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치마 입고 힐을 신으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B가 그렇게 입으면 좀 그래 보여. B는 치마 입고 힐 신고 나오면 안 돼."

"이번에 제작할 프로그램 생각해서 올해 임신하면 힘들지 않겠어? 잘 생각해 봐."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C 기독교 방송국 간부가 직원에게 한 이야기다. C 방송국은 직원들을 '방송 선교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뉴스앤조이>가 6월 15일 만난 전직 C 방송국 직원들은 "방송국이 우리를 정말 선교사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선교사를 이런 식으로 대하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전직 방송 선교사 2명은 방송국에서 경험한 부당한 노동 때문에 기독교 단체와 조직 문화에 큰 회의감을 느낀다며 <뉴스앤조이>에 연락해 왔다. 이들은 "이 문제를 밖에 이야기하는 게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서 보니, 문제가 더 명확해 보였다. 우리는 방송 선교사라기보다 노동 착취의 대상이었고, 거대한 조직 속에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했던 약자였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성차별·성희롱·성추행까지
문제의식 없는 '기독교 방송사'

방송국에서는 성희롱도 일어났다.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내부 직원도 소수만 안다. 한 고위 간부가 여성 직원에게 "너에게 음란한 영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남자 몇 명이랑 자 봤나", "밤에 야한 생각이 들면 내게 전화해. 기도해 줄 테니"라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C 방송국에서 일했던 김진영 씨(가명)는 피해자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교계에서 성범죄 소식이 들려와도 자신이 일하는 방송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동료 직원이 이 일로 퇴사했을 때 상처가 컸어요. 기독교 방송국 간부가 이럴 수 있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퇴사한 직원은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제 교회도 못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심각한 일이었는데, 당시 아무런 항의도 못 하고 지나간 게 너무 미안하고 억울해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느껴졌던 탓이다. 같은 방송국에서 10년 넘게 일한 임진우 씨(가명)는 "C 기독교 방송국도 여느 기독교 단체처럼 교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직원들도 회사를 공동체라고 여기며 교회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있어도 방송 선교에 누가 될까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독교 방송국 내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일어났지만, 말할 수 없는 분위기 탓에 공론화되지 못했다.

실제 성추행으로 의심되는 행동이 일어나도 말하기 쉽지 않다. 임 씨는 회사에서 한 남성 직원이 스치듯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을 경험했다. 불쾌했지만 '어깨를 치려다가 실수로 스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출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다시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두 번은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당시 출연자들과 같이 있어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못했어요.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문제 제기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직원을 만나면 방어적으로 팔짱을 끼게 되더군요. 무의식적으로 저를 보호하게 된 것이지요. 따지는 것보다 같은 일을 다시 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성차별도 버젓이 일어났다. 여성 직원들이 잇달아 결혼하자 간부 회의가 열렸다. 여성 직원들의 결혼에 따른 제작 위기를 안건으로 다뤘다. 김 씨는 "남성 직원의 결혼과 출산을 회사의 위기로 여기고 회의를 한 적은 없었다. 이후, 여성 직원들은 출산을 미루라는 압박을 계속 받았다. 이런 사고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 아닐까 많이 의심했다"고 말했다.

기독교 방송국은
공동체인가, 회사인가

C 방송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건 여성만이 아니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모든 직원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특히 '헌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특성이 노동 문화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제시간에 퇴근해도 눈치를 봐야 했고, 야근하면서도 고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임진우 씨는 방송국이 성장하면서 노동문제가 불거졌지만, 회사 규모가 작을 때보다도 직원들은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동체라고 말하는 회사보다 법과 제도가 직원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C 방송국도 다르지 않아요. 수년 전, 연차 제도가 생긴 과정만 봐도 그래요. 노동부 권고가 컸어요. 야근 수당도 없고, 연차 제도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노동부가 알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렇게 연차가 갑자기 생겼지만, 사용에 제한이 많았어요. 노동부 권고로 연차 제도가 생겼을 때도 회사가 마치 시혜하는 것처럼 말했어요.

회사가 크지 않았을 때는 아마 이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은 실수나 좋은 내용이 나오지 못해도 감싸 주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실력이 부족해도 인격적이고 소통이 되는 사람은 계속 함께 갈 수 있었고요. 교회 같은 분위기, 공동체 느낌이 많았어요.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이곳이 회사인지 기독교 공동체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졌어요. 직급에 따라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줄 서는 분위기도 강해졌거든요."

기독교 방송국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신앙 활동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매일 진행하는 직원 예배가 있다. 김진영 씨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좋지만, 예배 참석이 강요되고 인사에 반영될 때는 이미 예배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방송국 특성상 밤늦게 퇴근하는 직원이 많다.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예배에 빠지면 인사고과에 반영되니 참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다.

회사에서의 순종은
'상사 비위 맞추기'?

'순종'도 강요되기 일쑤다. 부당한 대우와 작업 지시에도 순종해야 한다. 표면상 대화하는 통로가 열려 있기는 하다. 부서 회의도 많이 열리고, 간부들 회의도 잦다. 건의 사항을 받는 함도 설치해 회사에 불만 사항을 무기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분위기다. 회의에서 방송국 편집 방향에 맞추기 위해 논의되는 내용도 많지만, 임원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 걸러지는 내용도 많다. 불만 사항을 보고하고 건의해도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니 말할 기운이 나지 않는 것이다. 불의하거나 직원이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가 내려와도 모두 '순종하라'는 말로 종결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임 씨는 회사에 잘못된 사안을 두고 계속 항의했다. 회사가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 내부 단계를 밟아 이야기했다. 직원의 항의에 한 고위 간부는 "상사 비위를 잘 맞춰 주라"고 따뜻하게 충고했다. 이 이야기에 임 씨는 절망했다.

"개인 관계의 갈등이었다면 극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업무적인 문제 발생에도 방치된다는 것은 결국 조직의 뜻과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였죠. 그걸 깨달은 순간 미련 없이 퇴사를 결정했어요. 맞서 싸울 힘조차 다 잃었을 때 죽기 싫어서 살려고 나왔어요. 회사는 일관되게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했어요. 한 임원과의 상담 중에 어떤 것이 순종인지 알려 달라고 물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상사 기분을 맞춰 주라는 답변을 들었죠. 아마 본인은 기억도 못 할 거예요."

방송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했던 방송국에서 퇴사한 이들은 아직도 회사에서 힘들어할 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회사에서는 은혜로 살고 있다는 듯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억울한 업무 지시를 받아도 웃어야 한다. 뒤돌아서서 힘들어하며 하나님과 멀어질 이들이 안타깝다. 많은 기독교 직장인이 보이는 모습이겠지만, 방송 선교사를 내세우는 기독교 방송국 직원들이 같은 일을 겪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신앙생활 초기, 선교와 사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기독교 방송국에 들어갔어요. 방송국은 시간이 갈수록 직원 모두를 선교사로 치장하고 싶어 했어요. 물론 그중엔 진짜도 있을 거예요. 없던 마음이 생겨난 사람도 있을 거고요. 동료 중에 선교사가 나온다는 것은 기쁨이고 영광스러운 일이죠. 중요한 것은 자원하느냐 강요받느냐 문제라고 생각해요.

세상처럼 돈과 권력이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를 바꿔야 해요. 촛불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걸 보며 퇴사한 회사를 많이 생각했어요.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바뀌기 어렵지 않을까요. 잘못된 체제와 지도자의 불의함에 계속 발맞춰 간다면 더는 피해자가 아니라 부역자라고 알려 주고 싶어요. 불의함에 맞서 다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변하지 않겠지요. 힘든 과정을 겪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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