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유영 기자]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한국교회 교인들의 탈교회 현상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기독교인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런데 탈교회가 과연 '평신도'라고 불리는 존재들만의 일일까. 탈교회 '목사'는 없을까.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사는 화륜 목사(민들레대안교회)는 2004년, 탈교회를 선택했다. 속했던 교단을 떠나 적을 두지 않는 기독교인으로 살기로 했다.

"가끔 전병욱·김삼환·오정현 목사 기사를 보면 비판적인 댓글이 달린다. 그중 이들을 감싸는 목사도 있고, 같은 목회자로서 부끄럽지 않느냐고 묻는 댓글도 있다. 내가 있던 그리스도의교회 교단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같은 목회자로 한 지붕(교단) 아래에 사는 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로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을 그냥 두고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을까. 교단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소극적인 저항 방법을 선택했다. 교단을 탈퇴하고 목회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행동으로 항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복합적인 개인 사정도 있던 시기여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화륜 목사는 교회를 떠나 현재 지내는 깊은 시골로 들어왔다. 평범한 교인으로 지내며 교회에서 봉사했지만,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재정 문제 등을 보며 다시 가나안 성도가 되었다. 작은 시골집에서 아내와 목공예를 시작했다. 세월호 나무 십자가를 직접 만들어 세월호 가족들에게 보냈다. 세월호 나무 십자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졌다. 최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성소수자를 위한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매일 초를 켜고 기도하고 있다.

'민들레대안교회'를 만들어 목회도 다시 시작했다. 여러 이유로 탈교회를 한 가나안 교인을 위한 예배 자리를 화륜 목사의 시골집에 마련했다. 사람이 드문 시골이라도 교회에 상처받아 고통스러워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가끔씩 도시에서 가나안 성도가 찾아오기도 한다.

가문 땅을 촉촉이 적신 초여름 비가 내리던 6월 7일, 천안시 병천면에 있는 민들레대안교회에서 화륜 목사를 만났다. 탈교회 목회자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대안 교회를 왜 시작했는지, 탈교회 시대 교회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들어 보았다. 다음은 화륜 목사와의 일문일답.

민들레대안교회 화륜 목사. 뉴스앤조이 유영

- 탈교회 목사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더는 교단에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교단 내에 목사로 인정할 수 없는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대립했다. 말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할 수 없지만, 그들과 한 지붕에서 같은 목사로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이야기해서 바뀔 수 있는 시기도 넘겼다. 다른 사람들이 눈감고 넘어가기로 했다고 해서 나조차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끝까지 반대하는 의미로, 교단을 떠나고 목회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

같은 시기 교회를 세습하라는 유혹도 있었다. 막내 삼촌이 지방에서 규모가 있는 감리교회 담임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그리스도의교회에서 안수받은 목회자였는데, 막내 삼촌이 감리교회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세습에 반대하는 입장을 많이 밝혔는데, 삼촌은 막무가내였다.

딸밖에 없어 조카에게 교회를 물려줄 수밖에 없다던 막내 삼촌에게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보며 목회의 꿈을 키운 목회자를 청빙하라"고 말했다. 삼촌이 더는 세습을 꿈꾸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어 아예 교단을 떠났다. 세습할 수 있는 사람이 세습을 반대해야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던 시기,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 그 성장의 혜택을 많이 본 나와 같은 60년대생 목회자가 많이 세습했다. 그 당시 부모 세대 목회자와 자녀 세대 목회자가 가진 인식이 잘 함축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본명 대신 화륜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화륜'(華輪)은 아는 종교인에게 받은 호다. 세상의 밝은 이치라는 의미인데, 나는 예수의 이치를 밝힌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본명 대신 사용하는 이유는 가족을 떠나면서 이름을 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의절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실 막내 삼촌에게서만 떠난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의 가족들과도 모두 인연을 끊었다.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다. 실제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셨다. 그러다 보니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를 비롯해 8남매는 가난이 싫어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대한민국 상위 2%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작은아버지가 대한민국 굴지의 그룹 사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에 많이 앉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지만, 한국에 들어와 그룹 광고 기획사에 들어가 일해야 했다. 당시 광고 기획사는 그룹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이기도 했다. 목회와 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일에 혐오감을 느꼈다. 제대로 목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작은아버지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때 가족과 자본에서 연을 끊고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떠난 뒤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그렇게 본명도 버렸다.

화륜 목사는 손으로 잡고 기도할 수 있는 세월호 십자가도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유영

탈교회 현상 걱정하는
한국교회,
불교 사찰에서 배워야

- '대안 교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시골이라고 해서 교회와 성경을 배우는 일에 목마른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교회에 상처받은 사람도 많다. 내가 이전에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성경 공부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예배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 집 거실이나 교인 집에서 몇 사람이 예배하는 정도다.

우리 교회는 흔히 말하는 공식적인 교인이 없다. 기존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머물다 간다. 이런 교인들과 공감하고, 이야기 나눈다. 그렇게 몇 년 정도 예배하다가 치유되면 다시 이전 교회로 돌려보낸다.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교제하고, 다니기 편한 곳에 있는 자기 교회로 돌아가는 게 신앙생활하기도 좋지 않겠나. 굳이 이 먼 곳까지 계속 오지 말라고 한다.

'암자'와 같은 교회가 되는 게 목표다. 탈교회 교인이 신앙을 버린 건 아니다. 다만 교회에 실망해 교회를 떠났을 뿐이다. 오갈 곳 없이 떠도는 탈교회 교인들이 힘들 때 잠시 찾을 수 있는 교회라는 의미에서 대안이라는 의미이다.

- 예배는 어떤 식으로 하는가.

예배는 성공회 전례로 진행한다. 병천면에는 2009년 내려왔는데, 성공회 교회 교인으로 지냈다. 성공회 전례에 크게 감동했다.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모든 전례를 버리고 나왔다. 버린 전례에는 기독교 정체성을 찾을 만한 기독교의 신비도 담겼는데 아쉬운 일이다. 기독교는 책으로 공부해서 알기만 하면 되는 종교가 아니다. 전례를 통해 경험하는 신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배 시간이 자유롭다. 예배 시간을 정해 두고 교인들에게 시간에 맞춰 나오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교회가 정해 둔 시간에 맞춰 일방적으로 교인들이 나오도록 하는 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교인들과 연락해 가장 많이 모이기 편한 시간에 모인다. 농사로 바쁜 시기에는 교인들 집으로 찾아가 예배한다. 무엇보다 교인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민들레 대안교회로 모이는 화륜 목사의 시골집. 뉴스앤조이 유영

- 한국교회가 교인들의 탈교회 현상에 대처할 수 있을까.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교회가 사찰에서 답을 찾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불교가 잘나가던 고려 시대, 사찰들은 한국교회와 다름없었다. 도시에 큰 사찰이 건축됐고, 정치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모두 쫓겨 산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사람들은 절이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불교는 가장 많은 사람이 속했다고 말하는 종교 중 하나다. 불자들은 기독교인처럼 매주 사찰을 찾지 않는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한다. 그런데도 불교는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불교가 윤리적으로 옳다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다. 불교는 사찰과 불자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무슨 힘이 있어서 신도와 사찰의 관계가 끈끈할까.

한국교회는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많지만, 대부분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이들은 교회에 실망해 떠났을 뿐이다.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탈교회 교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결국 종교인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찰 재정을 유지하는 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가지 않아도 중이 대신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해 준다. 어쩌다 가 보면 부탁한 그 시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교회는 목사나 지도자들이 기도하겠다고 말하고 정말 기도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매주 만나지만, 목회자와 교인이 대면해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다. 주중에 교회를 찾아도 목사를 만나기 어렵다. 대형 교회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방법론적으로 대안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불교에서 답을 찾으라고 하면 불경하게 여기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겠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불교만큼 한국 사람을 이해하고 있는 종교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 정서가 어떠한지, 무엇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는 말이다. 그리고 불교는 한국교회의 장점을 이미 다 흡수했다. 주일학교와 비슷한 불경 학교를 연다. 선교원, 선교센터 역할을 하는 포교원을 운영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불교라고 하면 그저 멀리하기 바쁘다. 교회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리고 가는 데 무엇이 장애가 되는지 살펴야 한다. 다른 종교에서라도 배울 건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자발적 가난으로
탐욕스런 자본주의에
비협조하는 삶

-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나무 십자가로 알려졌다. 목공을 시작한 이유와 세월호 십자가를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목공은 병천면에 오면서 시작했다. 목공예를 하는 목회자를 만났는데, 그분이 생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배워 보라고 해서 목공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었다. 물론 목공예나 목공예를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작업하고 후원을 받기는 한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십자가를 깎은 건 아니다. 지난해 초반까지는 가슴 아프게 지켜만 보았다. 그런데 이해할 없는 정치 문제로 변하면서 해결이 늦어졌고, 사람들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다.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무언가 동참하고 싶었다. 그래서 희생자 304명과 김관홍 잠수사 이름을 새겨 세월호 십자가 305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20개를 만들어 개당 1만 5,000원에 판매했다. 30만 원이면 세월호 십자가 305개를 만들 목재와 실톱을 구입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십자가를 판매하는 취지를 알리는 글을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이 후원금으로 돈을 조금 더 보냈다. 12개를 판매했을 때 30만 원을 채웠다. 이익을 낼 생각이 없었기에 거기서 판매를 멈췄다. 추가 주문하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세월호 십자가를 만드는 행위는 천도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실제 불교나 무속인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몇 차례 천도재를 했다. 그에 비하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갔다"는 말로, 시쳇말로 '퉁 치는' 느낌이었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땅한 형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회는 별세자 예배가 있다. 기도할 때는 향도 켜고, 물건도 만들어 놓는다. 세월호 십자가는 별세자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한다.

세월호 십자가(위)와 성소수자를 위한 십자가(아래 왼쪽),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십자가(아래 오른쪽). 뉴스앤조이 유영

- 세월호 십자가 외에 다른 것도 만드는가.

올해부터는 성소수자를 위한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매일 초를 켜고 성소수자를 위해 기도한다. 슬픈 죽음이 더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십자가에 나비 모양을 새겨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십자가도 만들었다. 할머니들을 위해서도 매일 기도한다.

-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한 달 65만 원 정도로 살아간다. 지역 주민 부모들 부탁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시골에는 학원에 가기 쉽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왕따를 당해 학창 생활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아이도 많다. 심한 왕따로 힘들어하던 한 아이를 가르쳤는데, 공부하기 싫다고 했다.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성적이 올라서 괴롭히는 아이들이 갈 수 없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며칠 지나니, 내 말이 옳다면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성적 오르는 법보다는 인생을 살면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게 목표다.

-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발적 가난으로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비협조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저항이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며 40일 금식한 이야기를 많이 생각한다. 떡과 재산, 권력을 거부했다. 가난하게 살겠다는 선언에서 예수의 정신이 출발했다. 그런데 우리는 뭘 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는 거부하고 버렸는데, 기독교인들은 달라고 한다. 예수를 따른다면 하나님이 준다고 해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삶의 목표가 있다면.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내 것 네 것 없이 살고,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사람들과 살아가면 좋겠다. 소극적인 저항, 자본주의에 조력하지 않는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꿈꾼다. 여럿이 목회하고, 무엇이든 모두 대화로 결정하며 살기를 바란다.

시골집 마당 구석에 있는 목공예 작업장에서 나무를 깎는 화륜 목사. 뉴스앤조이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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