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창조과학 관련 세미나의 단골 질문은 역시 '진화'다. '원숭이가 진화해 사람이 됐느냐', '공룡이 성경에 나오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창조과학을 수용하는 교인이든, 반대하는 교인이든 모두가 궁금해한다. 기자도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수시로 '변증(?)'해야 했다.

조상이 나와 다르게 생겼을 거라는 상상,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많은 교인이 과학이 발전할수록 성경 말씀을 읽으며 의심했고 불편해했으며 갈등했다. 한국교회는 '과학이 틀리고 신앙(성경)이 옳다'는 식으로 이 불편함을 극복해 왔다.

우종학 교수(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는 신간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새물결플러스)에서 '불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발견 속에서, 수천 년 전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는 개신교인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를 알려 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지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 358쪽 / 1만 6,000원. 김회권 교수(숭실대), 김근주 교수(느헤미야), 이정모 관장(서울시립과학관), 권영준 교수(연세대) 등 다양한 신학자와 과학자가 함께 추천사도 읽어 보면 흥미롭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은 저자 우종학 교수가 여러 곳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강의 내용이 더 자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돼 각 장을 채우고 있다.

책은 5개 주제로 구성됐다. 1부 '과학, 자연을 읽어 내는 도구'에서는 우주의 광대함을 알려 준다. 천문학자 우 교수 전문 영역이다. 신비로운 별과 은하 사진은 자연 법칙에 따라 100억 년 넘게 형성 중인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주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2부 '성경과 과학'에서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고대인들의 과학적 상식과 현대 과학의 상식을 비교해 본다. 인류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다양한 신학자들 관점으로 조망한다.

3부와 4부는 내·외부의 적을 논한다. 3부는 '과학주의 무신론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위시한 과학자들의 '기독교 공격'을 살펴보고 이를 반박한다. 자연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무신론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변증의 성격이 강하다. 4부 '근본주의와 문자주의의 오류를 넘어'라는 주제의 초점은 창조과학자들을 향해 있다. 다양한 창조과학 이론을 소개하고, 이 이론들의 한계를 짚는다. 수많은 오류에도 창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해석을 성경에 버금가는 것으로 여기고, 절대 권위를 부여한다고 비판한다.

5부 주제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 책의 결론이다. 한국교회 내 만연한 창조과학 신봉 문화를 깨뜨리기 위해 우종학 교수가 설립한 단체 이름이기도 하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들을 봤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내용이다.

'언어' 속에 가둬진 하나님?
점점 '실재에 근접'하는 과학,
취사선택은 불가능
"과학의 도전에 응답하자"

300여 쪽의 텍스트를 '과학과 기독교는 대결 상대가 아니라 대화 상대'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교인들은 오늘도 마치 오디션 결승전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듯, 목사 설교와 과학자 주장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 현실을 우종학 교수는 '창조과학 난민'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교인을 다 그렇게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한국교회가 겪는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과 오해"(234쪽)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상당수 교인이 표류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리아 사람들이 부모나 그 자신의 원죄 때문에 난민이 된 게 아닌 것처럼, 우종학 교수는 교인들 또한 개인 신앙의 부족으로 창조과학 난민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38쪽). 책 전반에 걸쳐 설명하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의 배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경 해석, 목사들의 전문성 부족,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회 문화가 난민을 만든 진짜 이유다. 하나의 목소리만 강조하는 교회 문화를 벗어 버리고,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며 살펴보는 데서부터 탈출은 시작된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놓아주어야 한다. 창세기라는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려는 시도를 그쳐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언어'로 제한할 수 없는 하나님을 창세기 1장만의 주인으로 가두지 말자는 뜻이다. 138억 년 우주, 머리로 가늠할 수 없는 광대한 우주를 만들고 섭리하는 하나님을, 반경 6,400km짜리 행성의 주인으로만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은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과학자가 엄밀한 과정 속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우종학 교수가 자주 하는 표현 중 "과학은 실재의 근사(approximation)"라는 말이 있다. 실재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학적 발견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 첨단 반도체 기술과 생명공학의 발전을 누리면서 최신 스마트폰을 쓰고 각종 줄기세포를 맞으면서, 지질학과 천문학의 발견으로 정설화된 지구 나이와 인류 진화 과정을 부인하는 것은 난센스다.

며칠 전, 독일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축도하는 로봇'이 나왔다. 제작 의도가 '신학적 논의를 시작해 보기 위해서'다. 벌써 온라인에서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과학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며 그에 따른 새로운 도전이 교회에 들이닥칠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지녀 왔던 창조 세계 이해를 깨뜨릴 만한 도전이다(346쪽).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의 메시지는 좀 더 열린, 유연한 태도를 가지자는 것이다. 젊은 지구론과 싸우는 '낡은 싸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창조의 그림이 조금씩 깨지고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천동설이 무너졌지만 창조신앙이 무너지지 않았고, 천사가 달을 끄는 것이 아님이 판명 났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리심에 대한 신앙이 파괴되지 않았다.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거나 믿지 못할 책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변화는 오히려 우리의 제한된 이성 안에 가두어두었던 창조주와 그의 역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오히려 제한되었던 창조의 관점을 확장시키며 창조 신앙을 더욱 튼튼한 기초 위에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340쪽)

책에는 우종학 교수의 강의를 들어 봤다면 귀에 익었을 사례도 나온다. 설악산 울산바위 창조 방식, 천동설을 지지하는 구절로 인식돼 왔던 시편 102편, 번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고대인들의 대처 방식 등이다. 낯익은 예들이 나와서 다소 신선함이 떨어질 수도 있겠으나, 같은 얘기를 반복해야만 하는 저자의 자괴감은 오죽할까. <과학 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이 널리 읽힌다면, 과학과 신학에 대한 논의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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