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연말 종교계 인사 15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역사상 처음이라는 종교계 인사만을 대상으로 실시된 훈장 수여식장은 수많은 인파로 마치 시장을 방불케 했다.

수상자만도 15명이나 되는 데다 모란장을 수여 받는 모 개신교 인사가 교회 버스로 교인들을 잔뜩 대동시켜 혼잡을 가중시켰다. 정부의 훈장 수여식장에서 이처럼 북새통이 벌어진 것도 아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목사가 훈장을 받는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교인들을 참석시킨 것을 반드시 나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목사가 훈장이 개인만이 아닌 교회와 교인 전체의 영예로 생각해 수상식장에 교인들을 동원할 정도의 의식수준에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훈장 수여식장의 분위기가 떠들썩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 포함된 국민훈장을 종교계 인사들에게 수여하면서 내세운 명분과 기준이 과연 타당했는지 여부이다.

일단 무궁화장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만신 대표회장과 조계종 서정대 총무원장에게 돌아갔다. 15명 중 최고 훈장을 받은 이 두 사람은 기독교와 불교계를 대표하는 주요 기관 대표이며 7대 종단 협의체인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의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한기총과 더불어 기독교계의 양대 연합기관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김동완 목사도 세 번째 서열의 훈장인 동백장을 받았다. 원불교의 경우 광주교구 교구장, 서울사무소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교정원장이라는 최고위직에 오른 조정근씨에게 2급 모란장이 돌아갔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종단 내 영향력과 직위가 훈장 서훈자 선정의 가장 큰 기준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정부의 가장 권위 있는 훈장이 특정 직위에 있는 종교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여된다면 종교 본래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정종유착'의 한 도구로 전락될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대선과 총선이 실시되는 2002년을 코앞에 두고 정부가 종교계 유력 인사들에게 선심을 베풀고,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노린다는 오해까지 불러올 소지를 안고 있다.

또 훈장 수여 주무기관인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서훈을 시작으로 종교계 인사에 대한 포상이 매년 정례화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광부는 종교인 포상 확대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지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선정기준의 과감한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원래 정부 의도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도 있다.

즉 현재와 같은 서훈자 선정은 향후 한기총 대표회장과 조계종 총무원장, KNCC 총무, 원불교 교정원장 등 각 종단 핵심 직위에 오른 종교계 인사들이 1급 무궁화장 아니면 적어도 3급 동백장을 받는 관행을 정착시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가 서훈자들의 실제 공적은 중요하게 감안했겠지만 각 종단의 주요 직책이 핵심적인 선정 기준이었다면, 내년 대선과 총선 등을 겨냥한 정치권의 '신심 끌어안기'라는 비판과 각 종단 내부적으로 훈장을 받는 직책을 둘러싼 과열 경쟁을 부채질한다는 손가락질까지 받을 수도 있다.

이번 훈장 수여식장의 마치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는 어쩌면 종교계 인사 대상 훈장 수여라는 명분 속에 국가 최고 훈장의 권위를 상실한 얄팍한 선정기준이 초래한 필연적인 촌극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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