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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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서 나온 민규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정은이었다.

오전 9시. 구치소 문이 열리자마자 열린 문으로 걸어 나오는 민규를 맞이한 김정은은 말없이 그를 안아 주었다. 민규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행동을 돌발적인 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자신을 안아 준 정은의 포옹에는 절박한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민규는 그녀와의 포옹, 그 따뜻함에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전달받았다. 자신을 직접 안아 주는 정은에게서 직접 전이된 희열이었다.

- 고마워요. 목사님.

김정은이 포옹을 풀고 자신을 부축할 때, 민규는 머리 위로 작렬하는 태양의 강렬함에 절로 고개를 들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빛이라 하기엔 지나칠 만큼 뜨겁고 선연했다. 정은은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망연히 지켜보는 민규에게 부러 벅찬 감격을 가라앉히지 않은 채로 말했다.

- 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생명의 빛이에요. 더 이상 찬란하게 빛날 수 없는 빛.

- 고생 많았소. 정민규 목사.

정은의 뒤에 서 있던 한영호 장로가 민규를 반겼다. 한 장로를 발견했을 때, 그때서야 민규는 비로소 멍한 상태를 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한영호 장로를 둘러싸고 수십 명에 달하는 율주제일교회 교우들이 민규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지 않은 규모였다. 그들의 감격과 희열에 사로잡힌 흥분감을 등에 업은 한영호가 이전과는 다른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소. 사악한 골리앗을 돌팔매 한 번으로 궤멸시킨 다윗의 영적 승리였단 말이요.

한영호의 말을 듣는 내내 민규는 자신을 바라보는 교우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들 중 이전 한영호와 함께 하던 기도 모임 식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율주시 토박이들이었고, 김인철의 그늘에서 생을 유지해 오던 범속한 사람들이었다. 민규는 그들의 표정에서 내내 억눌렸던 정신적 탄압으로부터 해방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명한 실감이 민규를 오히려 당혹스럽게 했다. 민규가 물었다.

- 제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거죠?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한영호가 바로 답했다.

- 교인들의 헌신적인 소명과 탄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

- 그리고?

- 오랫동안 이단 누명으로 고생하시던 유재환 목사님의 복권과 함께 신의 뜻이 이뤄진 것입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신의 뜻이라뇨.

민규는 한영호의 두 번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신의 뜻? 어떤 것이 신의 뜻이란 말인가?’ 한영호는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민규에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난제에 가까운 말을 던졌다. 그 말은 선고에 가까웠다.

- 유 목사님께서 정민규 목사, 당신을 용서하셨단 말입니다.

- 용서요? 절 그분이 용서하셨다고요? 뭘 용서하신단 말입니까?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오히려 난처한 표정을 짓는 민규에게 한영호는 더 자세한 설명을 잇고 싶어했다. 하지만 정은이 민규를 가로막고서 말했다.

- 오늘은 너무 피곤하실 것 같아요. 들어가셔서 쉬셔야겠어요.

'쉬어야 한다?' 그 말과 듣자마자 민규의 마음엔 돌연 막막한 마음이 생겼다. 불현듯 민규의 머릿속에서 구속 수사를 받기 전 어머니 집에 두고 왔던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떠올랐다. 이젠 그 가방이 민규의 전부가 되었다. 가방 한 개의 인생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어머니 집에 머무르는 것도 민규의 마음이 허락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시 목사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막막함이 민규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규의 막막함과 다르게 정은은 여전히 얼굴 가득 희열에 찬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 봉고차의 차문을 열었다.

- 타세요. 목사님. 모실게요.

- 어디로 간단 말이에요? 난 그냥 어머니 집으로 가겠어요.

그 말에 대해서는 한영호가 대신 답했다.

- 정 목사님이 가셔야 할 곳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 예? 어디로요?

- 이전에 유재환 목사님이 계셨던 사택입니다.

- 교회 옆에 있는 붉은 벽돌집 말입니까?

- 예.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낡긴 했지만 수도나 전기를 다시 손봤으니 지내시기 불편하진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말한 한영호가 자신과 같이 민규를 보러 나온 다른 장로 한 명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율주시에서 설비와 배관 일을 해오던 사찰 장로 같은 이였다. 한영호와 눈이 마주친 그가 말했다.

- 일단 지내시죠. 앞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사택으로 사용하시기에 불편함이 없게 하겠습니다.

- 잠깐만요. 잠깐만.

민규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의문을 풀기 전에는 계속해서 이 순간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영호를 잠시 멈춰 세운 민규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물었다.

- 제가 왜 그곳으로 들어갑니까? 전 범죄자예요. 신문 기사도 안 읽어 보셨어요?

민규의 질문에 대한 한영호의 답은 단호하고 그만큼 철저했다. 그 철저함 앞에서 민규는 다시 숨이 막혔다

- 유 목사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분이 절 용서해도 세상 법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구속 수사에서 벗어났어도 전 여전히 피의자이며, 악마의 악행에 참여한 파렴치한입니다. 교회 헌법도 절 인정해 주지 않을 거예요.

- 세상이 정한 법, 세상보다 못한 교단, 교회가 정해 놓은 쓰레기 같은 법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예?

- 좀 더 쉽게 말씀드릴까요? 유재환 목사님은 정 목사님이 율주제일교회를 맡아 주길 원하십니다.

- 저를요?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 마귀의 궤계를 자기희생을 통해 일소해 낸 결단,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가실 이유, 충분합니다. 더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요? 유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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