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 김명윤 옮김 / IVP 펴냄 / 240쪽 / 1만 3,000원

다원주의 시대. 기독교 신앙은 갈수록 사사화(privatization)되고 있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종교와 사회>(종로서적)에서 사사화를 현대사회 흐름 가운데 하나로 지적한 바 있다. 기독교 신앙이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면서,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더 분리주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기독교 핵심 진리인 사랑, 용서, 평화 등 주제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협소한 사회적 이슈(동성애, 낙태 등)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기독교가 기여해야 할 더 많은 영역이 있다(사실상 모든 영역이 하나님 통치 가운데 있다). 그런데도 기독교가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만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이려 노력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들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만 신앙을 도구화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광장에 선 기독교>(IVP) 1부에서 볼프는 '왜 인간은 개인의 신앙에만 집중하는가'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하나의 종교가 공공 생활에 침투하는 전체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종교를 공공 생활에서 배제하는 세속적인 입장 모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볼프는 기독교가 '예언자적 종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를 '기능 장애'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신앙이 사람들 삶과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볼프에게 귀한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예언자적 종교에 '상승'과 '회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승'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메시지를 받는 수용적 사건이다. 반면 '회귀'는 신적 메시지가 세상 가운데로 선포되는 것이다. 문제는 '상승'과 '회귀'가 심각한 기능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볼프는 '회귀'의 기능 장애로, 해야 할 것은 하지 않는 '나태'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는 '강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떠한 현상이든 그 상태를 정확한 용어로 '명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프를 통해 기독교인이 범하고 있는 죄의 모습에 분명하게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여겨 왔던 기독교인의 그릇된 행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힘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성경 속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극히 일부 모습인 정의로운 하나님 이미지만 받아들인다. 정작 십자가에 달린 예수, 겸손한 예수, 섬김의 예수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통찰을 얻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힘으로 지배하며 강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쉬운 방식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야 할 것이다.

사회현상은 복잡다단하다. 그 가운데 대처하는 우리 행동 양식도 매우 다양하다.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주어진 과제가 시대의 흐름에 비판 없이 대처하여 전적으로 문화를 수용하거나, 분리주의적으로 대처하여 사회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인은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사회에서 지혜롭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 중심에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적절한 참여를 모색하고 함께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볼프는 그런 점에서 어떻게 기독교인이 대안을 제시하고 거기에 참여할지 적실한 통찰을 주고 있다.

볼프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왜 우리가 공적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질문을 던진다. 많은 기독교인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힘겨워한다. 그들은 나름의 대안으로 세상과 분리되어 세상 문화를 적대시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는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기독교인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적당히 세상 문화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대체로 자유로운 신앙관을 가진 기독교인은 세상 문화에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하며,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참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최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탄핵 정국과 촛불 혁명 가운데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안을 실제로 보여 준 대한민국의 최근 상황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이런 상황 가운데서 다수 기독교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정작 기득권 입장을 대변했던 몇몇 지도자의 그릇된 행동을 통해 기독교인의 공적 참여에 대한 성경적 대안이 무엇인지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참된 기독교인은 어떤 방법을 제시해야 할까. 볼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곳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문화 가운데서, 그 문화를 조금씩 변혁하는 것이다.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가 <그리스도와 문화>(IVP)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 유형도 결국 시대의 흐름 가운데 어떻게 적절하게 문화에 대응할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대안은, 고정되고 불변하기보다 그 시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응답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프는 다원주의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 무엇인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이전에 신학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과 치열하게 배우고 알아 가려고 하는 자세를 엿보게 된다.

볼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면서도 종교와의 대화에 열린 태도일 것이다. 그는 종교인이 다른 종교의 경전에 대하여 '해석학적 호의'를 베풀고 서로 선물을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 간 대화 방식은 배타적인 태도를 버리고, 상호 이해하며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결국 볼프는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서 다원주의를 제안하면서, 공적 영역에서 세속 문화가 아닌 각 종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각 종교는 진리 문제를 일단 유보하고, 사랑과 관용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도 갈수록 종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볼프에게서,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며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기독교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내적으로 진리에 발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외적으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경의 마음으로 대화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문화와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타파해 이 세상을 연합과 상호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더욱 인정받고 강조되는 곳으로 변혁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모중현 /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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