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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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가 율주제일교회에서 설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어머니 양 권사 때문이었다.

눈물로 기도하던 양 권사는 민규가 불구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온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절규하듯 말했다.

- 정민규 목사.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주신 기회야. 눈물로 회개하고 그 자리를 받아들여. 받아들여야만 해. 제발.

양 권사의 절규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내 아들만은 끝까지 잘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모성일까. 아님, 자녀를 당신의 일꾼으로 써 달라고 서약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은 신앙심일까. 민규에겐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떤 감정이든 민규는 어머니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보며 민규는 그녀의 마지막 남은 인생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양 권사는 이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민규가 미국 한인 교회에서 벌인 부적절한 스캔들과 현재 이곳에서 벌인 지적장애인들을 향한 입에 담기도 추잡한 악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 권사는 자신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는 아들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버릴 수가 없다는 신념을 버릴 수 없었다. 아들의 인생이 악행과 추악함으로 결론 내려진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순간, 그녀 자신의 인생도 송두리째 부정되기 때문이었다.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양 권사 앞에서 민규는 한동안 말을 이었다. 양 권사 역시 그 말 한마디, 한마디의 간청을 끝으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의 결단을 묵묵히 기다리며 아들의 방에 밥상을 차려 주고, 춥지 않도록 단독주택 기름보일러의 온도를 조절해 주고 자리끼를 봐 주는 일만으로 시간을 견뎠다.

교회 측에서 마련한 사택에 민규는 일단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옛날 자신이 앉던 앉은뱅이책상에 앉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함께했던 책상이었다.

책상에 앉은 민규가 자신의 가방을 펼치고 설교 준비용 노트북을 꺼냈다. 양 권사가 그 모습을 보기 시작한 건 정오가 넘어선 점심시간 때였다. 점심을 차린 어머니의 부름에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아들이 주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문 너머의 풍경을 통해 확인했다. 그 순간 양 권사는 말없이 울었다. 식사 자리 내내 어머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민규는 그 전부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다는 것도 거짓말일 거라 믿었다. 단지 민규는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눈물, 유재환 목사의 말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한영호 장로의 당부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

늦은 오후, 석양이 지기 시작할 무렵 한영호가 민규의 집을 찾았다. 그는 민규가 담임목사직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행할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그가 갖고 온 서류들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 자세히 보실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확인해 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 무슨 서류입니까.

- 목사님은 현재 재판을 받고 계십니다. 이후 판결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나올 경우에도 목사직을 계속하실 수 있는지에 대한 교회법상의 검토 서류들입니다.

- 그렇군요.

- 그리고 … 서명하셔야 할 서류들도 몇 개 있습니다.

서명이 필요한 서류들을 한영호가 내밀었다. 공문서들의 제목이 다분히 종교적이라 그런지 민규를 당혹스럽게 했다.

- 목회직 지속 의무에 관한 서약서? 이게 뭡니까?

-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목사님은 이곳에 남아 계속해서 교회를 위해 목양해 주신다는 서약서입니다.

-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단 말입니까.

민규가 걱정스럽게 묻자 한영호가 약간 숨을 돌린 뒤 설명하듯 말했다.

- 우리 교회 … 지금 상황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미 교인들의 삼분지 이가 교회 출석을 꺼리고 있습니다.

- 그렇겠죠.

- 앞으로 이런 일들을 봉합하고 수습하는 데 있어 여러 고충이 있을 겁니다. 그 고충, 외면하지 말고 받아 주시길 간청드리는 의미에서 고안한 서약서입니다.

- …

- 교회가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마련한 것이니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한영호의 말을 들은 민규는 잠자코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러자 한영호가 또 다른 서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 이건 또 뭡니까.

- 목사님께는 정말 송구스럽지만 간절히 당부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서류입니다.

한영호가 내민 서약서의 제목은 생소했다. '설교 주제에 관한 상호 합의서'란 서류였다. 서류의 서명란에는 유재환과 정민규.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유재환은 자신의 이름에 이미 날인한 상태였다. 민규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한영호가 말을 이었다.

- 유재환 목사님의 뜻입니다. 받아 주셔야만 합니다. 그게 교회와 성도들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갈이라고 하셨습니다.

한영호의 말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느껴졌다. 범접하기 힘든 결기로 가득한 눈빛이 민규의 마음을 괜스레 어지럽게 했다. 민규가 물었다.

- 설교 주제라면 … ?

- 유 목사님은 목사님이 논문의 주제만으로 설교해 주시길 바라십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아브라함의 인신 제사 … ? 그 주제만으로요? 이유가 있습니까.

- 그분의 뜻을 저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알아서도 안 되고요.

- …

-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꼭 그 주제여야만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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