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시대

우리는 2008년 말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실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 경제 위기로 큰 혼란을 겪었던 바가 있다. 특히 도덕성보다는 경제 제일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최고 지도자를 선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로서는 더욱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세계가 맞고 있는 경제 위기의 원인은, 미국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부적인 모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무한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최고의 효율성의 추구, 그리고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통한 무한한 부의 축적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전거 타기'처럼 끝없이 앞을 향하여 달려 나가야만 하고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되는 내부적 모순을 가지게 된다. 파생 상품 등 일반인, 아니 전문가조차 제대로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금융 상품의 등장은 이러한 '자전거 타기'의 구체적인 행위의 결과로 보아도 무리 없을 것이다. 결국 내부 모순의 확대재생산의 결과로 폭발한 것이 경제·금융 위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경제 위기의 원인 분석 중 목회 현장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이번 금융 위기의 배후에 '탐욕'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금융 위기의 주범이 인간의 탐욕임을 지적하고 있다. 탐욕! 그것은 신학적 주제이며 목회의 주제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경제·금융 위기를 경제학자의 몫으로 남겨 두고 우리는 목회에만 전념하자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필연적으로 경제에 대하여 성경적·신학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경제는 목회의 중요한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경제·금융의 위기 한복판에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욕망을 기반으로 하는 삶'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욕망으로 미쳐 돌아가는 삶 속에서 오늘날 기독교는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의 메시지는 욕망을 극복하는 소리가 되고 있는가? 

자본주의의 종교화
종교의 자본주의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종교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고 나아가서는 물신숭배에 대한 비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자본주의는 하나의 종교라고 말한다. 브라질의 한국계 해방신학자 성정모는 그의 저서 <욕망, 시장 그리고 종교>(홍인식 역, 서해문집, 2015)에서 욕망의 시장화와 시장이 어떻게 종교현상으로 발전하게 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성정모는 자본주의가 '내생적 신학'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본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낙원에 대한 약속, 원죄의 개념 혹은 세상에서 고통과 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설명,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길, 치러야 할 대가(필요한 희생) 등이 그것이다. 

비록 이러한 주제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변호하는 자들에 의해 전통적인 종교 용어로는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성정모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신화적・종교적 형식으로 취급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욕망, 시장 그리고 종교> 24~4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독교, 특히 미국교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한국교회와 신자유주의 경제가 조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석사학위 논문,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형 교회의 변화'(이은영, 2007년, 미발행)는 신자유주의와 조우하고 있는 한국교회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은영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신자유주의적 담론의 기독교적 적용(성공주의, CEO model)을 통한 소비자 친화적 교회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적 설교와 담론의 성행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인다고 말한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체제만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창조의 목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쉽게 말하면 시장이 지배하는 사회)를 거부하거나 혹은 비판 그리고 대안적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불경한 행위로 간주된다. 시장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 체제는 신성불가침의 신적인 영역으로 승격된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성역화, 신성화 그리고 종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시장)를 떠난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과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자본주의적인 성공을 이룬 교회가 아닌가?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상업화,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그 영향

오늘의 자본주의의 철저한 신봉자며 옹호자로서의 교회는 목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한마디로 '신앙의 상업화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신앙(하나님)은 이제 시장이라는 현장에 나온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오래 전에 피터 버거(Peter Burger)가 예견했듯이 종교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여러 상품 중 하나이다. 그러면 신앙의 상업화(상품화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으로 인한 목회 현장의 변화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보겠다. 

1. CC RELATIONSHIP: CEO-CLIENT

목회자와 교인 간 관계 변화이다.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목자-양의 관계가 아니다. 최고경영자(CEO)와 고객(Client)의 관계로 변질된다. 최고경영자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고객 관리를 위한 모든 방법과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고객들이 편리하고 손쉽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고객들에게 상품을 팔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자연스럽게 종교 시장에서 도태되어질 수밖에 없다. CEO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오직 고객 관리와 상품 판매량의 증가이다. 

2. CC MISSION: CONSUMER-CENTERED-MISSION

선교와 목회 본질의 변화이다. 선교와 목회는 소비자 중심으로 변질된다. 설교는 더 이상 선포가 아니다. 설교는 설득이다. 고객의 취향을 중심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수단이다. 메시지(Message)에서 마사지(Massage)로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위에 언급한 논문에서 이은영은 한국교회의 설교는 첫째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자본주 옹호', 둘째로 '개인의 성공을 위한 자기 점검과 관리 독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직한 개인과 행복한 가정에서 비롯되는 건강한 사회 강조'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모든 목회의 프로그램과 이벤트도 소비자 중심으로 기획되고 실행된다. 소비자의 취향과 흥미를 끌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가차 없이 폐기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수없이 발생했다 사라지는 많은 목회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는 이 같은 소비자 중심의 선교와 목회에서 비롯되고 있다. 성경과 하나님나라 가치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패러다임은 오늘날 목회와 선교 현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3. NPBU: NOT PRODUCER BUT CONSUMER

신앙의 생산자가 아닌 단순한 소비자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오늘의 사회에서 유일한 가치는 무엇인가? 개인적 쾌락주의(Individual Hedonism)이다. 유일한 윤리적 가치는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신앙의 상업화 현상은 신앙의 쾌락주의를 이끌어 내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산자가 아닌 종교의 소비자가 되어 가도록 만든다. 더 이상 종교적 가치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할 이유는 사라진다. 

우리는 오직 나의 욕망과 만족을 위한 종교를 요구하고 있다. 대형 교회에 집중되는 교인 증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시설과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 대형 교회에서 종교의 소비자로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소비적 종교는 우리가 신앙을 혼합적, 주관적, 개인적 그리고 영적 괘락주의의 측면에서 추구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을 참조하라. 종교의 자본주의화와 자본주의의 종교화가 건축양식에서 어떻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비교해 보라. 위쪽의 사진은 성전이고 아래의 사진은 쇼핑몰이다.

종교적 mall의 형성

이러한 신앙의 상업화는 교회로 하여금 성공 지향적 구조를 지향하게 만들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업 경영 원리의 도입, 결과 중심의 실용주의를 도입해 성경적 가치를 유보하거나 무시하게 함으로써 세속의 길을 걷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현상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종교의 자본주의화는 결국에는 종교적 중심지(mall)의 형성이다. 영적인 필요성을 한 번에 충족해 줄 수 있는 종교적 중심지를 모색한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종교적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mall 형식의 대형 교회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는 전통적인 시장의 모습이 아니라 mall 형식의 교회를 선호하게 된다. 전통적 시장이 관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mall 형식의 교회는 소비적 필요의 충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점차 성전은 쇼핑몰의 형태를 갖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쇼핑몰은 성전의 모습을 갖게 됨으로써 종교의 자본주의화와 자본주의의 종교화는 완성되어진다. (위 그림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 상업적 종교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교회의 신학은 번영의 신학과 위로의 신학 일명 웰빙(Well-Being) 신학이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가 오직 하나님만을 신앙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자본주의 종교의 우상인 시장을 더 신앙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마치 물질의 번영이 하나님나라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양 선전하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자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자본주의를 벗어나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나라를 핵심적인 가치로 삼아야 한다. 교회의 해방은 이처럼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진정한 교회의 해방은 맘몬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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