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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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환은 여전히 컨테이너 기도원에 남아 있었다.

한영호로부터 자신의 거취에 대해 전해 들은 민규는 곧바로 유재환이 있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그가 기도원에 있다는 기별을 듣자마자 기도원으로 달려왔다.

민규가 망설임 없이 유재환을 만난 이유는 그 자신에게 있어선 너무나 당연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온 민규를 마주 보고 선 유재환은 여느 때보다도 더 평온해 보였다. 표정 자체에 깊게 드리워진 안정감이 오히려 민규를 불안케 했다. 민규로서는 이 상황이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불확실함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 고생하셨어요. 정민규 목사.

유재환의 인사를 민규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으로 받았다. 그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의문을 쏟아 냈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제가 율주제일교회에 목사로 계속 있을 수 있는 거죠?

- 생각보다 급한 성격을 가졌나 봅니다. 벌써 구치소에서만 한 달 정도 계셨어요. 구치소 생활도 옥살이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유 목사님께서 교회로 돌아오시는 게 계획 아니었습니까.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유재환은 민규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규는 답답한 듯 말을 이었다.

- 전 더 이상 강대상에 오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 목사님은 의로운 일을 하신 겁니다. 이런 일을 겪고도 교회에 남아 있는 교우들 역시 의로운 목사님의 결단을 위해 기꺼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고요. 당당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세요. 그게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위해 해 주셔야 할 마지막 길입니다.

- 그럼 목사님은요? 듣기로는 심정적으로 이단 시비로부터 벗어나는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

민규는 순간 자신의 말을 들은 유재환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한차례 회오리치는 폭풍이 불어닥칠 때 다가오는 전운의 실감과도 같았다.

조용히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맞잡은 유재환이 민규의 질문에 답했다.

- 전 처음부터 세인들이 떠들어 대는 이단 판정에 관심도 없고 그것을 의식한 적도 없습니다. 절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니까요.

- 그럴수록 더더욱 교회로 돌아오셔야죠. 솔직히 지금 남은 교우분들, 모두 유목사님 당신의 설교와 가르침을 기다리는 분들이 아닙니까.

- 방금 전 말씀드렸죠. 절 심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라고요.

- 그게 … 무슨 말씀이십니까.

- 전 이미 하나님께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교우들의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십 몇 년 가까이 교우들을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채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타락'이란 말을 꺼낼 때의 유재환의 표정은 삽시간에 비탄과 참혹으로 뒤엉켰다. 그 낯빛을 지켜보는 민규조차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 악마는 김인철이란 이름의 뼛속까지 부패한 영혼을 지배하고는 교회를 수습할 수 없는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 목사님. 그렇다면 더욱 목사님이 나서 주셔서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셔야죠.

- 제가 지금 말씀드렸죠. 교회를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버리는 이 끔찍함을 막지 못한 게 바로 제 자신이라고요.

유재환의 목에서 핏대가 올랐다. 온몸 가득히 타락한 죄악, 그 불구덩이 속을 걸어가는 듯한 참혹함이 묻어 나와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말을 하며 스스로에게 치를 떠는 유재환은 어느 순간 민규와의 대화로부터 멀어졌다. 눈동자의 초점은 이미 어느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민규는 그 바라봄이 아마도 자신이 섬기는 신과의 고유한 소통일 것으로 생각했다.

- 난 지금 나에게 남은 하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참믿음의 바른 모습을 보여 지난날 교우들의 육체와 영혼 전체를 더럽힌 타락의 검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믿음의 길을 열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 그게 … 설교와 기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 각자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책임이요?

- 정민규 목사. 당신도 힘들겠지. 강대상 위에 설 때마다 당신이 범한 악행이 떠올라 견딜 수 없겠지. 당신은 김인철과 다른 유약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니 그 죄책감을 이겨 내기 힘들 거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민규는 유재환에게서 바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난 더 이상 그 죄책감을 갖고 강대상 위에 오를 수 없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유재환의 말이 민규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의 마음을 엄청난 정신적 힘으로 내리눌렀다.

- 하지만 정 목사.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권리를 누리는 게 아니라 구원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요. 죄의식과 수치심 탓에 교우들 앞에 나서기 죽기보다 힘들겠지만 당신의 책임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대상 위에 바로 올라서는 것이요. 그리고 선포하는 것이요. 아브라함의 믿음, 그 신의 명령을 어떻게든 준행하려는 인간의 발버둥이 고결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또 선포하는 것이요.

- 제가 선포자라면 … 그렇다면 목사님은 무엇입니까.

- 난 … 실천자요.

- 실천자?

- 말씀은 선포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요. 외치는 이가 있으면 그 외침을 실제로 준행하는 이가 있어야 하는 법, 난 내게 주어진 마지막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

- 그 길이 무엇입니까.

- 정녕 모르오?

절규의 가까운 유재환의 물음이 이어지자 민규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민규는 정말 몰랐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유재환. 그가 말한 마지막 믿음의 길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전혀 모른다는 표정을 지은 민규를 한참 동안 살핀 유재환이 이내 체념한 듯 표정을 바꾸었다. 절박한 동의를 구하는 표정에서 예전의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찬바람이 불어와 컨테이너 철문을 사납게 두드렸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유재환이 말을 이었다.

- 곧 알게 될 거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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