 싫어한다. 그런 설교를 다시는 하지 말라며 내게 여러 차례 주의를 줬다. 결국 이 문제로 교회를 사임해야 했다.

그러자 젊은 집사들이 들고일어났다. 장로들의 행동을 성토하며 300여 명이 나와 교회를 개척해 나를 다시 청빙했다. 현재 그 교회에서 목회한 지 1년 6개월 됐다.

지금 교인들은 50분 설교에 모두 적응했다. 주일예배는 11시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한다. 어른부터 유·초등부 아이들까지 모두 참석하는데, 다들 예배에 잘 집중한다.

D / 대구에서 목회하고 있다. 청년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가 커지면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르신들이 설교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때는 촛불 정국이었다. 나와 청년들은 촛불 시위를 지지했는데, 어르신들은 반대쪽을 지지했다. 이런 분열을 막기 위해 설교만큼은 균형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인영 / 이전 교회에서도 장로님들이 비슷한 말을 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설교를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그렇지 않다. 아모스·미가를 보면, 이들은 시대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서 말씀을 전했다.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드시 해야 할 게 성경 강좌다. 교인들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이해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바탕 없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설교를 들으면 오해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정치 얘기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잘못된 얘기다. 성경을 보면 온통 정치 얘기다. 구약서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목사에게도 한계가 있다.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늘 성경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를 구해야 한다. 목사들이 정말 성경에 승부를 걸었으면 좋겠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경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