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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보다 먼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 연 약사
[인터뷰] 비온뒤숲속약국 장영옥 씨 "공정한 세상 만들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7.06.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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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장영옥 씨는 새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최저임금 1만 원을 도입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약국 직원을 구합니다. 시급은 1만 원으로 하려 합니다. 같이 일해 보실래요?"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만 4,000여 명이 가입해 있는 페이스북 '망원동좋아요' 게시판에 구인 광고가 올라왔다. 최저임금 6,470원 시대에 시급 1만 원은 파격적인 제안이다. 글이 올라간 6월 3일 "같이 일하고 싶다", "지원해 보고 싶다", "꿈의 직장이다", "응원한다"는 등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글을 올린 이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17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장영옥 약사(비온뒤숲속약국). 구인 광고가 나간 뒤 20여 명이 지원서를 냈다. 장 씨는 약속대로 6월 13일 직원을 채용했다. 직원은 3개월 수습 과정을 거친 뒤 9월부터 시급 1만 원을 받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보다 앞서 개인 사업자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6월 14일 장영옥 약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망원동서 17년째 약국 운영
새 정부에 힘 싣기 위해 시급 1만 원
세월호 참사에 정신 '번쩍'

장 씨가 약국을 찾는 손님과 대화 도중 활짝 웃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약국은 망원우체국 바로 옆에 있다. 대로변에 있어 찾기 쉬웠다. 자동문을 통과하고 약국에 들어서자 셀 수 없는 약과 보조 식품 박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약품 냄새 대신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쾌적하고 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장 씨는 약국을 찾은 20대 손님에게 복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거는 항생제, 이거는 소염제, 요거는 진통제예요. 진통이 해소되면 진통제는 빼고 드세요. 따뜻한 물로 복용하고요. 신OO 군은 92년 7월생이네요? 우리 아들은 92년 11월인데. 우리 아들도 예쁜데 OO 군도 예쁘네요.(웃음) 잘 가요."

손님은 웃는 얼굴로 약국을 벗어났다. 기자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장 씨가 웃는 얼굴로 맞았다. 그는 처음 <뉴스앤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보수적인 매체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엔조이'(enjoy)가 좀 그렇잖아요. 오른쪽으로 쏠린 데서 쓰는 단어잖아요." 약사도 웃고 기자도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구인 광고를 올린 뒤 여기저기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뷰하느라 업무 집중도 안 되고, 피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취재에 성실히 응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는 명백히 시민의 힘으로 세워졌잖아요. 민주당이 잘해서 승리한 게 아니고요. 시민 힘으로 전 정권을 무너뜨렸는데 너무 자랑스럽죠.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힘없는 민중이 나서서 나라를 지키고 바로 세웠어요. 힘을 모아 새 정부를 세웠으니, 잘 개혁해 나갈 수 있게 도와줘야죠. 관전이나 평가만 해서는 안 돼요. 저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새 정부가 내건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하기로 했어요."

'힘없는 민중'이라고 말할 때 장 씨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촛불 혁명'의 감동은 지금도 계속되는 듯했다. 지난해 탄핵 정국 당시 장 씨는 남편과 틈틈이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자식에게, 미래의 세대에게 부정부패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장 씨는 대학생 때 누구 못지않게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바 있다. '서울의 봄'이 시작된 1979년 10월부터 1987년 6월 항쟁 때까지 군사정권에 맞서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엄혹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세상은 점점 좋아지는 듯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차례로 들어섰을 때 장 씨는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가정과 직장에 헌신했다. 한 사람의 부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바지런히 살았다. 대학생 때처럼 '세상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이 잘 굴러가는 줄 알았다. 그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이건 정말 아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가 그래도 기본은 지키며 굴러가는 줄 알았어요. '내가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었어요. '내가 사회문제에 눈을 감고 있어서 저 아이들을 다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사진 제공 알바노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고민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탄핵 정국 때는 촛불을 들었고, 새 정부와 사회를 위해 앞장서 최저임금 1만 원을 도입했다. 벌이가 좋은 약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편의점이나 평범한 카페였다면 어땠을까. 장 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옛날과 달리 약국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17년 전 수입과 현재 수입이 같다면 믿으시겠어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동네에 약국은 4개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12개로 늘었어요. 지금은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상비약 등을 구입할 수 있어요. 임대료, 세금, 인건비도 계속 오르고 있고요. 아무리 약국이라고 해도 시급 1만 원을 주고 직원을 고용하는 건 적잖은 부담이에요. 물론 동네 편의점이나 식당, 작은 카페보다는 상황이 낫겠지만요.

직원 임금 문제는 지금까지 저를 계속 불편하게 해 왔어요. 직원의 저임금이 곧 제 수입과 직결됐으니까요. 저임금을 주고 제 수입을 올리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어요. 직원 임금을 올릴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웠어요. 적자가 날 때도 있다 보니, 한편으로 시급 1만 원은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제도를 도입하면 자영업자 중 과연 몇 %나 버틸 수 있을까', '대안이 있는가'라는 의문도 들었고요.

그런데 탄핵 집회 때 김제동 씨가 한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어요. 시급 1만 원을 못 주는 영세 자영업자를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는 이야기였어요.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내고, 적게 내는 사람은 적게 내고 지원해 주자는 취지였어요. 이 시스템이 확장되면 극심한 소득 불균형과 불평등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내수가 살면 사람들의 심리도 안정적으로 변하고, 흉악한 범죄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요. 기울어진 땅을 바로잡는 게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믿어요.

아직 어딘가에 예전의 저처럼 불안한 생각을 가진 고용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단계적으로라도 임금 1만 원을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 안에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반응과 함께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새로운 장이 펼쳐질 거라고 믿어요."

장 씨는 최저임금 인상 외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카드 안 쓰기 운동'을 제안했다. 영세 사업자들 경우 카드 수수료로 적잖은 돈이 빠져 나간다. 장 씨는 1만 원 이하는 현금으로 결제하고, 장기적으로 카드 수수료를 낮춘다면 자영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임대료, 권리금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가 현실 문제에 더 신경 썼으면
은퇴 이후 사회 위해 헌신할 것"

장 씨는 65세 이후 은퇴할 생각이다. 은퇴 후에는 남편과 함께 사회운동을 할 생각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장영옥 씨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느껴졌다. 장 씨는 15년 전 친구를 따라 온누리교회에 다닌 적 있다. 예배를 드리던 중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은 예배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나왔다. 장 씨는 당시 하용조 목사가 다가와서 위로해 준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따금씩 남편이 교회에 가자고 권유하지만, 장 씨는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운영하는 약국 때문이다. 일요일에도 평균 150~200명이 약국을 찾는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일요일에도 약국을 찾는 아픈 사람을 외면할 수 없다.

"예전에는 여유가 있어서 약사를 따로 뒀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해요. 과거와 수입이 같으니까 일요일에도 문을 열 수밖에 없어요. 노동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휴식 시간도 필요해요. 일요일 아침에 정갈하게 단장하고 교회에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은혜를 받으려면 부지런해야 되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웃음)"

비록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장 씨는 예수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저는 예수님을 가장 존경해요.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민중과 함께하셨으니까요.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구원받게 해 주셨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을 주셨으니, 우리가 힘을 합쳐서 이 사회를 더 아름답게 살기 좋게 가꾼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현실 문제에 교회가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 교회 입장에서 우리는 다 형제자매이고,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공평과 정의가 흐르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목사님들도 똑같이 세금 내야 한다고 봐요.(웃음)"

장영옥 씨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65세 은퇴 이후 사회를 위해 헌신할 생각이다.

"촛불 집회를 마치고 어느 날 남편과 집에 가서 '민들레처럼', '광야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30년도 더 된 세월을 지나 이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우리는 그동안 잘 살아 왔으니까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사회운동을 하자고 약속했어요. 환경이든, 빈민이든, 아직 방향이 정해진 건 아닌데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비온뒤숲속약국 이름에는 '소생', '생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비가 온 뒤 숲속에 가면 만물이 소생하는 듯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장 씨는 아픈 사람이 약국에 잠깐 왔다 가더라도 생명력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약국 이름을 '비온뒤숲속'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약국을 나섰을 때 비 온 뒤 숲속에 있는 것 같은 개운함이 밀려왔다.

장 씨가 제조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자가 약국을 찾았을 때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루 평균 150~200명이 약국을 찾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비온뒤숲속약국.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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